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은 국민들의 머리와 혀까지 정부의 소유물이라고 본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가 7일 이명박 정부 들어 벌어지고 있는 국가보안법 남용 실태를 고발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현 정부가 벌이는 표현의 자유 억압을 꾸준히 비판해 온 이 신문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계기로 다시 부상한 국보법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신문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이 발표된 지난달 19일 이후 한국 정부 당국은 인터넷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에 애도를 표하는 이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의 조문 방북을 허용한 정부가 다른 국민들의 방북은 불허하는 상충적인 행태를 보였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국보법 위반 혐의자들에 대한 변론을 맡아온 이광철 변호사는 북한에 대한 각 정부의 태도에 따라 국보법이 오락가락 적용되어 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과거 북한과의 교류ㆍ협력이라고 부르던 행위들이 지금은 '이적행위'가 됐다"며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당시 북한을 방문해 북한 당국자들과 대화를 했다는 이유로 현 정부 들어 유죄를 선고받은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신문은 유엔 인권위위원회를 비롯한 국제 인권단체들이 한국 정부에 국보법 폐기를 촉구해 왔지만 국보법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며 관련 통계를 소개했다. 2007년 39명에 불과했던 국보법 위반 혐의자의 숫자는 2010년 151명으로 늘었고, 인터넷상에서 친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조사받은 숫자는 2008년 5명에서 2010년 82명으로 증가했다. 친북적인 콘텐츠를 게시했다는 이유로 폐쇄당한 인터넷 사이트는 2009년 18개에서 작년에는 178개로 늘었다.
아울러 작년 1~10월 사이 '북한을 찬양하고 한국과 미국 정부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삭제한 인터넷상의 글은 6만7300건으로 2009년 1만4430건에 비해 크게 늘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국보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인터넷 콘텐츠를 삭제해야 한다는 경찰 및 정보 당국의 요청을 대부분 들어주고 있는데, 그 중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비율은 2010년 한 해 20%에 불과했다.
프랭크 라 뤼 유엔 의사 및 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작년 5월 한국의 온라인 규제가 "엄청난 우려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국보법은 간첩을 조사하는데 뿐만 아니라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는데도 쓰였다고 전했다. 1961~2002년 사이 1만3178명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그 중에서 182명이 사형당했다는 인권단체들의 주장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신문은 북한과의 화해를 추진한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는 국보법의 적용을 느슨하게 했지만 보수적인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전임 정부의 접근방법을 거부했고, 인터넷을 통해 북한의 선전 선동이 침투하고 있다며 인터넷 감시를 강화했다고 전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날 같은 인권 단체는 이명박 정부 들어 국보법 적용이 강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문은 국보법이 북한에 대한 찬양, 동조, 협력 행위를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수십년 전 만들어진 그같은 조항은 모호해서 술을 마시다가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잡혀간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날에서 동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라지브 나라얀은 "한국 정부의 이같은 행위는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킨다"고 말했다.
신문은 2007년 5월 1일 국보법 혐의로 수감된 김명수 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 씨는 인터넷을 통해 칼 맑스 전기, 미국 언론인 에드거 스노우가 쓴 <중국의 붉은 별> 등 헌책을 판매해 '친북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그러나 김 씨는 감방 안에서 남북 철도연결 행사(2007년 5월 17일 실시)에 관한 뉴스를 보고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지난달 인터넷에 북한과 관련된 풍자물을 올렸다가 조사를 받은 박정근 씨의 사례도 소개됐다. 경찰은 박 씨가 운영하고 있는 사진관과 그의 집을 10시간 동안 수색해 하드디스크, 휴대전화 저장장치 등을 복사해 갔고, '의심스러운' 사진과 책을 압수했다. 그는 경찰에 다섯 차례 불려갔는데 갈 때마다 '트위터에 왜 북한 노래를 링크시켰는가?' '트위터가 북한을 선전하는 유용한 도구라는 걸 몰랐나?'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박 씨는 원래 그림에서는 웃는 표정이었던 북한 군인들의 얼굴을 풀이 죽은 듯한 얼굴로 바꾸고 손에는 무기 대신 술병이 들려 있는 풍자물을 올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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