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인 히안(가명)은 마음이 급하다.
결혼식이 불과 보름 앞이라 한시 바삐 귀국해야 하니까.
영영 가는 거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받을 돈이 있는데 주질 않는다.
약혼녀는 빨리 오라고 난린데.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다.
사장님은 기숙사비 명목으로 한 달에 15만 원씩 떼었다.
계약서상에는 <기숙사비 무료>라고 해놓고!
그리고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이 돈 내가 쓰는 게 아니야. 적립했다 너희들 퇴직금으로 줄 거야."
이게 말이 되나?
노동자들 돈으로 퇴직금을 주다니?
일반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사장님은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사장님은 얼마 전까지 퇴직금도 안 준 사람이니까.
퇴직금 안 주던 사람이 갑자기 주려니 '생돈' 나가는 것 같지!
그래서 노동자의 월급에서 15만 원씩 떼어서 그 돈으로 퇴직금을 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은 자기 돈 내고 자기 돈 찾아가는 꼴이다.
이게 말이 되나?
말이 안 되니까 히안이 나를 찾아온 것이고.
하지만 결혼식이 코앞이니 어쩐다?
히안 때문에 L간사가 초비상이다.
L간사 딴에는 시간을 아끼려고
1. 진정서를 팩스로 보내고
2. 담당 감독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이나 모레쯤 시간 좀 잡아주세요."
그러나 감독관 하는 말이
"내일이고 모레는 물론, 다음 주도 안 돼요. 내일과 모레는 사업장 지도점검 나가야 하고, 다음 주는 교육 받으러 갑니다."
따져보니 앞으로 13일 후에나 조사가 가능하다.
L간사가 울상이 되어 나를 바라본다.
"어쩌죠?"
소리를 질렀다.
"어쩌긴! 지금 노동부로 가!"
"가능할까요?"
"안 가능하면 어쩔 거야? 캄보디아 그냥 보낼 거야?"
이럴 때는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
그날 오후 L간사가 취한 행동은
1. 감독관에게 <지금 당장!> 조사해줄 것을 간청하고
2. 안산 쉼터에서 졸고 있는 히안을 깨워 수원노동부로 달려오게 하고
3. 노동부 민원실에 잠자고 있는 서류를 찾아내 감독관 앞에 갖다 바친 것이다.
이러고 나니 벌써 퇴근 직전인 5시 50분.
이때부터 히안이 진술을 시작해서 6시 30분에 조사가 끝났다.
이제 가든지 말든지,
결혼하든지 파혼하든지,
히안 마음대로 하면 된다.
뒷일은 우리가 책임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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