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만 그런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대선 결선에 늘 드골주의 우파와 사회당 후보가 올라가곤 했다. 단 한 차례 예외가 있기는 했다. 2002년 대선이다.
이때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후보가 1차 투표에서 3위(16.18퍼센트)를 하는 바람에 극우파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펭(16.86퍼센트)이 우파 자크 시라크와 결선에서 맞붙게 되었다. 프랑스 좌파로서는 정말 치욕스러운 경험이었다. 극우파에 맞서 좌파의 오랜 숙적, 시라크에게 표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덕분에 1차 투표에 나온 비사회당 좌파 후보들이 난데없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사람이 '시민운동'(당 이름이 이랬다. 후에 '시민공화운동'으로 당명을 바꾸었다)의 장 피에르 슈벤망 후보(5.33퍼센트 득표)였다.
사실 '노동자 투쟁'(트로츠키주의 조직)의 아를레트 라기예(5.72퍼센트)나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역시 트로츠키주의 조직)의 올리비에 브장스노(4.25퍼센트), 녹색당의 노엘 마메르(5.25퍼센트)도 슈벤망 만큼이나 좌파 성향 표를 분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런데도 슈벤망이 유독 욕을 먹은 것은 그가 본래 사회당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사회당 입장에서는 '배신자'로 보일 만도 했다.
그러나 슈벤망은 결코 천덕꾸러기 취급이나 받아야 할 그런 정치인은 아니다. 그는 1968년 5월 봉기 이후 한 세대 넘는 세월 동안 프랑스 현대사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대안에 뭔가 문제가 있기는 했을망정 그의 이력에서 동시대 다른 주류 좌파 정치인들과 같은 혐의를 찾아낼 수는 없다. 그는 한 번도 신자유주의에 무릎 꿇은 적이 없는 좌파다.
30년 전 그때, 그곳에 그가 있었다
1939년생인 슈벤망은 1968년에 아직 20대였다. 이 무렵 프랑스에는 68 운동의 세례를 받은 젊은 세대가 지지할 만한 좌파 정당이 없었다. 거대 좌파 정당이 있기는 했다. 프랑스 공산당. 하지만 공산당은 낡은 스탈린주의 전통 때문에 젊은이들에게는 기피 대상이었다. 5월 봉기 당시 공산당이 취한 소극적인 태도도 청년들이 이 당에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또 다른 좌파 정당,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SFIO)도 매력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이상한 이름을 단 프랑스판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교원노동조합의 지지에 의존하며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당은 알제리 민족 해방 혁명 때 노골적인 제국주의 입장을 취한 이후 거의 재기불능 상태였다.
슈벤망은 SFIO 당원이었다. 그러나 이 당을 그 이름 그대로, 이제까지의 성격 그대로 이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와 그 주위의 동지들은 SFIO의 역사적 기반을 접수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성격의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 새 정당으로 좌파 제1당의 자리를 놓고 공산당과 경쟁하길 바랐다. 그래서 이들은 당 안에 '사회주의 연구, 조사, 교육 센터'(약칭 CERES)라는 조직을 새로 띄웠다.
CERES는 전후 사회민주주의 세계에서 금기시돼온 '국유화' 강령을 다시 끄집어냈다. 또 68 세대가 제기한 '자주 관리'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이를 바탕으로 공산당의 유로코뮤니즘과 경쟁하고 이를 대체할 급진적 사회주의 노선을 정초하려 했다. 이러한 시도는 앙드레 고르의 탈자본주의 구조 개혁론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본래 사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꾸로 선 이념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주의는 발전된 자본주의를 민주적으로 극복함으로써 체제 내부에서 탄생할 터였다. (…) 그렇다면 우리는 개혁적이었는가, 아니면 혁명적이었는가? 물론 양쪽 다였다. 우리는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1966년 '혁명적 개혁주의'를 주창했던 앙드레 고르의 충실한 독자였다. (25~26쪽)
이 CERES가 좌파의 거의 유일한 대중 정치인이던 프랑수아 미테랑과 손잡고 새로 만든 게 지금의 프랑스 사회당이다. 슈벤망은 미테랑의 요청으로 사회당의 강령을 작성했고, 1974년과 1981년 대선 공약을 기초하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미테랑은 이 공약을 바탕으로 1981년에 집권해서 9대 제조업 그룹과 주요 은행들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이때 슈벤망은 산업장관에 임명돼 국유화 정책의 집행을 책임졌다.
