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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숭인 뉴타운 해제, "동대문 패션 타운 몰락할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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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숭인 뉴타운 해제, "동대문 패션 타운 몰락할 뻔"

[김경민의 도시이야기]<11> 위기의 동대문과 창신동

위기의 동대문

해외의 패션 중심 도시들이 디자인과 제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역량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과 달리, 동대문 패션 타운에서는 아직 이런 노력이 미진하다. 물론 두산타워의 신진 디자이너 육성 프로그램처럼 젊고 재능있는 디자이너를 키우려는 시도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아직도 디자인 베끼기가 존재하고, 주변 제조업의 실질 공임이 계속 하락하는 상황을 볼 때, 미래가 밝지는 않다.

동대문 시장에 위치한 수많은 점포들은 무한 경쟁에 가까울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디자인 콘셉트의 옷을 만들어 파는 것은 상점주 입장에서는 매우 큰 위험을 부담하는 일이다. 새 디자인이 시장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경우, 디자인에 들인 비용과 시간, 즉 투자비와 기회비용이 한 순간에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상점주 입장에서는 새 디자인 제품을 내놓기보다는 시장에서 잘 팔리고 있는 다른 상점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끼거나 일부 변형한 옷을 파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지 모른다. 더군다나 디자인 베끼기를 제재할 기관이나 방법이 없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동대문 시장에는 소위 '디자인 따먹기'라 불리는 디자인 베끼기가 존재한다.

이에 더해, 동대문 시장을 둘러싼 외적 환경 역시 결코 녹록지 않다. 동대문이 국내 패스트 패션 1번지인 것은 사실이나, 자라, 유니클로 등 경쟁력 있는 외국계 패스트 패션 업체들이 약진하면서 동대문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중국 상인들이 과거 동대문에서 도매 형태로 잔뜩 물건을 구입했는데 현재는 중국에 공장을 차려놓고 동대문에서는 샘플 몇 개만을 구입한 후, 중국에서 대량 생산하여 판매하는 식으로 매매 행태를 바꾸었다.

결국 동대문에서는 시장 내부의 치열한 경쟁과 시장 외부의 불리한 상황이 맞물리면서, 사업의 편리성에 따라 디자인의 가치가 경시되고 있다. 패션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디자인마저도 경시당하는 현실에, 패션 제조업의 가치는 너무도 쉽게 외면당하고 있다.

디자인과 제조업에 대한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도, 동대문 패션타운 내 상점과 의류 제조업체 간 지리적 근접성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식되고 있다. 소비자의 트렌드가 빨리 바뀌면서 제품의 소비 주기가 짧아지고 있기에, 의류 생산 역시 매우 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동대문 시장 상인들은 봉제 공장의 근접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동대문 시장과 봉제 공장 간 거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패션 제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제조업이 가진 본연적 가치는 여전히 무시되고 있는데, 이는 창신동 봉제공장의 현황을 보면 알 수 있다.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
<1> 서울, '200년 역사' 상하이보다 못하다…왜?
<2> 휘청휘청 용산 개발, '티엔즈팡'만 미리 알았어도…

<3>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4>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만든 그는 왜 잊혔나
<5> 당신이 몰랐던 피맛골, 아직 살아 있다
<6> 박정희 시대 요정 정치 산실, 꼭 헐어야 했나
<7> MB·오세훈 '뉴타운 광풍'과는 다른 '낙원삘딍' 탄생사
<8> 음악인들의 성지, 기어이 밀어버려야겠나

<9> 동대문, 세계적 패션 도시 뉴욕·밀라노처럼 되려면?
<10> 봉제 공장 외면한 '甲' 동대문, 나홀로 생존 가능할까?

위기의 창신동

창신동은 동대문(흥인지문) 북쪽에 있는 서울 성곽에서 낙산 공원 오른쪽에 있는 동네다. 동대문이 조선 전기부터 도성으로 오가는 길목에 위치하였기에 상·공업 종사자들이 낙산 기슭과 청계천 주변에 거주를 시작하면서 창신동이라는 동네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61년 평화시장이 들어서면서 동대문 의류 공장 노동자들의 주거지로 자리 잡았으며, 1980년 전후로 동대문 시장 내 의류 공장들이 분화한 소규모 의류 공장들이 창신동 주거지로 이전하면서 동대문 의류 산업의 배후 생산기지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창신동의 현재는 주거지와 함께 소수 노동자에 의해 운영되는 엄청난 수의 가내수공업 공장들이 공존하는 곳이 되었다.

