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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 그들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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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 그들의 미래는?

[후쿠시마 그리고 1년] 리처드 로즈의 <원자폭탄 만들기>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딱 1년이 됩니다. 21세기 인류 문명의 전환점으로 기록될지 모르는 후쿠시마 사고, 그 1년을 맞아서 '프레시안 books'는 특집호 '후쿠시마 그리고 1년'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후쿠시마 사고를 깊고 넓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책과 함께 선보입니다. <편집자>

냉전과 핵전쟁의 위협이 맹위를 떨치던 1957년에 월트 디즈니는 교육용 다큐멘터리 <우리 친구 원자(Our Friend the Atom)>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이른바 '원자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 핵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전해주겠다는 의도를 표방했지만, 실상은 전면 핵전쟁에 의한 인류 절멸과 핵실험에서 나오는 낙진 위협으로 불안해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안심 메시지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 친구 원자>는 당시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요청으로 각 학교에서 상영되어 베이비붐 세대의 미국인 거의 전부가 시청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고, 미국인에게 핵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 친구 원자>는 유튜브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에서 핵에너지의 등장 과정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다큐멘터리의 진행자로 출연한 과학자 하인츠 하버는 핵에너지를 <아라비안나이트>의 '어부와 지니' 이야기에 나오는 거인 지니에 비유했다. 이 이야기에서 가난한 어부는 바닷가에서 그물을 던지다가 우연히 구리 항아리를 건진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했던 그가 항아리의 뚜껑을 열자 거인이 나타나 어부를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어부는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거인이 작은 항아리에 들어 있었던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해 거인을 다시 항아리에 가두지만,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거인의 애원을 듣고 다시 풀어준다. 이로써 거인은 어부에게 봉사하는 충직한 하인이 된다는 얘기다.

이 얘기가 들려주는 핵에너지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핵에너지의 사용이 우연한 발견(바닷가에서 그물을 던지다 걸린)의 산물이며, 이를 빚어낸 인간(과학자)의 호기심은 자연스럽고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거인(핵에너지)의 엄청난 힘이 어떻게 쓰일지(파괴적 이용 vs. 평화적 이용)는 인간이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핵은 우리를 파괴할 수도 있지만 잘 길들이면 우리에게 봉사하는 충직한 하인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는 핵에너지의 발견과 이용에 대한 대다수 과학자들의 인식을 반영한 묘사일 것이며, 더 나아가 일반인들의 생각에도 심대하게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인식은 아마 지금까지도 그리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 <원자폭탄 만들기>(전 2권, 리처드 로즈 지음, 문신행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원자폭탄 제조에 이르는 연구 개발 과정과 이를 둘러싼 사회상을 장대하게 그려 낸 미국 작가 리처드 로즈의 책 <원자폭탄 만들기(The Making of the Atomic Bomb)>는 이러한 상식적 이해를 부분적으로 깨뜨려 준다. 로즈는 1986년에 이 책으로 퓰리처 상을 받았고, 이후 이 주제를 연장해 3권의 책을 더 펴냈다. (수소폭탄 개발 과정을 다룬 (1995년), 미소 군비 경쟁을 다룬 (2007년), 군축과 핵무기 폐기를 다룬 (2010년)가 그 책들이다. 이 중 은 국내에 곧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책 제목에서 떠올릴 수 있는 바와는 달리, <원자폭탄 만들기>의 1부(1권의 '우라늄의 파열'까지)는 얼른 보아 군사 무기와 별로 관련이 없는 듯한 20세기 전반기의 물리학(상대성이론, 양자역학, 핵 과학)의 흐름을 유장하게 보여준다. 2부(2권의 '이 시대의 재앙'까지)에서 그런 흐름들은 한데 합쳐져 연합국과 추축국의 대립과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사회적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이어 과학자와 정치인, 군대가 핵에너지의 이용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고 그것이 어떻게 원자폭탄의 개발로 이어지게 되었는지가 상세하게 그려진다. 마지막으로 3부는 원자폭탄의 실전 투하와 그 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로즈의 서술을 전반적으로 들여다보면 원자폭탄의 개발(을 통한 핵에너지 이용)이 단순히 인간의 호기심이 낳은 필연적인 귀결은 아니었음을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물론 20세기 초에도 프레드릭 소디나 레오 질라드 같은 몇몇 과학자들이 무한한 핵에너지의 이용 가능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토로한 적이 있었고, 허버트 조지 웰스 같은 작가는 소설 <자유로워진 세계>(1914년)에서 그런 전망을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려내기도 했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과학계 내에서 다분히 공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인식은 핵분열 현상이 발견되고 뒤이어 전쟁이 발발해 서유럽에서 치열하게 전투가 진행되고 있던 제2차 세계 대전 초까지도 과학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여기서 분위기를 바꿔놓은 것은 전쟁 시기에 독일이 원자폭탄을 먼저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망명 과학자들의 절대적인 공포감이었고, 이런 공포감은 이내 미국의 정치인과 군인들에게 옮겨 붙었다. 전쟁 초기만 해도 3년, 5년, 10년 혹은 그 이상 걸릴 것으로 여겨졌던 원자폭탄 개발이 불과 2년도 안되어 성공을 거둔 것은 그런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였다.

