이미지만으로는 멜로 역이 딱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줄곧 그 반대의 길을 걸어 왔다. 당신이 매료되는 역할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갑자기 그가 이렇게 말한다. "사랑해요." 하지만 눈은 이미 웃고 있다. 그리고는 한달음에 이어 말한다. "이런 말을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연기라도 이건 도저히, 부끄러워서 못하겠어요." 영화 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랑의 대사. 하지만 오다기리 죠에겐 낯설고 먼 얘기다. 그래도 그는 늘 사랑을 말한다. 게이들의 공동체 이야기를 그린 <메종 드 히미코>에서 특히 그랬다. 영화 속 하루히코였던 그는 삶의 끝에 서 있는 히미코를 사랑하고 삶에 치열한 그의 딸 사오리를 사랑한다. 어깨선이 도드라질 정도로 맞춤한 셔츠를 걸치고, 다리 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타이트한 바지를 입은 하루히코는 옷매무새만큼이나 견고한 사람이다. 사랑, 외로움, 질투, 행복, 욕망. 감정의 모든 결을 다 갖고 있지만 좀처럼 그 감정을 넘쳐 내보이지 않는다. 그는 항상 희미하게 웃고, 희미하게 아파한다. 하지만 견고하게 정돈돼 표현되는 하루히코의 슬픔과 사랑은 그래서 더 아프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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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기리 죠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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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다기리 죠는 '정색하고 덤비는 사랑 이야기'가 편치 않다. 도무지 부끄러워 연기를 할 수도 없지만 사실, 그런 사랑 이야기는 보지도 않는다. "사랑만 읊어대는 연애 영화는 싫다. 사실 나는 편식쟁이다. 멜로는 물론이고 액션이나 호러 영화는 거의 보지 않는다." <메종 드 히미코>가 그의 이런 까다로운 판단 기준을 통과한 건 이 영화가 그리는 사랑이 '사랑의 한 형태'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오다기리 죠가 설명하는 <메종 드 히미코>는 "사랑의 감정을 관객이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은근히 감정을 북돋우는 영화"이며 "수많은 사랑의 스펙트럼을 모두 갖고 있는 영화"다. 하지만 필모그래피를 살짝 들춰보기만 해도 '편식' 운운하는 오다기리 죠의 영화 식성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지난 해에만 7편의 영화에 출연한 오다기리 죠는 현대극과 시대극, 뮤지컬과 드라마 등 시대와 장르를 건너뛰며 종횡무진 했고, 중국은 물론 미국 배우와도 작업했다. <메종 드 히미코>에서는 남자를 사랑하기도 했고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영화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에서는 너구리 공주를 사랑하기도 했다. 또한 이상일 감독의 <스크랩 헤븐>에서는 복수에 열을 내기도 했다. 독특한 캐릭터로 넘쳐나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어디로 튈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자유분방한 그와 쏙 빼닮았다. "얼마나 세밀하게 '인간'을 그리는지 살펴보는 게 영화 선택의 기준이다. 사람의 내면을 잘 다루고 인간 간의 관계를 밀도 있게 그린 이야기라면 나는 언제나 매료된다." 인간에 대해 잘만 그린 영화라면 '조금'의 연애와 공포는 용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장르와 국경쯤은 가뿐히 넘을 수 있다며 웃어 보이는 오다기리 죠. 그에겐 인간의 '피와 뼈'가 살아 있으면 장르, 국경도 없고 주연, 조연도 없다. 오다기리 죠는 재일동포인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에서 열연한 바 있다. 영화 안에서든 밖에서든 오다기리 죠를 가장 매료시키는 건 '자유'다. 사진 촬영 전 거울 앞에 선 그는 모자를 벗고 '정성스레'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다시 모자를 푹 눌러 쓰자 한쪽 눈이 사라졌다. 모자 아래에서 머리카락들은 비쭉비쭉 제멋대로 솟았다. 이미지 관리에 목숨을 거는 여느 연예인들에게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볕이 잘 드는 창가 바닥에 허물어지듯 주저앉아 카메라를 쏘아 보며 그는 그게 더 편하다고 말한다. <메종 드 히미코>로 갑작스레 늘어난 한국 팬들에 대해 마냥 좋기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도 그의 이런 성격 탓이다. "배우로서 사랑해주는 건 감사할 노릇이지만 평소 한국을 자주 찾았는데 길에서 자유롭게 걸어 다니지도 못한다면 매우 슬플 것"이라는 게 오다기리 죠의 솔직한 심정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는 "오다기리 죠를 좋아한다는 건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친구들에겐 절대 말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사실 그는 인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본인이 좋아하는 배우들도 죄다 인기와 거리가 멀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는 것' 바로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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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얘기를 다루는 <메종 드 히미코>가 한국에서 꾸준한 사랑을 얻고 있는 것은 "영화란 자유로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오다기리 죠. 그가 보기에 생활 속에서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영화로 엮어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영화의 자유로움'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다. 어떤 이야기든 자유롭게 표현되고 논의되는 것이 건전한 사회라고 굳게 믿는 오다기리 죠는, 자신의 또 다른 출연작인 <박치기>의 자유주의자 사카자키와 가장 많이 닮아 있었다. <박치기>는 <메종 드 히미코>와 함께 현재 국내에서 상영중인 작품이다. 'I have dream'이라 외치며 꿈과 자유를 찾아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길 주저하지 않는 사카자키. 그 사카자키처럼 오다기리 죠의 오랜 꿈 역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화 감독이 되고 싶어 했다. 결국 연기자가 됐지만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연출에 대한 꿈은 여전하다. 연기를 하다보니 오히려 감독의 어려움을 먼저 알아버렸지만 정말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기꺼이' 연출에 도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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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기리 죠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그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도 부디 그가 자유롭길 바라는 마음들이다. 삶 속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며 자신만의 필터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길. 그래서 그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더 다양한 사람들이 엉켜 뛰어놀길 바란다. 그건 오다기리 죠 자신의 바람이자 그를 바라보는 관객 모두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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