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아카데미 영화상이 역사를 새로 썼다. 5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78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의 이안 감독이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 출신 감독상 수상자가 됐다. 지난 2002년 <몬스터볼>의 할리 베리가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래 미 영화 역사에 또 한번의 이정표가 세워진 순간이었다.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은 이안 감독은 "사랑 자체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를 만들 수있게 해준 원작자 애니 플루 등 모든 이에게 감사한다"며 수상소감 말미엔 대만, 홍콩, 중국의 영화팬과 영화 관계자들을 위해 중국어로 감사인사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남우주연, 조연 등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던 <브로크백 마운틴>은 감독상 이외에 각색상과 작곡상 등 3개부문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올 아카데미 영화상의 최대 이변은 폴 해기스 감독의 <크래쉬>가 <브로크백 마운틴>을 제치고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다. 해기스 감독을 비롯해 이 영화의 관계자들조차 수상작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귀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놀라움과 기쁨을 나타냈다. <크래쉬>가 로스앤젤레스에서 36시간동안 벌어지는 처절한 인종갈등을 솔직하게 다룬 문제작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난 연말부터 주요 영화상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해 온 <브로크백 마운틴>이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가져갈 것으로 영화계에서는 예상해 왔었다. 특히 <크래쉬>는 작품상 부문에 오른 5편의 작품들 중 사실상 유일한 독립영화인데다가, 맷 딜런 , 샌드라 블록 등 초호화캐스팅에도 불구하고 65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작품이란 점에서 수상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해기스 감독은 지난해 작품상을 수상한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시나리오를 썼으며, <크래쉬>는 그의 첫 감독 데뷔작이다.
|
|
78회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크래쉬> ⓒ프레시안무비 |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인상적인 수상소감을 한 사람은 중동 오일전쟁을 소재로 한 <시리아나>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조지 클루니였다. "내가 조연상을 받은 것을 보니 감독상은 받지 못할 것 같군요"라고 농담식으로 말문을 열어 폭소를 이끌어낸 그는 "우리(미국 영화인들)는 남들이 에이즈를 귓속말로만 쉬쉬할 때 에이즈의 심각성을 이야기했으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을 때 인권문제를 제기했던 사람들이다. 내가 아카데미와 이 공동체의 일부인 게 자랑스럽다"고 감격을 나타냈다. 78회 아카데미상은 한마디로 '이변의 노미네이션과 예상대로의 수상작 선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들을 후보작으로 선정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는 했지만, 수상작 선정은 <크래쉬>가 작품상을 가져간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 예상 답안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카포티>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남우주연상, <앙코르>에서 준 카터로 열연해 극찬을 받아온 리즈 위더스푼이 여우 주연상 트로피를 각각 가슴에 안았다. 여우 조연상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거대 의학회사들과 맞서 싸우는 강인한 여성을 연기한 영국 배우 레이첼 와이즈에게 돌아갔다.
또 외국어영화상 부문에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폭력을 다룬 <초치>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는데, 이것은 팔레스타인 자살특공대원들의 하루를 그린 영화 화제작 <파라다이스 나우>가 예상대로 유대계 심사위원들에게 그리 호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큐멘터리 부문상 역시 남극 황제펭귄들의 지극한 가족애를 그려 보수주의자들의 호평을 받은 <펭귄의 행진>에게 돌아갔다. 이밖에 <게이샤의 추억>이 미술, 의상, 촬영상을 수상하고 <킹콩>이 시각효과, 음향믹싱, 음향 편집상을 받는 등 상이 골고루 배분되는 경향을 나타냈다.
제78회 아카데미 영화상 수상작 리스트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