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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초콜릿' 따위는 없어! 피 묻은 밸런타인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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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초콜릿' 따위는 없어! 피 묻은 밸런타인데이!

[프레시안 books] 캐럴 오프의 <나쁜 초콜릿>

깜짝 퀴즈. 이것은 무엇일까요?

힌트 하나. 16세기 밀라노 출신인 항해가 지롤라모 벤조니는 이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보다는 돼지에게나 어울리는 음료인 것 같다. 그 나라에서 1년 넘게 있었지만 그것을 맛보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힌트 둘. 일부 유럽인들은 이것을 해열제나 각성제로 봤고, 다른 이들은 이것을 환각제나 최음제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16세기 유럽 약제사는 잠들기 전에 이것 한 컵을 마시면 어떠한 경우라도 성욕을 불러일으킨다고 믿었다.

처음 유럽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것은 '치료 효과가 있는 건강식'으로 통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것은 낭만적이고 순결한 사랑의 상징이 됐다. 정답은 바로 2월이면 유독 많이 팔리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화폐에서 최음제까지, 다양한 초콜릿의 쓰임새

▲ <나쁜 초콜릿>(캐럴 오프 지음, 배현 옮김, 알마 펴냄). ⓒ알마
<나쁜 초콜릿>(캐럴 오프 지음, 배현 옮김, 알마 펴냄)은 초콜릿을 둘러싼 역사서다. 제목이 노골적이어서 초콜릿이(정확히 말하면 초국적 초콜릿 회사가) 나쁘다는 지은이의 의도가 너무 훤히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이 '제3세계의 아동 착취를 고발한 그렇고 그런 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초콜릿은 기원전 3000년부터 존재해 왔지만 그 의미와 용도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변해왔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초콜릿은 열량을 얻거나 변비를 줄이거나 성욕을 자극하기 위해 복용(?)됐다. 요즘의 초콜릿 이미지는 19세기 말에서야 비로소 굳어졌다. 영국의 대형 초콜릿 회사 캐드베리가 초콜릿을 '애정의 징표이자 기쁨의 표시'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렇게 초콜릿의 쓰임새는 그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복잡한 여정을 거쳐 변했다. 초콜릿이 의약품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그나마 덜 놀랍다. 고대 아스텍 제국에서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가 화폐로 쓰였다. 16세기 에스파냐 인들은 식민지에서 마야 인들에게 카카오를 내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샀다. 그들은 "금은을 캐는 광부나 그것을 수송선에 실어 나르는 짐꾼들에게 지급하는 각박한 품삯으로, 귀족들이 저택을 짓기 위해 가로챈 땅에 대한 대금으로, 심지어 노예나 창녀를 사는 데도 카카오 원두를 지급했다."

'노예제 폐지'에 앞장선 '착한 사장'의 결말은?

초콜릿이 서구 민주주의의 촉발제가 됐던 때도 있었다. 위대한 사상가들은 커피하우스나 초콜릿하우스, 살롱에 모여 평등과 자유를 토론하고 인권을 옹호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위대한 '백인 인권 옹호가'들이 누리는 초콜릿과 커피가 노예들이 피땀 흘려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 압권은 최초로 초콜릿에 낭만적 사랑의 이미지를 부여했던 영국의 초콜릿 회사 캐드베리의 이야기다. 노동자에게 '이상적인 공동체'를 건설해 주고자 했던 착한 자본가 캐드베리 형제는 빈곤과 악행을 없애고자 백방으로 뛰었다. 그러나 이들의 선행은 '자신들의 이윤을 침해받지 않는 선에서, 오직 자국민들에게만' 베풀어졌다. 캐드베리 형제는 노예 폐지론자로서 맹위를 떨쳤지만, 유독 자사의 카카오 조달처의 노예 제도에만 침묵을 지켰다.

그다음부터는 뻔하지만 충격적인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어떻게 초국적 기업이 제3세계의 정치·경제를 주무르고 지역민의 삶과 환경을 파괴했는지를 탐구한다. 특히 초콜릿을 둘러싼 코트디부아르 정부의 암투와 이를 파헤치려 했던 프랑스·캐나다 기자의 의문스러운 죽음은 스릴러 영화를 방불케 한다.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초콜릿 때문에 전쟁도 났다.

