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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주위에 UFO 항시 대기!" 진짜야?

[이명현의 '사이홀릭'] <구라 논픽션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가뭄으로 땅은 터져나가는데 4대강 때문에 홍수가 없다고 구라를 친다. 몰래 한일군사정보협정을 맺으려다가 들키자 국민의 뜻이 원래 그런 줄 알았다고 구라를 친다. 과학교과서에서 진화론을 빼버리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써넣어야 한다고 구라를 친다. 원래 구라는 구라일 뿐. 다 웃자고 하는 짓인데 정색을 하면서 그게 진실이라고 구라를 친다. 그런 구라는 재미있지도 웃기지도 않는 거짓말에 불과하고 사기일 뿐이다.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자신은 진짜 양이고 자기가 하는 말은 진리라고 정색하면서 구라를 치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한동안 가슴에 꽉 차 있었다. 게리 라슨이 그린 만화의 한 컷처럼 그들은 뼛속까지 양의 흉내를 내기 위해서 집에서도 양의 탈을 벗지 않고 생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드디어 비가 내렸다. 4대강 때문에 비가 내렸다고 구라를 칠 것인가, 하나님 때문에 비가 내렸다고 구라를 칠 것인가. 온갖 거짓부렁으로 정색하는 가짜 사기 구라 말고 정말 구수하고 빵 터지는 슈퍼소닉 오리지날 울트라 구라가 어디 없을까. 워낙 답답한 마음에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몇 년 전 소설가 이외수가 진행하는 토크쇼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외계생명체에 대해서 담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방송용 녹화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UFO와 외계인에 대해서 옥신각신 하는 정도로 마무리를 지었다.

녹화가 끝난 다음 그는 나를 붙잡고 밤이 깊어 넘어가도록, 달에 사는 외계인을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채널링을 통해서 달에 사는 외계인들과 교통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서적 문화적 습성에 대해서 구라를 털어 놓았다.

▲ <구라 논픽션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파토 원종우 지음, 한스컨텐츠 펴냄). ⓒ한스컨텐츠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에 온 인간을 신기하고 엉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채널링을 통해서 왔다 갔다 하면 될 것을 뭣 하러 그런 무거운 쇳덩어리를 끌고 달까지 왔냐는 반응이었단다. 달 외계인들은 특히 지구인들이 발명한 자전거를 좋아한다고 했다. 지붕 위에 자전거를 달아놓으면 지구로 한번 오겠다고 했다는 말도 전해줬다. 천문학자를 앞에 두고 풀어내는 구라의 구수함과 스케일이 멋졌다.

나는 끝끝내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유쾌한 구라를 풀며 밤을 보냈다. 나는 화성인과의 채널링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물론 참가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외수 작가와의 그 날 밤의 대화는 유쾌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문학적 상상력이 몸으로 체득화된 구라는 유쾌하고 천진난만하고 아름다웠다. 무아지경으로 칼춤을 추는 무당 같았다. 결과는 정해졌지만 최대한 멋있고 진짜처럼 연출하려는 1급 프로레슬러 같았다. 구라도 이쯤 되면 대가의 면모가 풍긴다. 이 이야기를 소설로 쓸 것이라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덧붙였다. 어느 날 갑자기 달이 사라졌다는 엄청난 구라를 풀면서 시작했던 이외수의 소설 <장외 인간>(해냄 펴냄)이 떠올랐다. 그는 또 어떤 구라를 어떤 소설을 통해서 만들어낼까, 기대된다.

얼마 전 <딴지일보>에서 '파토'라는 필명으로 활약하는 원종우를 만났다. 그와 이런 저런 작업을 같이 하게 되면서 그가 또 다른 유형의 '구라'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으름 탓에 그가 딴지일보에 연재했다는 글은 미처 읽어보지 못했다. 뒤늦게 그의 책 <구라 논픽션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파토 원종우 지음, 한스컨텐츠 펴냄)을 읽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일러둘 것은, '구라 논픽션'이라는 이 책의 장르가 가진 의미를 미리 이해하고 읽자는 거다. 본서는 이를테면 프로레슬링 같은 거다. 프로레슬링은 각본이 짜여 있고 승패가 결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오락적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 선수들은 엄청난 양의 운동으로 몸을 만들고, 또 큰 부상을 감수하면서 링 위에서 위험천만한 액션을 선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레슬링은 비록 엔터테인먼트지만 일개 쇼는 아니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몸놀림이나 액션은 CG나 특수효과가 아닌 진짜이기 때문이다."

원종우가 만들어 냈다는 '구라 논픽션'이라는 장르는 내가 보기에 '구라'의 본질로의 복권 선언 같았다. 구라를 진실로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양으로 우기는 세상에서 당당하게 구라는 원래 구라일 뿐이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이런 구라 선언에 구라의 힘이 있고 구라의 진실이 담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적 내용에 대한 검증은 애당초 시도하지 않았다. 구라를 그냥 구라로 받아들이면서 즐겼다. 구라를 구라라고 하는 구라에 대한 합의와 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 논문이나 과학 에세이를 읽을 때의 엄격함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시비를 걸지 않고 <구라 논픽션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을 읽었다.

"광속의 한계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수많은 UFO가 지구상에 출몰하고 있다면 가장 심플한 답은 이거다. 이들은 먼 데서 개별적으로 오는 게 아니라 지구 주변 어딘가에 항상 진을 치고 있는 거다."

과학적 발견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장면에는 사실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검증을 시작하자면 금방 시비를 가릴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하지만 UFO가 지구 가까운 곳에서 날아온 무엇인가였다는 착상에서는 신선함을 느꼈다.

UFO가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이라고 연결시키는 데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별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다.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다른 행성계까지의 거리가 빛의 속도로 달려도 4년이 넘어야 도달하는 거리에 있다. 이 문제를 화두로 삼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런 착상을 이어가는 스토리텔링은 원종우의 1급 프로레슬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지구 근처에서 사건이 일어나야하니 자연스럽게 지구 주변의 달과 화성과 다른 비밀스러운 무엇이 등장하게 된다. 그들 사이에 관계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사건이 생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의 착시 현상을 적극적으로 적절하게 활용하는 구라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꿈같지만 현실 세계에서 한번쯤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머금고 있는 그런 이야기. 원종우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의 내용은 더 이상 밝히지 않겠다. 나도 스포일러가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장은 이 스토리가 진실이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진실이면 재미있겠다.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는 순간 소장 또한 자기기만에 빠진 일부 음모론자들과 똑같이 되고 말 거다. 그건 별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닌 것 같다. 프롤로그에서 밝힌 바대로 본서는 프로레슬링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서 다시 한 번 '구라 논픽션'의 본질을 강조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원종우의 내공이 드러난다. 이외수가 몰입하는 구라를 구사한다면 원종우는 거리를 두는 구라를 구사하고 있다. 구라는 구라일 뿐이라는 선언과 다짐을 계속함으로써 쓸데없는 논쟁을 피해가면서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B급 구라 논픽션을 지향하고 있지만 1급 엔터테인먼트로서의 프로레슬링의 모습을 떠올리게 유도하고 있다.

이 흉흉한 세상에서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의 가짜 구라 대신 이외수와 원종우의 진짜 구라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큰 위안이다. 한국은 농담을 잘못하면 체포되는 나라라고 비아냥거리는 외신 보도를 마냥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암울하다. 재미있게 구라를 치면서 노는 세상이 진짜 진실된 세상이다. 지금 이 순간, <구라 논픽션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이 소중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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