이 시기에 프랑스 좌파는 전 세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폴 볼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지휘 아래 나머지 세계가 통화주의의 훈육을 고통스럽게 감내하고 있을 때 프랑스 좌파 연합 정부(사회당 정부에 공산당까지 참여했다)만 홀로 케인스주의 확대 정책을 펼쳤다. 다들 금융 세력이 주도하는 자본 우위의 세계 질서(이후 '신자유주의 지구화'라 불리게 되는)를 향해 나아갈 때 유독 프랑스만 거대 자본의 국유화를 추진했다. 68 운동의 여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프랑스 좌파의 영광의 시절이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영미계 금융 자본의 철수로 인한 외환 시장의 혼란, 그리고 그때마다 서독 연방은행이 유럽통화체제(EMS)를 통해 프랑스에 가한 통화주의 수용 압박 앞에서 프랑스 좌파 연합 정부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EMS에서 탈퇴하고 초국적 금융 세력 및 미국, 서독의 우파 정부에 맞서 항전할 것인가, 아니면 시장 지상주의라는 대세에 뒤늦게 합류할 것인가?
결국 미테랑 정부는 1983년에 후자, 즉 굴복을 선택했다. 이것은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영국, 프로이센 연합군에 대패했던 워털루 전투만큼이나 세계사적인 패배였다. 당시 지구 곳곳의 좌파에게 이것은 더 이상의 저항은 소용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였다. 브라질 노동자당 좌파의 이론가인 에미르 사데르는 훗날 프랑스 좌파 인사들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1983년 프랑스가 '다른 정치는 불가능하다'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우리들은 완전히 사기를 잃고 말았어요. 한마디로 레이건과 대처가 가리키는 방향 말고는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어떤 대안도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으니까요." (50쪽)
1983년에 그럼 슈벤망은 어디에 있었던가? 그는 물론 항전파였다. EMS, 더 나아가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프랑스 공화국은 초국적 금융 세력에 맞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선택의 순간에 그는 아무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는 처지였다. 너무 '급진적'인 경제 계획을 추진한다는 공기업 사장단의 불평 때문에 산업장관에서 막 밀려나 한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졸저 <신자유주의의 탄생>(책세상 펴냄)의 제5장 "유럽의 황혼"에는 이러한 과정이 좀 더 상세히 서술돼 있다.
아무튼 이때부터 프랑스 사회당은 유럽 전체에 시장지상주의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설득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미테랑 정부의 재무장관이었던 자크 들로르가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되어 단일 통화, 즉 지금의 유로화 출범을 주도했다. 프랑스의 발목을 잡았던 EMS를 유럽 전체로 확산한 것이다.
이 야심찬 시도의 결말이 곧 지금의 그리스 사태다. 이 모든 선택을 미테랑은 '유럽 통합'이라는 고상한 깃발 아래 긍정하고 또한 지원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사회당과 슈벤망 사이의 거리는 멀어졌다. 그는 결국 1992년에 걸프전에서 프랑스가 미국을 일방적으로 추종한 데 반발하며 사회당에서 탈당했다. 이후 그는 CERES의 후신인 '시민운동'이라는 소규모 정당을 이끌며 사회당으로서는 가장 껄끄러운 비판자가 되었다.
30년 전으로 돌아가 역사를 묻다
▲ <프랑스는 몰락하는가 : 갈림길에 선 프랑스의 선택과 유럽연합의 미래>(장 슈벤망 지음, 정기헌 옮김, 씨네21북스 펴냄). ⓒ씨네21북스 |
그리고 놀랍게도 이 책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프랑스는 몰락하는가 : 갈림길에 선 프랑스의 선택과 유럽연합의 미래>(정기헌 옮김, 씨네21북스 펴냄)). 슈벤망이 국내에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구나 영어권 인물도 아니라는 점에서 이 기민한 국내 소개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혹시 프랑스 저자의 책이어서 읽기를 망설일지도 모르겠다. 저명한 프랑스 철학자들의 책을 손에 들었다가 낭패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하지만 슈벤망은 프랑스인이라 하더라도 철학자가 아니다. 대중 정치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비교적 술술 읽힌다.