일하다 병들면 아이 시체 내다버리기도…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특히 '꽂힌' 문제는 바로 노동 분야다. 노예 제도는 1849년에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아프리카의 '노예 아닌 노예' 800만 명이 과로로 죽거나 주인에게 살해됐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아시아 '계약 노동자'의 자리는 오늘날 다시 가난한 아프리카 아이들로 채워졌다. 아프리카의 최대 카카오 생산국 코트디부아르 농민들은 1990년대부터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릴 때까지 일을 시켰다.

"아이들은 굶다시피 하며 밤중에는 자물쇠를 걸어 잠근 합숙소에서 자고 수시로 매를 맞았다. 등과 어깨에는 끔찍한 상처들이 있었다. 이는 무거운 카카오 포대를 옮긴 탓도 있겠지만, 그중 일부는 신체 학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카카오를 수확하는 아이들은 초콜릿을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아무런 보호 장구도 없이 독성 있는 제초제와 곰팡이 살균제를 뿌리는 기구를 등에 지고 하루에 12시간씩 일했다. 농장주들은 노예 노동은 없다고 부인했지만 학대 행위는 존재한다고 시인했다. 즉, 공짜로 일을 시켰다. 일하다 죽은 아이는 길가에 버려지기도 했다고 한다.

"낙엽 더미 아래 감춰진 무언가를 보았어요.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는데 그건 어린 남자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병이 들어 바지가 똥투성이였어요. 그자들(카카오 플랜테이션 감독관)이 들판에 아이를 버리고는 죽게 내버려둔 거죠."

초국적 기업 편에 선 가장 보수적인 보고서조차 어린이 28만4000명이 서아프리카의 카카오 농장의 유해 환경에서 일한다고 적었다. 분노한 시민단체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초콜릿 업계는 침묵을 지켰다.

마지막까지 불편한 '공정 무역의 진실'

이쯤 해서 독자는 불편한 진실이 어서 빨리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이제 '공정 무역', 혹은 '착한 초콜릿'이라는 카드가 나올 시간이다. 하지만 저자는 마지막까지 '공정 무역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을 말해 독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뒷이야기는 이렇다. '착한 소비자'들은 공정 무역 초콜릿에 기꺼이 그들의 쌈짓돈을 털어놓았다. 유기농 브랜드가 '돈'이 되자 다국적 기업이 유기농 초콜릿 회사를 인수 합병하고 나선다. 여기까진 좋았다. 초콜릿 회사를 비롯한 거대 식품 회사들은 정부를 압박해 '유기농 인증 기준'을 완화하려고 로비를 벌인다.

코트디부아르 인들은 여전히 일차 생산품인 원두를 재배하고, '여전히' 가난하다. 이들에게는 오직 돈 안 되는 카카오 원두만 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이 높은 관세로 초콜릿 가공 사업을 막아 놓았다. 농민들은 카카오 원두 1파운드에 25센트를 받는다. 공정 무역으로 거래하면 80센트를 받는다. 초국적 기업들은 농민들에게 딱 '55센트'만큼의 이윤만을 허용했다.

어디 초콜릿뿐이겠는가. 극소수 부자들만 향유할 수 있었던 커피와 설탕, 바나나와 같은 식품이 대중화되는 데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국의 환경을 송두리째 망쳐놓는 대량 생산 체제와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게 희생을 떠넘기는 단가인하 제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 착취 상품'들이 거리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 집 건너 들어서는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파는 5000원짜리 커피 한 잔에 들어가는 원두 값은 100원. 지구 반대편에서 건너오는 데 드는 운송료를 제하면 농민들에게 얼마가 돌아갈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나머지 이윤은 어디론가 증발한다. 초콜릿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제 우리들의 관심은 '착한' 초콜릿, 커피 타령을 넘어서 제1세계의 소비자의 기호 식품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땅을 혹사당하며 지금도 카카오, 커피 원두를 재배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한 손에 초콜릿을, 다른 손에 커피를 잡은 내 손이 유난히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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