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는 극한 상황에서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여성의 영화들을 수상작으로 선택했다. 1990년대 초반 보스니아 전쟁(1992~95) 당시 세르비아군에 성폭행당한 과거를 숨겨 온 어머니와 딸을 소재로 한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오스트리아-독일-크로아티아 합작영화 <그르바비차>가 19일 폐막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은곰상은 이란의 축구광 소녀들이 남자옷을 입고 축구경기장에 몰래 들어가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을 묘사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오프사이드>, 한 아파트에 사는 30대 여성과 성전환수술을 대기중인 여장남성 간에 싹트는 우정과 사랑을 그린 페닐 피셔 크리스텐슨감독의 덴마크-스웨덴 합작영화 <비누> 에게 돌아갔다.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에 수감됐던 실존인물을 소재로 한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관타나모로 가는길>은 이번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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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에는 <소립자>의 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 여우주연상은 악령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한 소녀에 관한 <레퀴엠>의 산드라 휠러 등 모두 독일 배우들에게 돌아갔다. 알프레드 바우어상 수상자로는 아르헨티나의 로드리고 모레노 감독의 <엘 쿠스토디오>가 선정됐다. <그르바비차>는 보스니아 전쟁이 한 여성과 그녀의 딸에게 남긴 끔찍한 상처와 악몽을 솔직하게 그려 이번 영화제 기간동안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품이었다. 데뷔작으로 국제적인 이목을 한 몸에 모으게 된 즈바니치 감독은 황금곰 트로피를 품에 안은 뒤 "마치 꿈꾸고 있는 것 같다. 5분 뒤 정신을 차리면 내가 사라예보에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작은 나라의 저예산 작은영화를 초청해준 베를린에 감사한다"고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또 "보스니아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전범인 라도바 카라지치, 라트코 믈라비치는 여전히 유럽 모처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전쟁 당시 보스니아 여성 2만 명이 조직적으로 강간당했으며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게 바로 유럽이다. 아무도 그들을 잡는 데에 관심이 없다. 내 영화가 보스니아에 대한 당신들의 시각을 바꿔놓길 희망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영화는 사라예보에 사는 에스마란 여성과 12살 난 딸 사라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사라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보스니아 전쟁에 나가 세르비아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는 것이 어머니 에스마의 설명이었다. 사라는 아버지가 전쟁영웅이란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같은 처지인 친구 샤미르가 자기 아버지가 어디에서, 어떻게 전사했는지에 자세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난 사라는 샤미르와 달리 자신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자세히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때 학교에서는 아버지가 전사한 학생들에게 죽음을 입증할만한 문서를 가져오면 수학여행 비용을 면제해주겠다고 발표한다. 영화는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 알고 싶어하는 사라와 질문을 회피하는 에스마 간의 갈등, 자신이 전쟁영웅의 딸이 아니라 세르비아군의 강간에 의해 태어났다는 진실을 알게 된 사라의 충격, 그리고 결국에는 딸과 어머니가 같은 여자로서 이해와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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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청소년영화부문에 진출한 우리영화 <태풍태양>, 포럼부문의 <피터팬의 공식>과 <방문자>, 강혜정이 출연한 태국영화 <보이지 않는 물결> 등은 모두 수상권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재미교포 김소영 감독이 포럼부문에 출품한 <인 비트윈 데이즈>는 국제비평가상을, 재일교포 양영희 감독의 <안녕, 평양>은 넷펙(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을, 그리고 중국 판호청 감독의 <이사벨라>에서 음악을 담당한 한국계 재중동포 캄 푸이 탓 피터는 최고영화음악상 등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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