반대로 정치인이 쓴 책이어서 깊이를 의심할 수도 있겠다. 어느 나라나 정치인이 쓴 책 치고 한 보따리의 자기선전이나 변호 아닌 게 별로 없기는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더구나 선거를 앞두고 나온 책이라면 더 의심해봄직하다.
그러나 이 책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슈벤망의 지나친 자기 확신이 묻어나는 문장들을 비판적으로 읽는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충분히 일독의 가치를 지닌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프랑스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그리고 유럽 재정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럽이 취해야 할 선택에 대한 사뭇 진지한 고민이 책 전체를 꿰뚫고 있다. 지금 프랑스가, 유럽이 어떠한 고뇌에 휩싸여 있는지 이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자료다.
슈벤망은 이 책에서 '거슬러 올라가 되돌아보기(thinking backward)'의 사유를 거듭한다. 미테랑 정부가 '사회주의'를 약속해놓고 '시장주의'를 불러들인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고, 더 멀리는 장 모네가 유럽 통합을 프랑스의 국가 과제로 제시하던 제2차 세계 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슬라보예 지젝은 이러한 '되돌아보기'의 사유 방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우리는 운명적 결정이 내려지기 이전으로, 혹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상으로 여겨지는 상태가 연원한 우발적 사건 이전으로 우리 자신을 되돌려 놓아야만 한다. 이러한 열린 결단의 순간을 명확히 드러내는 그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순간에 역사가 다른 전개 방향을 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Slavoj Zizek, "Thinking Backward : Predestination and Apocalypse", Edited by Slavoj Zizek, Paul's Moment : Continental Philosophy and the Future of Christian Theology, Brazos Press, 2010. p. 207)
슈벤망의 의도도 다르지 않다. 그가 미테랑이나 모네를 법정에 소환하는 것은 묵은 원한을 풀려는 게 아니다. "그때 그곳에서 나만은 옳았다"고 강변하려는 속셈만도 아니다. 프랑스 현대사의 중대한 역사적 선택의 순간, 그리고 그때 가능했던 다른 대안들을 곱씹으면서 지금 프랑스인들이 직면한 갈림길에 빛을 밝히려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 그럴 때가 되었다.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시작된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만큼이나 근본적인 선택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다만, 우리 자신이 아직 이 시대의 의미를 충분히 실감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슈벤망은 '때(時)'에 대한 예민한 감각으로, 지난 30여 년을 되돌아보며 미래를 탐사하는 작업에 누구보다 먼저 나선다. 30여 년 전 결단의 순간에 그 현장에 있던 장본인이 이런 작업에 나서니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의 결론도 흥미롭다. 그는 미테랑 정부 시절 유산되었던 이상을 '새로운 형태로' '재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그 중의 하나로서, 슈벤망은 주주 중심 기업 지배 구조의 전환을 제시한다.
산업 정책의 재수립은 순전히 금리 생활자에 불과한 주주들의 독재, 수익성에만 집착하는 익명의 자본과 단절하고 주주들에게 기업의 발전을 고민하는 책임성을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기업 경영의 주체인 경영자들의 역할 회복, 다시 말해 지속적으로 회사에 협력하는 주주들이 감독이사회의 다수를 점하는 새로운 기업 개념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직원 대표들 역시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정부도 직접 참여, 황금주, 현재 수준보다 확충된 투자 전략 기금 등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새로운 기업 개념 속에서 오직 감독이사회만이 회계감사위원회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적대적 인수 시도에 대항한 보호조치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새로운 기업 개념은 19세기의 유물인 합자 회사 개념과 단절하고 프랑스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진정한 비교우위를 누릴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363~364쪽)
한국에서는 진보신당이 '탈 삼성 공화국'을 총선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삼성의 기업 지배 구조를 뜯어고치자고 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감독이사회를 신설하고 노동자 대표가 감독이사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건희 일가 같은 재벌이 불법적 독재 권력의 발판으로 쉽게 악용하는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 지배 구조를 노동자-국민 기업 형태로 바꾸자는 것이다. 슈벤망의 제안이 지나치게 장기 투자자나 경영자를 특권화한다는 인상은 있으나 아무튼 그가 프랑스인들에게 던지는 대안은 진보신당의 '탈삼성' 논의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하겠다.
