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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뀌어도 안 바뀌는 대북정책 위한 北 현실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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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뀌어도 안 바뀌는 대북정책 위한 北 현실 4가지

[기고] 대립보다 타협 지점을 찾기 위한 최소 기준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남북관계를 다룰 생각은 없다"면서 정치적 이득을 위해 대북 강경기조에서 후퇴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10월 말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임기 말이지만 남북 정상회담 등에 연연하지 않고 기존의 대북 스탠스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취임과 동시에 '유연성'을 강조해 온 류우익 통일부 장관도 '유연성'이 그동안의 정부 기조를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부 조정은 필요하지만 정부 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부정적인 쪽에서는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파탄 난 만큼 정부가 하루 빨리 대북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북 식량지원도 재개하고 금강산 관광도 다시 풀며, 남북 교류 협력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북정책에 대해 이렇게 이견이 팽팽한 만큼, 내년도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향후 대북정책의 방향은 극히 가변적인 것으로 보인다.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느냐 보수세력이 잡느냐에 따라 대북정책이 크게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북정책이란 모름지기 장기적인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통일을 지향하기 위한 것인데, 이렇게 정권에 따라 몇 년 단위로 바뀌는 상황이라면 정책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북한이 이렇게 가변적인 남한 정부의 정책에 제대로 무게를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런 상황이다 보니, 어느 정부건 5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면 정상회담 같은 외형적 이벤트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진보정권이냐 보수정권이냐를 떠나 대북정책이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우리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대북정책의 기초를 찾아가려는 노력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필자는 그 기초가 '북한의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관점'과 관계없이 인정될 수 있는 '현실'이 있다면, 그러한 '현실' 위에서 진행되는 논의는 보다 생산적이고 타협적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예선 북한과 일본의 경기를 관람하는 북한 주민들의 표정 ⓒAP=연합뉴스

지금 북한의 '현실'은?

지금 이 시점에서 필자가 바라보는 북한의 '현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에서 '재스민 혁명'은 이뤄지기 힘들다.

북한의 경제가 쉽사리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김정일 세습 정권이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만이 아래로부터의 체제전환, 즉 대중시위에 의한 체제붕괴로 이어질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북한에서는 아직 폭압적 통제기구들의 역할이 건재해 주민 통제가 유효하게 작동중인 것으로 보이며, 반체제 세력의 구심점이 될 만한 단초도 발견되지 않는다. 흔히 차우셰스쿠의 루마니아가 북한처럼 어떠한 반대세력도 존재하기 힘든 왕조적 전체주의 체제였다고 하지만, 북한은 루마니아보다 훨씬 더 정치적 자유가 억압된 체제이다.

북한은 또 1980년대말 구사회주의권 붕괴 당시 소련의 몰락처럼 주변에서 급격한 외부적 충격이 가해질 가능성도 높지 않다. 북한에 가장 큰 외부적 충격은 중국의 변화인데, 현재로서는 중국이 갑자기 위기에 처하거나 북한 정권이 위태로울 정도의 압박을 가할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대중시위가 일어나기 위해 필수적인 반체제 세력의 독자적인 통신망도 북한에서는 아직 기대하기 힘들다. 대북 단체들에 의해 북한 내외부의 정보가 주민들에게 유입되고 휴대전화가 확산되고 있지만, 북한 주민들이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아는 데는 한계가 많다. 북한의 어느 지역에서 혹시 시위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지역 사람들이 이를 알고 동참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중국이 동참하지 않는 한 우리가 압박한다고 해서 북한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만약, 남북관계의 완전 단절을 감수하고라도 몇 년만 북한을 압박해서 김정일 세습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면 국민적 동의를 전제로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북한 정권 유지가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상, 남한의 대북 압박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 정권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지원은 중국이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5.24 조치가 시행된 지 17개월여가 지났지만 남한의 대북 제재로 인해 북한이 절박한 경제위기에 처해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5.24 조치로 북한이 매년 3억 달러 정도의 손해를 보고 있다고 밝혔지만, 5.24 조치가 시행된 지난해 북중 교역은 1년 전에 비해 32% 증가했고, 올 들어 9월까지 북중 교역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7% 늘어났다. 남북 교역의 부진을 북중 교역이 상당 부분 대체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까지 평양에 머물렀던 피터 휴즈 전 북한 주재 영국 대사는 서울에서 가진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북한의 경제상황이 전반적으로 좋지는 않지만 도로에 차들이 늘어나고 시장에 상품이 증가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배불리 먹게 된 현상을 평양에서 목격했다"고 말했다. 남한의 대북 제재가 생각만큼 북한에 타격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셋째,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 체제가 유지되는 한, 북한에서 중국 베트남과 같은 개혁·개방은 기대하기 힘들다.

