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영화계의 모든 관심은 1월 31일에 쏠려있다. 아카데미영화상의 후보작들을 발표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선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과연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이 후보작으로 오를 수 있을지가 관심사이다. 올해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출품된 작품은 총 91편. 1개국 1편 출품이 원칙이니까 91개국이 참여한 셈이다. 아카데미 역사상 외국어영화상 출품작으로는 최대규모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외국어영화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늘어났음을 반영하는 것일까? 애석하게도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외국어 자막을 읽기 싫어하는 미국 관객들의 악명높은 습성이야 이미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최근 들어 그런 성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아카데미에 출품된 91편 중 미국 내에서 배급된 영화는 7편에 불과하다. 2년전인 2003년 20편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들었다.
|
|
무극 ⓒ프레시안무비 |
외국어영화가 미국 시장에서 올린 티켓 판매수입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미국 내 외국어영화의 입지가 얼마나 미미한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소위 '백만달러 클럽'이라고 해서, 편당 1백만 달러 이상의 극장 수입을 올린 외국어영화는 단 10편에 불과했다.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작품이 주성치 감독의 <쿵푸허슬>. 총 1,710만 달러를 벌어들여 전체 순위에서는 116위에 올랐다. 한 해 전인 2004년 '백만달러 클럽' 영화는 장이모우 감독의 <연인>(1,100만 달러) 등 총 18편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던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의 <홀리걸>, 김기덕 감독의 <빈집>, 바흐만 고바디감독의 <거북이도 난다> 등의 경우 30만 달러의 판매실적을 올리기도 힘들었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의 미국 배급사 관계자는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몇 년 전에 이 작품을 배급했으면 최소 2백만 달러는 벌었을 텐데 올해는 1백만 달러를 겨우 벌까말까 했다"면서 외국어영화 경우 극장에서 스크린을 확보하기도, 그리고 일단 확보한 스크린을 일정기간동안 유지하기도 너무 어려운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
| |
|
웰컴 투 동막골 ⓒ프레시안무비 |
|
미국에서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이 평단과 극장에서 돌풍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던 것이 불과 5년 전인 2001년. 당시 이 영화가 벌어들인 극장수입은 1억 2,800만 달러였다. 외국어영화로서 미국에서 1억 달러선을 돌파한 첫 영화였다. <와호장룡>은 아카데미영화상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고, 외국어영화상 음악 촬영 미술 등 4개부문을 수상했다. 당시 미국 영화계에서는 <와호장룡>을 계기로 외국어영화에 대한 장벽이 어느정도는 무너질 것으로 내다보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더욱 암울해졌다. <쿵푸 허슬><연인>등의 작품을 수입한 소니 픽처스 클래식의 한 관계자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 미국에서 성공하는 외국어영화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면서, 소니 픽처스 클래식도 외국어영화를 수입할 때 미국 내 시장을 고려해 매우 신중해졌으며 실제로 편수를 상당수 줄였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인생은 아름다워>, <시네마천국>등의 작품을 수입해 큰 재미를 봤던 하비 와인스타인(前 미라맥스 대표)은 최근 장동건 주연, 첸카이거 감독의 <무극>의 미국 배급을 막판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어영화 전문 배급사인 싱크필름의 마크 어만대표는 "독자들이 관심없다는 이유로 평론가들조차 외국어영화에 대해 리뷰를 쓰지 않고 있고, 그러다보니 외국어영화가 미국 문화 속에 침투하지 못하게 되며, 그 결과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심지어 한 배급업자는 "신문에 영화평을 기고하는 평론가들의 외국어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면 신문사에 폭탄이라도 던져야할 판"이라고 개탄했다. 외국어영화일수록 개봉일 전후에 나오는 신문 평론이 흥행에 결정적으로 중요한데 평론가들의 개인취향 또는 대중성 부족 등으로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
|
와호장룡(左)과 브로크백 마운틴(右)ⓒ프레시안무비 |
외국어영화의 미국 내 입지가 이처럼 불안하다보니, <브로크백 마운틴>처럼 스타감독과 스타배우들이 만든 저예산 독립영화들과 다큐멘터리영화들이 외국어영화 시장을 잠식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아이러니한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태풍> 등 최근 들어 미국에 배급되는 한국영화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미국개봉'이란 그럴 듯한 홍보효과를 뛰어넘어 우리 영화가 미국 극장가에서 보다 알찬 결실을 맺기 위해 치밀한 전략이 절실히 요구될 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