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미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국내에서도 원작 소설이 인기를 끌게 됐다. 마니아들의 뜨거운 반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얼음과 불의 노래>는 맹렬한 중독성을 지닌 콘텐츠인데, 기자에겐 이 책에 나오는 스타크 가문의 가언인 "겨울이 오고 있다"라는 말이 유독 머리에 박혔다.
소설 속 가상의 대륙이 거대한 기후 변화를 겪게 되리라는 암시다. 긴 겨울이 오면, 막장 드라마 수준의 이전투구를 벌이는 소설 속 주인공들은 다시 운명의 반전을 겪게 될 것이다.
현실도 그렇다. 유난히 사나운 겨울이 오면, 아무리 견고한 권력이라도 견딜 재간이 없다. 이자성의 농민군이 베이징에 입성하고 명나라 숭정제가 회나무에 목을 맸던 1644년, 대륙 반대편 영국 런던의 템스 강은 꽁꽁 얼어붙었다. 유독 사나운 겨울이 유라시아 대륙을 덮쳤던 게다.
추위로 농사를 망친 농민들은 기근에 시달렸다. 세금을 낼 여유가 없다는 농민과 세금이 부족한 정부가 서로 부딪혔다. 부족한 정부 재정은 결국 바닥을 드러냈다. 봉급이 불안한 군인과 관료는 충성을 거둬들였다. 한마디로 중원의 권력이 만만해졌다. 만리장성 북쪽의 거친 북방 민족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초원이 메마르자 말 먹일 풀이 없어졌다. 굶주린 민족을 먹여 살리려면 남쪽으로 내려와야 한다.
소수의 만주족이 중국 대륙을 장악한 대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는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중국 주변 국가의 지식인에게도 세계관의 변화를 낳았다. 문명의 중심이 사라진 것이다. 한국과 일본, 베트남 등은 슬슬 자기네 문명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게 됐다. 각자의 길을 걷던 이들 국가는 훗날 서양 제국주의의 침탈 앞에서 나름의 선택을 하고, 결국 제각각의 운명을 맞게 된다.
기후 변화가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되면서, 만리장성 이북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견고한 주택과 성, 난방 시설을 갖추고 정착 생활을 하는 이들에 비해 유목 민족은 기후 변화에 훨씬 민감하다. 김형수의 장편 소설 <조드>(전2권, 자음과모음 펴냄)가 출간됐다는 소식에 기대를 걸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 <조드>(전 2권, 김형수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자음과모음 |
<조드>는 테무친, 훗날 칭기즈칸이 된 몽골 제국 건국자의 생애를 다룬 소설이다. 만주족에게 망한 한족의 나라 명, 그 이전에 중원을 장악했던 유목 민족의 이야기다. 작가는 <조드> 집필을 위해 몽골 현지에서 10개월 동안 체류했다고 한다. 그 전에도 여러 차례 몽골을 오가며 취재를 했다. 또 몽골 제국 건국사와 관계가 있는 신화, 민담 등을 탐독했다고 한다.
왜 초원의 유목 민족은 12세기 말과 13세기 초의 시기에 크게 떨쳐 일어나게 됐는가. 그 중심에 있었던 테무친은 과연 어떤 인간이었는가. 이게 <조드>가 다루는 내용이다.
다만, 기대를 걸었던 독자로서 안타까운 점은 이런 이야기가 크게 새롭지 않다는 점이다. 테무친의 생애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됐다. 지금도 허영만이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라는 만화를 포털 사이트에 연재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칭기즈칸 탄생 850년째로 알려진 까닭에 관련 콘텐츠가 특히 풍성할 것으로 보인다. (칭기즈칸이 태어난 해가 정확히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야생의 거친 환경,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의 본능 등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를 기대하고 책을 펼친다면 <조드>는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 있다. 특히 몽골의 혹독한 겨울을 배경으로 늑대 떼가 주인공의 말을 공격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압권이다. 또 정주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하던 말, 고원에서 부는 열두 가지의 바람소리를 식별할 수 있어야 어엿한 어른이 되는 거다, 때문에 공기의 흐름을 섬세하게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말라비틀어진 염소 가죽에 붙은 엉덩이를 슬쩍 떼었다가 다시 붙여놓는다. 간밤에도 며칠간 잠잠하던 날씨가 한없이 고요해지더니 어느 순간 바람의 숨결이 바뀌던 것, 또 간헐적으로 대기의 순환이 멎을 때마다 우웅-, 머리가 울리던 것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 다시 이명 소리가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것이 틀림없는 전조였다. 날이 밝고 서너 참이 지나면 흰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 바람이 불 것이다. 그 바람이 부는 날은 하늘 아래, 초원 위에, 목숨을 가진 것들은 모두 무서워서 떤다. 덕분에 공기를 더럽히는 것들이 없어서 대평원의 기운이 티 없이 맑은 허공에 떠 있다. 그런 날 말을 타고 달리면 원기가 회복되고 하늘의 정기를 얻는다는 말을 족제비 할머니에게 들었다."
유목민은 열두 가지 바람소리를 구별하며 산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건물 밖에 나서야 날씨를 안다. 그나마도 건물에서 건물로 이동하는 잠깐뿐이다. 늘 바람의 숨결을 느끼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 인류의 긴 역사로 보면, 전자가 훨씬 익숙한 삶이다. 후자 역시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 아무도 모른다. 예컨대 석유가 고갈된다면, 그래서 전기가 귀해지고 에어컨과 난방 기기가 쓸모없어진다면, 우린 다시 바람소리를 세심하게 구별하며 살아야 할 게다. 인류의 탄생과 종말을 아우르는 긴 시야로 보면, 지금 우리가 도시에서 사는 방식이 오히려 예외로 비칠 게다. <조드>에 묘사된 삶의 양식은 그래서 어쩌면 우리의 미래상일지도 모르겠다. 거친 땅에서 살아가는 유목민의 삶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그래서였다.
하지만 이런 매력은, 정확히 주인공 테무친이 권력을 얻어가는 과정과 반비례해서 줄어드는 느낌이다. 테무친이 초원의 지도자, 칭기즈칸이 되고 나서의 이야기가 실린 2권부터는 특히 그렇다. 테무친의 어린 시절, 정주 문명의 기록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그 시절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복원하는데 초점을 맞췄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든다.
<조드> 2권까지 읽어도 '조드'로 대표되는 '겨울 재앙'이 왜 유목 민족을 농경 문화권으로 내몰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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