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제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이른바 '테러리스트' 출신 영화배우들이 탄생했다. 실제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미군에 의해 테러리스트로 오인돼 쿠바 관타나모 기지내 수용소에서 3년 동안이나 억류생활을 하다가 무죄석방된 파키스탄 및 인도계 영국 청년 3명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쟁부문 출품작인 다큐드라마 〈관타나모로 가는 길〉을 통해 자신들의 끔찍했던 경험을 털어놓은 이들은 14일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뉴스의 주인공은 아시프 이크발, 루엘 아흐메드, 샤피크 라술. 이들의 인생은 우연한 여행 때문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2001년 9.11테러 후 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방문했던 세 친구는 이슬람 설교모임에 참석했다가 옆나라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직 탈레반 정권 치하였던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해서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이들은 현지 민병대조직인 북부연맹소속 군인들에게 붙잡혀 미군에 넘겨졌고, 알카에다와 탈레반에 동조하는 테러리스트란 어마어마한 죄목이 붙여져 쿠바 관타나모 기지내 수용소로 끌려갔다.
〈table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align=center〉〈tr〉〈td〉〈img src="../images/60060215190011.jpg" border=0〉〈/td〉〈/tr〉〈tr〉〈td height=5〉〈/td〉〈/tr〉〈tr〉〈td class=article_copy〉관타나모로 가는 길 ⓒ프레시안무비〈/td〉〈/tr〉〈/table〉
이 곳에서 이들은 "테러리스트는 제네바 전범대우조약의 해당 사항이 아니다"란 이유로 가족은 물론 변호인 접견도 허용받지 못한 채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처참한 생활을 해야 했다. 세 사람은 영국에 있는 가족과 민간단체, 그리고 막판에서 토니 블레어 총리까지 나선 석방운동에 힘입어 결국 약 3년만에 무죄석방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윈터바텀 감독이 아시프 등 3명을 찾아 온 것은 석방된 지 약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들은 당시엔 윈터바텀이 〈인 디스 월드〉로 2003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는 등 저명한 감독이란 사실을 잘 몰랐었다고 기자회견에서 털어놓았다. 관타나모에 아직도 남아 있는 500여 명을 위해서 세 명이 겪은 고통을 영화로 만들어 알리고 싶다는 윈터바텀 감독의 호소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영화는 장시간에 걸친 세 명의 인터뷰와 뉴스자료화면, 그리고 이들이 과거 상황을 직접 재연한 장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수감자들이 미군 조사관들에게 구타 당하는 장면, 또 미군들이 코란을 모독하는 장면 등도 등장한다.
외신들은 영화제에서 〈관타나모로 가는길〉이 상영된 후 긴 기립박수가 이어졌다고 뜨거운 분위기를 전했다.
윈터바텀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테러리스트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관타나모 수감자들에게 인간의 얼굴을 부여해주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미국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비춰지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반미주의를 의도한 것은 아니며, 솔직히 말해 미국 정부가 내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고 덧붙였다.
당초 TV용으로 기획된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곧 영국에서 극장개봉될 예정이다.
한편,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당초 예상대로 강한 정치적 메시지의 영화들이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유고내전 당시 세르비아 군인들에게 조직적으로 강간당했던 보스니아계 여성들의 고통을 담은 영화 '그르바비차'(오스트리아, 독일,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합작)가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으며, 이란 소외계층의 희망없는 비참한 일상을 그린 '겨울', 이탈리아 정계와 마피아 간의 검은 결탁과 부패를 고발한 '범죄소설', 중동 석유패권정치를 풍자한 미국영화 '시리아나' 등도 금기에 도전하는 소재로 호평받았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는 오는 19일 시상식과 함께 폐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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