비록 똑같은 원단을 이용하여 옷을 만들더라도 의상학과 대학생이 디자인한 옷과 샤넬 같은 세계적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 가격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샤넬의 디자인은 샤넬이라는 브랜드와 함께 엄청난 부가가치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디자인 따먹기'가 종종 일어나는 동대문의 경우에는 디자인이라는 부가가치 창출 소스는 가볍게 무시된다.

디자인의 중요성이 무시되는 상황에서 상점주가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제품 판매가를 인상하거나 아니면 제품 생산가를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동대문 시장은 3만 개의 상점이 몰려 있는 완전 경쟁 시장에 가깝다. 디자인마저 비슷한 상황에서 제품가격을 올리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제품 생산가격을 낮추는 것밖에 없다.

제품 생산가격은 원단 구입비와 의류 생산비(봉제 임금)로 크게 분류되는데, 원단 구입비마저 상승세라면 결국은 의류 생산 단가를 후려치는 선택이 유일한 대안이다. 그리고 이것이 수십 년째 동대문과 창신동 봉제공장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다.

작업 단가는 지난 20년 동안 계속 정체 상태다. 1980년대 말 점퍼 한 장 박음질 공임이 5000원이었던 것이 2000년대 초반에는 오히려 4000원으로 떨어졌고, 현재는 대략 5000원 남짓이다. 하지만 디자인이 과거에 비해 복잡해져 한 장을 박음질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더 늘어났다.

작업 단가를 실질 가격으로 환산하면 1989년 5000원의 2012년 말 가치는 1만5000원에 이른다. 즉 물가 상승률만큼만 인상하여도 점퍼 한 장 박음질 공임은 1만5000원은 되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도 5000원밖에 안 된다는 것은 23년에 걸친 기간 동안 실질 임금은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했음을 의미한다. 실질 임금이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했다면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이 과거보다 더 열악해졌음은 명확하다.

실질 소득이 하락하는 가운데 과거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노동 시간을 지속해서 늘리는 길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 따라서 창신동 봉제 공장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은 어마어마하다. 8~10시간 근무 노동자가 전체 46%, 11~12시간이 30%, 12시간 이상이 23%에 이른다.

8시간의 법정 노동 시간을 넘기는 건 당연한 일이고, 하루 11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이 절반을 넘는 상황이다.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에도 주문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 상태로 대기해야 한다. 여름과 겨울 비수기에는 한 달여 걸쳐서 손을 놓는 비수기마저 있다. 따라서 여러 달 몰아서 일하고 몇 달은 노는 구조 때문에 직업의 안정성 역시 매우 떨어진다.

"창신동의 봉제 노동자들은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니다. 비정규직은 계약 기간이라도 보장받지만, 이들은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그만이다. 노동자 자신이 일감을 따다 집에서 일하거나, 공장에 나간다 해도 당일 작업량에 따라 임금을 받는 '객공' 방식이다. 피고용인과 처지가 별로 다르지 않은 영세 사업주는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고, 보너스나 휴가, 수당 개념도 없고, 보험과 연금 혜택도 일절 없다"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 열악한 상황에 양질의 노동력이 봉제산업에 유입되기를 기대한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그리고 실제로 신규 노동력이 봉제산업에 진출하고 있지 않기에 노동력 고령화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낳고 있다. 국내 의류봉제업체 종사자 중 50대 이상 비중이 57%에 달하는 데 비해 30대 이하 비중은 7.4%에 불과할 정도로 젊은 층의 봉제노동 기피는 심각하다. 이에 반해 디자이너는 30대 이하 비중이 63%에 달하고 있다.