제2차 세계 대전기에 미국이 원자폭탄 개발에 쏟아 부은 엄청난 자원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흔히 원자폭탄 개발은 물리학자들이 이뤄낸 작품이라고 생각들을 하지만, 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이 책의 2권에서 잘 보여주고 있듯이, 미국 유수의 건설 회사와 화학 회사가 10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고용해 원자폭탄의 재료가 되는 '우라늄 235'를 농축하고 플루토늄을 분리 추출하는 거대한 공장들을 단기간 내에 짓고 가동하지 못했다면, 로스앨러모스에 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결코 폭탄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원자폭탄을 만들어낸 '맨해튼 프로젝트'는 거대한 과학 실험이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에서 거대한 토목 공사이기도 했다. 전쟁 초기에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미국을 거대한 공장으로 바꿔놓지 않는 한 원자폭탄은 절대 만들 수 없다"고 단언한 적이 있었는데, 미국이 실제로 한 일이 바로 그것―당시 미국의 자동차 산업보다 규모가 더 컸던 거대 산업을 일으킨 것―이었다. 요컨대 핵물리학의 역사가 20세기 전반의 어지러운 사회상과 뒤얽혀 엄청난 자극을 받지 않았다면, 핵에너지의 이용은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았더라도 적어도 훨씬 늦춰졌을 거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원자폭탄 만들기>에서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핵 발전의 역사 역시 핵에너지 이용의 자연스러운 연장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막대한 열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얻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전쟁 시기부터 이미 존재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는 그런 아이디어에 높은 우선순위가 주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전기 생산 방식이 과연 다른 에너지원들에 비해 경제성을 갖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들어 냉전 시기에 핵 발전 기술을 먼저 개발해 선점하는 것이 미소 간 체제 경쟁의 또 다른 요소로 부각되면서 핵발전소는 경제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도입되었다. 또 여러 국가들이 앞 다투어 원자폭탄 개발에 나서면서 폭탄의 재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만들어내기 위해 원자로의 운용이 필요했다는 점도 핵발전소 도입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이렇게 처음 모습을 드러낸 상업적 핵발전소는 핵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우리 친구 원자> 같은 작품이 퍼뜨리는 데 일조한―에 힘입어 196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핵 발전은 과학자들의 호기심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산물도 아니지만, 우리를 위해 봉사하는 충직한 하인이 될 수도 없음이 지난 50여 년 동안 일련의 극적인 사건들을 통해 드러났다. 1950년대를 풍미했던 기술에 대한 낙관은 우리가 마치 거인 지니를 길들이듯 핵에너지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핵발전소 기술을 포함한 복잡한 시스템 기술에 내재한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 그리고 이로 인한 몇 차례의 대형 사고들은 이러한 낙관에 심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1950년대 사람들에 비해 기술의 미래나 이를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과학기술자들의 자신감에 대해 훨씬 더 적은 확신을 갖고 있고, 그러한 변화는 많은 국가들에서 탈핵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핵에너지의 이용은 과학기술 연구의 자연스러운 연장이며 이는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다. '어부와 지니' 이야기에서와는 달리 핵에너지는 일단 문제를 일으켰을 때 도로 '주워 담기'가 극히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고, 이러한 문제는 군사용과 민수용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이는 <원자폭탄 만들기>를 포함한 로즈의 연작이 보여주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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