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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망가뜨린 낙동강, 보 허물어도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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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망가뜨린 낙동강, 보 허물어도 글렀다"

[지율 스님의 긴급 호소] 내성천에서 본 'MB 대운하' ②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낙동강 상류 지천 내성천 인근에 텐트를 치고 살며 낙동강의 변화를 수년간 감시해온 지율 스님이 <프레시안>에 연속 기고를 보내 왔다. 지율 스님은 "상류 지천을 살리지 않으면 낙동강 보를 허물어도 강이 예전처럼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관련 기사 : 내성천에서 본 'MB 대운하' ① "박근혜 대통령, 낙동강은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장마가 끝난 지난 월요일 평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선생님 인솔 하에 내가 머물고 있는 동호 뚝방으로 곤충 채집을 왔다.

전교생이 15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이기에 두 학년을 합반했어도 다섯 명 밖에 되지 않았다. 곤충 채집을 온 아이들은 한동안 뚝방 근처에서 나비, 잠자리 등의 곤충을 잡거나 관찰하는 둥 하더니 이내 강으로 뛰어 들었다. 장마 끝이라 물살은 조금 거셌지만 강은 오랜만에 찾아온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지율스님

강에 내려서면서부터 소리가 높아진 아이들은 강 중턱에 이르자 야트막한 물굽이 위에 모여 모래성을 쌓기 시작했다. 고기를 잡아 넣기 위한 모래성이었지만 정작 물고기를 잡는 일보다 모래성 쌓는 일에 더 열중했다.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고 있는 광경을 지켜보는 내 감회는 남달라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동호 강변은 지난해 여름부터 올 4월까지 2.5미터의 깊이로 준설이 진행되었던 곳이다.
처음 포클레인이 강으로 들어오던 날, 사람 키보다 더 큰 포클레인의 육중한 삽날이 물살을 헤치며 모래를 퍼 올리던 장면과 그 때 느꼈던 슬픔과 분노, 안타까움과 무력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웅웅거리며 모래를 퍼 올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날마다 수 십대의 덤프트럭이 부드럽고 고운 모래를 싣고 나가는 현장을 지켜봐야했다. 동호 강변의 변화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원앙이 둥지를 틀고 물총새가 날아다니던 강변 숲이 무너졌고, 부엉이 울음소리가 메아리쳐 오던 강 건너 절벽이 순환 도로 건설이라는 이름으로 무너져 내렸다.

▲ 2012년 10월. ⓒ지율스님

영주 댐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내성천변에서 2미터 이상 강을 준설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보통은 1미터 정도 깊이로 강을 준설하고 나면 여름이 지나면서 모래가 다시 쌓여 회복되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주 댐 공사가 진행되면서 18킬로미터의 강변은 수몰 지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깊이 파면 팔수록 좋다는 식으로 강을 파헤쳐 준설 공사가 끝난 후에도 깊고 탁해진 강으로 선뜻 내려갈 수가 없었다.

한 달 쯤 지나니 모래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두 달이 지나자 모래톱이 1미터 정도 다시 쌓였다. 나는 폐허 속에서 생존자를 찾는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강에 내려섰다.

그 순간 모래톱 위에 올라왔던 큰 자라 한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긴 목을 물에 담그고 급히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주의 깊게 살펴보니 피라미들도 보였고 무래무지도 보였다. 여덟 달 가까이 강바닥을 긁어내는 전쟁 같은 시간을 지나면서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었구나하는 안도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 2013년 8월. ⓒ지율스님

▲ 2013년 8월. 모래가 돌아오는 강은 인간의 파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회복의 가능성이 있다. ⓒ지율스님

그러나 모래톱이 돌아오는 이 현상을 마냥 기뻐 할 수만은 없다. 기실 동호 강변에 퇴적되고 있는 모래는 운포구곡을 지나고 무섬 마을을 지나고 회룡포 강변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가야 하는 모래이지만 자금은 영주 댐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동호강변에 재퇴적 되는 모래 양만큼 영주 댐 하류가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 동호 강변. 이렇게 망가졌던 동호 강변이 모래가 공급되면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동호 강변의 예는 상류로부터 모래 공급이 끊긴 낙동강이 얼마나 살아남기 어려운지 보여준다. ⓒ지율스님
지난번 황폐해진 무섬 마을을 먼저 이야기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모래가 돌아오는 강과 돌아오지 않는 강, 회복 가능한 강과 회복 불가능한 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영주와 예천의 골재 채취는 시와 군의 세수를 위한 주 사업이었다. 상주, 구미, 왜관 성주 역시 해마다 수백 톤의 모래를 낙동강에서 채취했지만 한해 여름이 지나면 대부분 메워지곤 했다. 이렇게 낙동강 상류에 퇴적 되는 모래의 절반 정도가 이곳에서 흘러내려 갔다는 사실은 내성천이 얼마나 경이로운 강인지를 말해준다.

4대강 사업은 강에서 모래를 퍼낸 사업이었고 낙동강의 경우 우리의 산술로 짐작하기 어려운 수치인 4.4억 톤의 모래를 강에서 퍼 올렸다. 모래를 퍼낸 부작용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부조화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학자와 환경 단체는 보를 허물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설령 보를 허문다 해도 내성천과 같이 모래를 공급하는 1급수의 지천이 남아있지 않다면 강의 회복은 불가능 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기실 4대강 이후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곳은 지천들이며 지천의 상태와 변화, 지천 주변 지역의 지하수 하강 현상에 대한 데이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홍수가 오기 직전, 낙동강 상류에서 강정보 상류까지 비교적 규모가 큰 20여 곳의 지천을 돌아보았다. 사람의 인성이 길흉에 드러나는 것과 같이 강은 가뭄과 홍수에 본연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래 5장의 사진은 모두 6월 10일 찍은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상류의 지천 사진이다.

▲ 내성천 회룡교 상류. ⓒ지율스님

▲ 산양 금천. ⓒ지율스님

▲ 낙동강 본류(삼강 상류). ⓒ지율스님

▲ 문경 영강. ⓒ지율스님

▲ 상주 병성천. ⓒ지율스님

낙동강 상류에서 합수하는 50킬로미터가 넘는 하천 중 1급수의 하천은 내성천이 유일하다. 그러하기에 안동댐, 임하댐을 거쳐 2급수로 내려오던 낙동강이 삼강에서 내성천과 합수하면서 구미까지 1급수로 흐를 수 있었던 것이다.

내성천이 1급수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풍화되기 쉬운 화강암질 편마암 지역이라는 지질학적인 요인 외에 그동안 내성천 댐이나 보와 같은 인공 구조물이 중하류에 없었기 때문이다.

위 사진에서 보는 대부분의 지천들은 중 하류에 1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보들이 들어서 있어 자연 하천으로의 기능을 상실한 강들이다. 영주 댐 이후 내성천에 찾아 올 변화도 위 지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음 글에서 4대강 이후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지천의 변화를 살펴보려 한다. (계속)

▲ 동호 강변은 2011년 프레시안 창간 10주년을 맞아 독자들과 걸었던 강변이다. 위 풍경의 왼쪽 언덕에 내가 머물고 있는 텐트가 쳐 있다. ⓒ지율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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