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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명 여성의 주검…그녀들의 '천국' 혹은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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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명 여성의 주검…그녀들의 '천국' 혹은 '지옥'?

[프레시안 books] 하성란의 『A』

24명이 함께, 차례대로, 아무런 저항 없이 자살하는/타살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자의에 의한 타살일까, 타의에 의한 자살일까? 이 둘은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까? 구별하는 것이 가능하거나 의미 있는 일이기는 할까?

어쩌면 집단 자살/타살이란 자의와 타의, 주체와 타자의 욕망이 합일하는 비극적인 엑스터시의 순간에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타자를 완전히 사로잡은 주체와 타자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주체, 이 두 주체가 손잡는 침묵의 순간에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현대 문명과 살아 있는 자들이 축출한 어떤 것이 집단 자살/타살이라는 실제 사건을 통해 현실의 한복판에 귀환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미제의 사건으로 서둘러 은폐하면서 이처럼 이성적이며(?) 현대적인 삶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결혼 제도의 보호막 없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어머니들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이 웃으며 손잡고 둘러서는 '사일로(silo)'를, 시멘트 저장 탱크와 자본의 동력 이상의 의미로 볼 수 없노라고 재차 확인하면서. 집단 자살/타살이란 어떤 형태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과 광기의 증거라고 완강히 결론지으면서.

▲『A』(하성란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자음과모음
집단 자살/타살이 종교적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 것은 현대 사회가 '사이비 종교' 외에 다른 언어로 그것을 호명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실제로 1987년 32명이 집단 사망한 (주)오대양 사건 역시 광적인 종교 집단의 만행으로 종결되었다. 하성란은 이 오대양 사건에 착상하여 쓴 장편소설 『A』(자음과모음 펴냄)에서 '사이비 종교'의 낙인에 새로운 기표를 부여한다.

그 기표 'A'는 소설 속에서 놀라울 정도의 역할과 효과를 발휘한다. 현대 문명과 살아 있는 자들로서는 요령부득인 대상을 오직 'A'로 칭함으로써 소설은 그 실체에 다가가는 모든 길을 열어 놓는다. 진상을 알 수 없는 일에 접근하는 모든 (현명한) 방법을 A라는 단 한 글자로 압축함으로써 문학적 상징이 실제 현실을 어떻게 끌어안고 그와 접속하는지를 드라마틱하게 형상화하는 것이다. 소설이 A의 의미를 끝내, 해석하는 자의 자유로운 몫으로 남겨둔 것은 문학이 다시 현실 속으로 스며드는 다양한 길을 터놓는 것과 정확히 같은 맥락에 있다.

소설 속에 거론된 A들, 천사, 유능, 아마조네스, 간통 등은 'A'의 가능한 목록의 몇 가지 예시들이다. A는 해석하는 자에 따라 수많은 뜻을 파생시키고 수렴하면서, 의미와 욕망을 생성하는 텅 빈 구멍으로서 기능한다. 그리하여 A는 최종적으로, 어떤 아젠다(Agenda, 사안)에 접근하는 근본적인 태도와 관점의 문제를 겨냥한다.

하성란의
가 집단 자살/타살을 추적하는 추리 소설의 외양으로 출발해, 여성(성)/남성(성), 자유, 억압, 권력, 폭력, 성애, 결혼, 모계 가족·노동 공동체, 제도, 자본, 삶과 죽음 등의 문제가 어우러진 총체적 양상으로 나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소설의 문제의식은 집단 자살/타살의 전모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갖가지 시스템과, 나아가 모종의 특이 사건(잉여)을 처리하는 사회적 합의 방식 자체를 겨냥한다.

이로써
는 '신신양회'라는 모계 가족-공장 공동체의 흥망성쇠에 관한 이야기로 출발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A들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A를 통해 현대 사회가 처리하지 못한 '잉여'의 현장을 생생히 묘파한다. 그 현장이 분뇨와 오수, 부패한 짐승의 사체 냄새, 달콤한 과일향이 범벅된 야만과 원시의 풍경을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신신양회'가 현대의 남성 중심 가족 제도와 상반되는 모계 공동체, 그것도 혈연이 아닌 여성들의 연대에 의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노동 공동체로 상정된 것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머니'로 불리는 여성을 중심으로, 가정 폭력과 성폭행, 살인 등의 어두운 과거를 지닌 여성들이 이룩한 공동체가 기존의 질서를 즐겁게 '위반'하는 것 역시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여성'은 '남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존재로 신비화되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은 '인간'이라는 동일한 층위에서 사유되며, 따라서 많은 부분에서 닮은 대칭의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자본과 권력, 성애에 대한 욕망에서 그러하다. 신신양회의 대표자인 '어머니'와 후일 신신양회를 재건하는 핵심 인물인 '기태영', 즉 '예외적인 개인'들 역시 '사회'의 악덕에 온전히 맞서는 존재로 신화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의 욕망에 휘둘려 파멸을 맞이한다. 신신양회의 대표자인 '어머니'는 포용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반면, 교활하고 탐욕스럽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젊은 여성들에게 권력자-남성들의 아이들을 몰래 낳게 해 권력과 유착하며,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다 비극적인 참사를 초래한다. 기태영 역시 자신의 숨겨진 아버지인 권력자를 이용하는 데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자족적인 소규모의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보다, 권력-남성에 기생해 '공장'을 무한히 확장하는 자본의 논리에 휩쓸린 것,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상처 받은 존재들이 모여 행복한 삶을 꿈꾼 '신신양회'가 몰락한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소설 속에는 이러한 아이러니의 지점들이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견된다. 어머니를 잃고 흩어졌다 다시 모인 신신양회의 아이들, 기자, 가수 등 거의 모든 등장인물은 한결같이 저마다의 삶과 욕망의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

A는 하나의 소설적 전략의 차원을 넘어, 이야기(문학)가 탄생하는 원리에 관한 상징이기도 하다. 집단 자살/타살의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눈먼 주인공 '나'가 이해할 수 없는 그날의 일을 끊임없이 쓰고 또 쓰는 것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지점에 이르면, 'A'가 내포할 수 없는 의미는 별로 없어 보인다.

어쩌면 A는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의 실체를 비추는 거울인지도 모르겠다. A라고 발음하는 순간, 각자의 욕망과 내면을 고통스러울 만큼 생생히 비추어 보이는. 그렇다면, 우리의 A는, 지금 어디쯤에서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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