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동대문에선 왜 자라·유니클로가 탄생 못하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동대문에선 왜 자라·유니클로가 탄생 못하나

[김경민의 도시이야기]<12>유통만 있고, 고부가가치 기술 없다

<도시 이야기>를 통해 지난 9회부터 동대문과 창신동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필자는 상업용 부동산에 관한 연구를 주로 한다. 아시아 주요 도시의 오피스 가격을 비교하거나 쇼핑몰 가치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쇼핑몰 연구 과정에서 동대문 시장을 다루게 되었는데, 연구를 진행하면서 동대문 패션 시장의 가치에 대한 의문이 차츰 커졌다.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SPA 상품인 자라(ZARA), 유니클로(UNIQLO)와 한국의 패스트 패션 메카 동대문을 비교해보자. 유니클로 창업자인 야나이 다다시는 부친이 운영하던 동네 양장점을 이어받았다. 부유한 가문 출신이 아니다. 자라 창업자 역시 매우 짧은 시간에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다. 이제 이들은 스페인과 일본 제일의 갑부다.

반면 50여 년 전부터 형성돼 온 동대문 시장에서는 유니클로와 자라 창업자만큼 부유해진 사람은 없다. 왜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다 보니, 점차 '쇼핑몰이라는 부동산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나'에 대한 관심은 작아졌다. 대신 패션 디자인과 제조 그리고 판매라는 패션 산업의 가치 사슬(Value Chain)과 유기적 프로세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리고 이의 연장 선상에서 뉴욕, 파리, 밀라노, 런던 등 세계적 패션 도시와 동대문 패션 타운 간의 비교 연구를 하게 되었다.

세계적 패션 도시와 동대문 패션 타운의 차이점은 극명했다. 패션 디자인과 제조 그리고 판매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글로벌 패션 도시와 달리 한국은 단순히 거대한 유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편협함에 디자인과 패션 제조업의 가치가 도외시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필자 주>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
<1> 서울, '200년 역사' 상하이보다 못하다…왜?
<2> 휘청휘청 용산 개발, '티엔즈팡'만 미리 알았어도…
<3>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4>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만든 그는 왜 잊혔나
<5> 당신이 몰랐던 피맛골, 아직 살아 있다
<6> 박정희 시대 요정 정치 산실, 꼭 헐어야 했나
<7> MB·오세훈 '뉴타운 광풍'과는 다른 '낙원삘딍' 탄생사
<8> 음악인들의 성지, 기어이 밀어버려야겠나
<9> 동대문, 세계적 패션 도시 뉴욕·밀라노처럼 되려면?
<10> 봉제 공장 외면한 '甲' 동대문, 나홀로 생존 가능할까?
<11> 창신숭의 뉴타운 해제, "동대문 패션 타운 몰락할 뻔"

종속적인 너무도 종속적인

동대문 인근 봉제 공장 운영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봉제 공장에서 일할 젊은 인력이 태부족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매우 큰 문제인데, 젊은 봉제 노동자들이 없다는 것은 봉제노동자들이 노령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30대 젊은 노동 인력이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봉제 노동력이 노령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패션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더군다나 현재의 봉제 노동 인력들이 오랜 기간 일을 하였다고는 하나, 이태리 명품 의류를 만드는 봉제 장인 수준의 기술력이 갖고 있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젊은 층이 봉제 공장 근무를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실질 임금이 십수 년간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면, 그 직종의 미래 임금이 상승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과거 20년에 걸친 디플레이션에 길들여져 소비를 주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젊은 층 입장에서는 실질 임금이 과거 20년 전에 비해 3분의 1 토막이 났고,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도 없는 데다, 근로 여건마저도 좋지 않다면 선택은 명확하다. 당연히 그런 직종에서 근무하기를 거부한다.

더군다나 중국과 베트남, 캄보디아 등 우리보다 제조업 임금이 싼 국가의 노동력은 넘쳐난다. 사실 창신동 봉제 공장 노동자들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한복판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들의 경쟁 상대는 중국과 베트남, 캄보디아의 노동자들이다.

따라서 '젊은 층이 봉제공장 근무를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에 앞서 생각할 부분은 '왜 창신동 봉제 공장의 임금 수준은 저리도 변화가 없을까?'란 부분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패턴과 샘플 제작 등 고부가가치 패션 제조 분야는 패션 디자인과 더불어 창조 산업인 패션 산업의 핵심 역량이다. 그리고 이 핵심 봉제 기술의 유무는 글로벌 패션 타운으로 성장할 수 있느냐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영세 봉제공장 '사장'님 된 재단사들, 먹고살 만 해졌나?