봉제 인력 노령화의 문제는 창신동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심각한 것은 봉제 인력의 고령화가 기술력의 단절과 패션 산업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본격적으로 나이 든 노동자의 은퇴가 시작되면 영국이 직면했던 숙련 제조 인력 부재의 문제를 우리 역시 겪을 수밖에 없다.
ⓒ김경민

동대문 경쟁력 죽이기: 창신숭인 뉴타운 계획

뉴욕과 동대문의 차이점은 패션 산업의 핵심 가치인 디자인업과 제조업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이 차이는 디자인과 제조, 판매의 유기적 연관성을 중시한 뉴욕과 달리, 판매만을 핵심 기능으로 치부한 동대문의 인식과 직결된다. 동대문을 단순히 패션 상권만으로 이해한 나머지 제조 기능을 천시하는 인식은 동대문 상권을 파탄 낼 뻔했던 서울시 정책으로 드러났다.
도시적 맥락에서 창신동은 한국전쟁 이후 판자촌 철거, 불량 주택 재개발, 주거 환경 개선사업, 재건축, 뉴타운에 이르는 서울시 주택 정책의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동대문 시장 경쟁력은 디자인이 아닌 가격이며, 그 핵심은 생산비용 절감이다. 창신동과의 착취적 관계가 경쟁력의 원천인 셈이다. 따라서 동대문의 경쟁력은 창신동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는 이 지역을 헐어버리고 거대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창신숭의 뉴타운계획'을 2007년 발표하였다. 수많은 영세 봉제 공장 주인들이자 노동자들은 격렬히 반대하였다. 그리고 작은 공장들에게 공간을 임대한 건물주인들마저도 현재의 임대 수입이 높기에 반대 입장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절 서울시는 지역 커뮤니티의 의견을 무시한 채, 뉴타운 개발을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만약 이 계획이 현실화되었다면, 창신동 소재 봉제공장들은 이 지역을 모두 떠나야 했을지 모른다.

오세훈 시장 시절 발표된 계획안에는 창신동의 수많은 봉제 공장들을 현대식 아파트공장에 입주시키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 공장의 크기는 모든 봉제 공장들을 수용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었기에 수많은 봉제 공장들의 이주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 이 계획이 실현되었다면, 일부 자금 여력이 있는 봉제 공장들만이 들어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동대문 시장에 위치한 산업관리공단이 운영하는 동대문 비즈센터의 예를 보면, 초기 계획안에는 많은 봉제 공장들이 입주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역시 자금력 있는 봉제 공장들만이 입주했을 뿐이다. 이상과 현실이 극명하게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서울시는 현대식 봉제 건물을 세워서 봉제 공장들을 입주시킨다는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영세한 가내수공업 봉제 공장들이 새 건물로 들어가기에는 (예상) 임대료가 너무 비쌌습니다. 따라서 계획안대로 개발이 발생했다면, 창신동 봉제공장은 다 쫓겨났을 겁니다."

다른 뉴타운 개발계획과 비교하여 창신숭의 뉴타운 계획이 더 큰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지역 커뮤니티 해체와 더불어 지역 주민들의 생계 수단이자 패션 산업의 산업기반마저 무너뜨릴 개연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으로 동대문 시장 의류가격 상승과 경쟁력 상실을 이어졌을 것이다.

산업 생태계에 대한 분석도 없이 발표된 서울시의 뉴타운 계획은 지역 내 찬반 분란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관광 1번지 동대문의 경쟁력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뉴타운 계획에 대한 지역 커뮤니티의 반대의견으로 인해 다행히 창신 숭인지역은 2013년 9월 현재 뉴타운 계획 해제절차를 밟고 있다.

▲ 오세훈 시장 시절 발표된 계획안에는 창신동의 수많은 봉제 공장들을 현대식 아파트공장에 입주시키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 공장의 크기는 모든 봉제 공장들을 수용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었기에 수많은 봉제 공장들의 이주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 필자 주석

① (출처) 김광선, <특별기획: 학습지역화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관한 연구-동대문시장 지역을 사례로>, 《공간과 사회》 13(단일호), 2000, p. 94-126.
② 창신동 소재 봉제공장 운영자 OOO 인터뷰 (2013.04.15.)
③ (출처) MK패션산업발전협회, 〈고용 및 산업실태조사〉 2008.
④ 오수연, <[길에서만난세상] 창신동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웹진 인권》 통권 16호, 2004. 12.
⑤ (출처) 한국의류산업협회, 〈2011 봉제업체 실태조사〉, 2012.

⑥ 창신동 봉제공장주 OOO씨 인터뷰, 201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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