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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기예보 자꾸 틀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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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기예보 자꾸 틀리는 이유?

[이명현의 '사이홀릭'] <날씨는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날씨가 미쳤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고 땀을 많이 흘리는 나는 요즈음 정말 죽을 맛이다. 날씨가 추우면 옷을 더 껴입으면 되지만 더우면 더 벗을 옷도 없고 대책이 없다. 하루하루를 시름시름 지내는데 이강백의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이강백 희곡전집 5>, 이강백 지음, 평민사 펴냄)가 떠올랐다. 희곡으로도 읽었고 중학교 3학년 때 지금은 없어진 덕수궁 돌담길 옆 쎄실극장에서 연극으로 처음 만났었다. 고3때 역시 지금은 없어진 운현궁 옆 실험극장에서 다시 봤었다. 다시 또 보고 싶은데 기회가 없었다.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의 배경은 장마철이었던 것 같다. 몇 주일째 계속 비가 내리고 있는 설정이었다. 연극 내내 빗속에서 지냈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비가 내리는 거리로 손에 손을 잡고 뛰쳐나가는 마지막 장면은 늘 가슴 뭉클하게 남아있었다. 이 가뭄에 제발 좀 비가 왔으면 좋겠다. 비가 오면 홀라당 옷을 벗어던지고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다. 손에 손잡고.

책 한권이 도착했다. <날씨는 미쳤는가>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날씨가 미치니까 책 제목도 미친 걸 강조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진짜 제목이 보였다. <날씨는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류상범 지음, 황금비율 펴냄)였다.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이 작은 폰트로 처리되어있었다. 이중적인 의미를 나타내려는 고도의 전략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날씨는'이라는 제목 글자 위에 역시 더 작은 노란색 글씨로 '우표로 들려 주는 날씨이야기'라는 설명글이 눈에 들어왔다.

▲ <날씨는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류상범 지음, 황금비율 펴냄). ⓒ황금비율
정리하자면 <날씨는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우표와 함께 풀어가는 일반인들을 위한 날씨와 기후 이야기인 것이었다. 서평을 쓸 때마다 느끼는 부끄러움이지만 내가 읽은 책이 참 별로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 책이 내가 읽는 첫 대중 기상학 책임을 고백해야겠다. 기상학(또는 대기과학)에 대한 지식의 수준으로 치자면 나는 당연히 일반 대중으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입학했던 대학교 학과의 이름이 천문기상학과였고, 일반기상학을 두 학기나 정식으로 배웠으니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원죄가 많다. 그 때 그 기회에 좀 더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면 하는 후회가 늘 남는다. 천문학을 전공한다는 치기로 기상학 공부를 등한시했었고 간신히 낙제만 면했던 기억이 난다. 그랬다면 날씨 물어보는 친구들한테도 당당하게 답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어쨌든 <날씨는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대중 기상학 책에 대한 내 첫 경험이었다.

하지만 내가 당시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했어도 날씨에 대해서 뭘 예측한다는 것은 애당초 어불성설일 것이다. 20년 넘게 기상청에서 일하는 동기들도 여전히 일기예보 앞에서는 쩔쩔 매고 있으니 말이다. 학과 동기들 모임이 있을 때도 기상청에 근무하는 친구들은 모임에 오지 못하기가 일쑤였다. 저번에는 태풍 때문에, 이번에는 가뭄 때문에, 요번에는 일기 예보가 빗나가서 질책성 비상근무 때문에. 그들은 늘 노력하지만 날씨는 자주 그들을 배신했다.