중국과 베트남의 사례를 보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고수'에서 '개혁·개방'으로의 정책 전환은 개혁적 리더십의 등장과 함께 가능했다.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해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전임자의 과오를 비판하고 변화와 개혁을 선택하기 시작했을 때 과감한 정책의 전환이 가능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 덩샤오핑이 과감한 개혁 개방을 추진한 수 있었던 데는 전임자인 마오쩌둥의 과오를 비판하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부합했던 측면이 컸다.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의 피해자로 3년간 숙청되어 개혁의 필요성을 느낀 점도 있었지만, 마오쩌둥의 후계자인 화궈펑과의 권력투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서라도 개혁을 선택해야 했다.

베트남의 경우도 본격적인 개혁 개방으로의 변화는 응우옌 반 린(Nguyen Van Linh)의 권력 장악과 함께 가능했다. 린은 베트남 통일 이후 호치민시 서기로 있으면서 각종 개혁정책을 추진하다 보수파의 반발로 실각했던 인물이었다. 이러한 린이 실각 4년만인 86년 베트남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소련공산당 내에서 베트남 문제를 담당하던 고르바초프의 영향력에 의한 것이었는데, 고르바초프는 베트남의 개혁을 바라고 있었다. 따라서 린으로서는 집권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해서라도 전임 공산당 노선을 비판하고 개혁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개혁이 가능했던 것은 새로운 지도자가 개혁적 마인드를 가진 점도 있었지만, 정치적 이유로 인해 전임자를 비판하고 새로운 정책을 펼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다지고자 하는 이해관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혁'이라는 말 자체가 고친다는 뜻을 가지는 것을 생각해보면, 개혁 정책이란 사실 전임자에 대한 부정을 어느 정도 의미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전임자인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판하면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한 일이다. 김정은 권력의 정통성은 오로지 김일성과 김정일을 계승한 데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전임자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개혁을 추진하는 최선의 길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연성 있는 변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일 텐데, 이같은 방식으로는 중국과 베트남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과감한 개혁, 개방은 이뤄지기 힘들 것이다.

넷째, 북한의 변화는 권력층의 균열로부터 비롯될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의 현 세습 집권세력 하에서는 위로부터의 체제전환(개혁· 개방)이나 아래로부터의 체제전환(체제붕괴)을 기대하기 힘들다. 또, 중국이 동참하지 않는 한 외부로부터의 압박에 의해 북한의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북한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변수는 세습 정권에 균열이 생기거나 중국이 북한의 후원자적 역할을 거두는 것인데, 현 시점에서 기대 가능한 변수는 세습 과정의 균열일 수밖에 없다.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으로 권력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세습 체제에 균열이 발생하고 파워엘리트들간에 권력투쟁이 일어나는 것이 가장 유력한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세습 체제가 허물어질 경우 과도기적으로 보수 강경 세력이 권력을 잡을 수도 있지만, 수령의 정통성을 계승하지도 못한 보수 강경 세력이 경제적 난관도 극복하지 못하면서 권력을 장기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김정은 이후에 안정적 권력을 확보하려는 새로운 지도자는 가시적인 경제적 성과를 내기 위해 개혁·개방이라는 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이 안정적으로 이뤄진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김정은이 젊은 나이에 경험도 없이 후계자로 결정됐다는 이유로 3대 세습의 불안을 점치지만, 김정은의 권력투쟁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까지 검증된 바가 없다. 김정은이 예상을 뛰어넘는 능력을 발휘해가며 안정적 권력을 구축할 경우 안타깝지만 북한의 변화는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힘들 수도 있다.

