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먼 데서 올 때는 말 못할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회사를 옮겨달란다.
"왜 옮겨?"
하고 묻자
"세라믹 회사인데 먼지가 많이 나서 코피가 나고 목이 아파요."
하고 호소한다.
종합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오라고 시켰다.
한 시간 후,
진단서를 떼어 왔는데 보니 '만성 비염'이다.
"이 정도 가지고는 회사 못 옮겨."
하자 그는
"그럼 그냥 베트남 갈래요."
한다.
이상하다.
돈 벌러 온 사람이, 돈 안 벌고 가겠다니?
막가파인가?
막가파는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뭔가 심사가 틀어진 것 같다.
회사에 알아보니 아프다는 건 핑계이고, 말 못할 사연이 있다.
그는 한 회사에서 5년이나 일한 숙련공으로 베트남인으로선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회사에선 그에게 식대도 받지 않았고 보너스도 제일 많았다. 말하자면 특별대우를 받는 베트남 조장이었다.
그러나 올 가을에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다른 사람이 베트남 조장이 된 것이다.
그는 조장에서 조원으로 강등되고!
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 지위가 떨어지자 모멸감에 회사를 그만둘 생각에 빠진 것이다.
"저 회사 그만둘래요. 옮기게 해주세요."
아니, 저한테 들어간 돈이 얼만데 그만둬?
인사 담당 상무는 괘씸죄를 적용했다.
"좋아. 사인해 줄 테니 그동안 먹은 밥값 240만 원 토해놔."
"준 걸 빼앗아요?"
감정이 더 상한 그는 회사를 무조건 나왔다.
회사에서도 즉각 이탈 신고를 해버렸고.
그는 여기저기 떠돌다가, 친구의 주선으로 발안까지 온 것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뇌까렸다.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어요."
내가 이런 사람에게 뭐라고 충고하겠는가?
회사로 돌아가랄 수도 없고, 베트남으로 가랄 수도 없다.
하지만 출국기한이 아직도 10개월이나 남았는데, 끝끝이 벌고 가는 게 낫지 싶어, 마지막으로 충고했다.
"상무님 뭐 좋아하셔?"
"술이요."
"그럼 술 한 병 사가지고 내려가."
그는 일단 장성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상무님에게 사과했다.
상무님은 사과를 받아들였고, 사흘 동안 절충이 이루어졌다.
식대 50만 원만 반환하는 조건으로 회사를 옮겼다.
10개월을 벌었다.
▲ 전라도 장성에서 올라온 노동자 후안 ⓒ한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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