슈벤망은 유럽연합에 대해서도 기존의 선택폭을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는데, 어찌 보면 그의 책 안에서 가장 급진적인 것이 다름 아닌 이 대목이다. 그는 우선 유럽연합 내에서 개별 국민 국가의 정책 결정권을 보장, 강화하는 '국민의 유럽 공화국'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것이 독일 등의 완고한 입장 때문에 실현 불가능하다면, 과감히 '플랜 B'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유로존 탈퇴, 유로화 폐기다.
이런 대안들이 실현되지 못할 경우, 차선이긴 하지만 알랭 코타의 말을 따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서서히 죽어갈 바에는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편이 낫다." 유로화의 굴레를 벗어던지면 프랑스 경제에도 조금은 숨통이 트일 것이다.
금융시장과 신용평가사들에 겁을 집어먹은, 자칭 정치 경제 '책임자들'의 일상적인 협박에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 (…) 유로화의 존속을 문제 삼는 것은 프랑스에는 차선책일 뿐이다. (유로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프랑스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취할 수밖에 없는 대안이다. (394~395쪽)
프랑스 사회당 대선 후보 프랑수아 올랑드가 금융 규제와 부자 증세 좀 하겠다는 데 대해서도 거품을 무는 독일 정부나 영국 시티(City, 초국적 금융 중심가)다. 그런데 이런 문구 앞에서는 또 얼마나 경기를 일으킬까? 하지만 한때 황당한 망상 취급이나 받던 이런 주장을 더 이상 그렇게만 몰고 갈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지금 세계가 진입하고 있는 역사적 시간대에 지배 엘리트들이 처한 궁지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생태주의에 대한 몰이해
그러나 <프랑스는 몰락하는가>에는 우리를 당혹감에 빠뜨리는 대목들도 존재한다. 가령, 핵에 대한 슈벤망의 입장이 그렇다. 그는 프랑스에 아직도 존재하는 많은 장점과 저력들 중 하나로 "공화국 모델", "공공 서비스 전통" 등과 함께 "핵무기 보유"를 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399쪽). 또한 프랑스가 추구했어야 할 발전 방향 중 하나로 "핵 산업 강화"를 든다(244쪽).
유럽 최대의 핵 발전 국가 프랑스가 슈벤망에게는 극복 대상이라기보다는 자랑거리인 것이다. 핵 발전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는 올랑드 후보의 공약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현실 인식이라 하겠다. 슈벤망이 프랑스 녹색당을 마뜩찮은 눈길로 바라보는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미테랑 정부의 최대 오점이 1983년 금융 세력에게 무릎 꿇은 일이었다면, 그 다음 커다란 오점은 '레인보우 워리어(Rainbow Warrior)' 호 사건이었다. 1985년 프랑스 정보기관은 남태평양의 프랑스 핵실험을 막으려던 그린피스(Greenpeace) 선박 '레인보우 워리어'를 침몰시켰다. 이 사건으로 프랑스 좌파 정부는 세계인의 빈축을 샀다.
그런데도 슈벤망은 이때의 미테랑 정부의 태도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가 사표로 삼았다던 '혁명적 개혁주의'의 주창자 앙드레 고르가 생태사회주의의 고전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을 쓴 게 이미 미테랑 정부 들어서기 1년 전(1980년)이었는데도 말이다.
핵무기나 핵 발전은 여러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국내 총생산(GDP) 중심의 성장관 등 쟁점은 더 많다. 이 모두가 생태주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이것은 슈벤망의 약점일 뿐만 아니라 30여 년 전 프랑스 좌파의 탈자본주의 구조 개혁 대안의 한계이기도 하다. 미테랑은 비록 "삶을 바꾸자"는 슬로건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그 자신 이 구호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프랑스는 몰락하는가>의 결론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첫머리에서 우리의 당면 과제를 더 절실히 확인하게 된다. 이 도입부에서 갓 서른의 슈벤망은 CERES 동지들과 함께 68 운동 직후의 시대 상황에 맞춰 사회주의 이념과 운동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바로 그러한 작업이다. '소비에트+전력=공산주의'이라는 레닌 시대의 비전도 아니고 '국유화+핵 발전=삶의 변화'라는 30여 년 전의 비전도 아닌 우리 시대의 대안을 쓰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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