▲ 창신동 언덕꼭대기 근방의 호프집마저도 봉제공장으로 바뀐 모습. ⓒ김경민

창신동 봉제 공장의 임금 수준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창신동 봉제 공장의 형성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거 동대문 시장 내 위치하였던 봉제 공장은 1980년대 초반부터 주변 지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봉제 공장의 공장장이 공장 소속 재단사에게 공장을 차리도록 했는데, 일종의 분가 또는 아웃소싱 형태로 생산 방식을 변화시킨 것이다. 사실 이는 노동자 입장에서도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 본인의 신분이 노동자에서 어엿한 사업체의 사장으로 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과거 동대문시장 2, 3층에 있었던 엄청난 규모의 봉제 공장들은 현재 모두 상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독립한 소규모 단위 공장들이 창신동을 비롯하여 숭인동, 이화동, 신당동 등으로 스며들게 됐다. 특히 노동자들의 주거지였던 창신동은 가내수공업 형태 공장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2000년 이후 동대문 주변의 주거지들이 재개발로 인해 아파트 단지로 바뀜에 따라, 해당 지역에 있던 공장들이 창신동으로 이전하면서 그 수는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봉제 공장이 위치할 장소가 아니겠지 싶은 곳도 봉제 공장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에 얼마나 많은 봉제 공장이 창신동에 소재하는지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창신동의 봉제공장 수는 대략 2500에서 3500개 사이로 추정된다. <한겨레>가 창신2동 주민자치센터 일대 420가구를 조사한 결과, 총 가구 중 36퍼센트에 해당하는 153가구의 봉제 공장이 있었고, 이를 같은 밀도로 창신동 전 지역을 추정해보면 3500여 곳의 봉제 공장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 가운데 직원이 5명 이하인 곳이 77.1퍼센트라고 한다. 아주 영세한 가내수공업 형태를 띠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특히 부부가 운영하는 2인 형태가 많다. 작은 동네에 3000여 곳의 개별 공장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상 완전경쟁 형태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질 공임은 1980년대에 비해 3분의 1토막"

▲ 전태일 다리 위에 있는 전태일 동상. ⓒ프레시안(최형락)

더군다나 공임이 실질적으로 3분의 1 토막 난 것은 공임을 지불하는 동대문 시장과 창신동 봉제 공장 간 관계에서 동대문 시장이 압도적 우위에 있음을 방증한다. 창신동 봉제 공장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뭉쳐서 가격 협상을 벌인다면 그렇게 속절없이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3000여 곳이나 되는 봉제 공장들이 완전경쟁 체제에서 '슈퍼 갑'인 동대문 상인들에게 종속적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고, '슈퍼 을'인 본인들끼리 경쟁하면서 제 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1980년대 노동자 신분에서 현재는 '사장'으로 그들의 신분이 수직 상승하였다고 보는 것은 큰 착각이다.

1980년대 노동자 신분이었을 때에는 전태일 열사의 영향으로 노동조합이 그나마 활발히 움직였다. 노조를 바탕으로 사업주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극심한 경쟁 체제에서 동대문의 주문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렇기에 공임을 50원, 100원이라도 싸게 해서 주문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외형적 신분 상승이 실질적 신분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소규모 사업장들의 연대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경기가 나쁘니 일감을 크게 줄어든 데다 싼 수입 제품과 해외 SPA 브랜드가 쏟아져 들어와 힘든 점이 많다."
"지금 봉제노동자들이 대부분 40~50대인데, 젊은 사람들이 충원되지 않아 10년 후쯤 되면 일할 사람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외국인 노동자가 3년 숙련돼서 일을 시킬 만하면 고용허가 연장이 힘들어 낭패를 본다. 결국 불법체류자를 쓰다가 단속에 걸려 몇백만 원 벌금을 무는 경우도 있다."
"옛날 시설 그대로의 좁고 번잡한 근무환경이다 보니 다들 3D 업종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불만이다."
"원청을 줄 때 납품을 밤 12시~1시까지 맞춰달라고 하니, 봉제공장도 그때까지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봉제 노동자들은 쉬고 싶어도 주말이 없는 시스템이다."
"옷 하나 만들면 퀵이 15번 온다. 부자재 등 봉제 제조에 딸린 산업들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봉제 제조업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 현장의 고충, 2012년 11월 12일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 관계자들과 심상정 의원 간담회에서.


□ 필자 주석
①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조사연구과, <창신동: 공간과 일상>, 2011, 서울역사박물관, p. 10 재인용.
②창신동 소재 지역아동센터 김미아 (해송지역아동센터 팀장) 인터뷰, 2013.04.15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