얼마 전에는 기상청에 근무하던 선배 한 명이 잠을 자던 중 급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급성심근경색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일기예보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지내고 난 후 그 짐에서 벗어나서 교육 중에 숨을 거두었단다. 날씨의 변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 일기예보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고충과 격무는 말 할 것도 없겠다. 교육 기간 중에 숨을 거둔 그 선배의 죽음을 업무 중 숨진 것으로 볼 것이냐는 논란이 있었는데, 잘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날 최첨단의 슈퍼컴퓨터와 수천억 원 하는 기상 위성을 이용하고도 일기 예보에 대한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다. 오래 전에 한 방송국 저녁 9시 뉴스 바로 뒤에 이어서 방송했던 '날씨와 생활'이라는 날씨 프로그램이 있었다. 당시 시청률이 꽤 높아 광고를 달고 독립적으로 편성되었는데, 3분짜리 날씨 프로그램에서 1년 동안 거둔 수익이 천억 원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성과 덕분인지 몰라도 우리나라 날씨 프로그램으로는 처음으로 해외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프로그램 담당이었던 조문기 기자와 함께 일본에 간 적이 있다. 일본 기상청을 방문하여 일기 예보를 생산하는 장면을 스케치하고 거리에서 섭외한 일본인에게 일기 예보 만족도를 문의하는 구성이었는데, 인터뷰 했던 일본인들이 한결같이 일본 기상청의 일기 예보에 불만을 표했다. 당시 조문기 기자가 프로그램 말미에 클로징 멘트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일기 예보를 하기에 아주 힘이 듭니다."

지은이가 경험했던 이 일화는 일기예보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상청에서 근무하는 지은이의 취미가 우표 수집이다. 그의 말대로 '전공이며 밥벌이인 기상 연구와 취미인 우표 수집을 묶어 하나의 책으로 만든 것'이 바로 <날씨는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였다. 이 책에는 날씨와 기후 자체 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우표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과학 전반에 걸친 우표들도 여럿 보인다. 그래서 <날씨는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글도 그렇지만 우선 눈이 즐거운 책이다.

개인적으로 아폴로 8호가 찍은 지구 사진이 들어있는 우표, 다양한 눈송이 모양을 담은 우표 시리즈, 이탈리아산 와인 'Calissano'를 광고하는 봉함엽서, 삼국지는 좋아하지 않지만 적벽에서 연환계로 묶인 위나라 배들을 남동풍으로 불태우는 제갈공명의 모습을 담은 우표, 그리고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자오선이 그려져 있는 우표가 탐난다.

"그럼 수증기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습윤한 공기의 밀도가 건조한 공기보다 더 클까? 아니다. 산소 분자의 분자량은 32이고, 질소 분자의 분자량은 28인데 반해 수증기의 분자량은 18이다. 따라서 수증기가 공기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커질수록 공기의 평균 분자량은 작아진다. 즉 습윤한 공기가 건조한 공기보다 가볍다."

이 책에는 이렇게 착각하기 쉬운 소소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잔재미를 준다. 처음 섭씨 온도가 도입되었을 때는 끓는점을 0도로, 어는점을 100도로 했었다는 이야기도 처음 알았다. 지금과 같은 눈금 체계로 돌려놓은 것은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데라고 한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날씨와 기후는 우리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왔고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생존 조건이었다. 날씨와 기후는 우리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먹고 입고 머무는 것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산업, 경제, 건강, 스포츠, 레저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역사의 전개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된 문명의 탄생과 쇠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숱한 전쟁과 혁명 역시 날씨와 기후로 인해 흐름이 달라지곤 했다. 또한 동물과 식물의 분포, 사막의 위치뿐만 아니라 민족의 체형, 피부색, 국민성, 국가의 부 등도 날씨와 기후에 영향을 받았다."

이 책에는 소소한 재미를 주는 내용을 뛰어넘어 날씨와 기후와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내용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동안 변덕스러운 날씨로만 생각했던 기상현상이 얼마나 우리 생활 속에 크고 깊게 자리잡고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날씨와 기후와 관련된 신화로부터 역사를 바꾼 기상현상까지. 그리고 지구온난화 문제로부터 날씨와 기후를 정량화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담긴 관측기기의 발명에 얽힌 이야기까지. 더 나아가서 일기예보를 위한 오랜 국제협력의 모습까지 이 작은 책에 모두 담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일련의 사건과 관련된 우표를 보는 재미를 놓칠 수 없는 책이다.

<날씨는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가뭄과 더위에 짜증나는 오후, 내 눈을 즐겁게 해주고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쁨을 주었던 단비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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