대북정책의 방향은?

지금까지 필자가 바라보는 북한의 현실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간추리자면, 현재 상태로는 북한이 아래로부터 붕괴하거나 위로부터 개혁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지 않고 우리가 압박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 북한 권력층 내부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주시해야 하며 그 중요한 시점은 김정일 사후 김정은으로의 권력이행 시기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상과 같은 점에 기반할 때, 필자는 향후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이 세습 과정의 균열로 북한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고 변화가 시작될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김정은 체제의 안착으로 북한의 변화가 늦어질 수도 있지만, 북한의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북한에 변화가 시작됐을 때, 그러한 변화를 통일로 연결시키려면 결국은 북한 주민들이 남쪽을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독자적인 유엔 회원국인 만큼, 우리가 반만년 같은 민족이었다는 이유로 남한의 우선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 북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남한과의 통합을 선택하게 하는 것만이 중국이나 국제사회의 간섭을 물리치고 통일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이다.

북한 주민들이 남쪽을 선택하게 만들 방법은 무엇인가? 남북간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기본적인 인도 지원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끌어와야 한다. 식량지원을 기본으로 하는 인도적 지원, 남북간 사회문화 교류와 이산가족 상봉 등 기본적인 남북교류를 해나가야 한다. 식량 지원이 군량미로 전용된다는 우려도 있지만, 북한에 식량이 부족할 때 고통받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일반 주민일 수밖에 없다는 점, 식량 지원이 북한 주민들의 장기적인 대남의식에 미칠 영향 등을 생각하면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북한 정권에 현금이 들어가는 점은 있지만, 개성공단은 5만 명 가까운 북한 주민들이 남쪽을 접하게 되는 창구라는 점, 금강산 관광은 남북 교류의 상징적 사업이라는 점에서 계속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도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상황의 악화를 막는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다만, 김정은 세습체제 하에서는 북한의 변화가 힘든 만큼 북한과 경제 공동체를 지향하는 등의 전폭적인 협력은 세습체제가 유지되는 한 자제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변화에 대비해 기본적인 남북교류는 필요하지만 현 상황에서 북한 정권과의 전폭적인 협력은 자칫 3대 세습체제의 안착을 도와줄 우려가 있다. 3대 세습체제는 장기적인 남북관계나 통일을 위해서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북한과의 본격적인 협력은 세습체제가 무너진 뒤 차기 리더십의 성격을 보아가며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생산적이고 타협적인 논의를 위해

10.26 서울시장 선거로 대선의 계절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벌써 각 진영에서는 차기 정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정파별 이합집산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이제 차기 정권의 정책을 놓고 열띤 논쟁이 시작될 것이다. 대북정책은 아마도 그 가운데 가장 치열하고 핵심적인 이슈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상대측 대북정책의 맹점을 공격하며 각을 세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치고받기식의 정치적 논쟁은 타협보다는 대립을 앞세우게 되며, 이러한 방식으로 채택된 대북정책은 어느 세력이 집권하든 반대편의 공격으로 시간이 지나면 정책적 지지기반이 약해지게 마련이다.

상대를 공격하는데 주안점을 두기 보다는 우리가 어느 지점까지 함께 할 수 있고 어느 지점부터 이견이 있는 지, 그리고 그러한 이견은 어느 선에서 조정가능한지 등을 열린 마음으로 얘기할 수 있다면 보다 타협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북정책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그러한 논의의 기초가 '북한에 대한 냉철한 현실 인식'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중요한 변화가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정권마다 바뀌는 대북정책으로 시간을 소모해서야 되겠는가?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공약수를 찾아가려는 노력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 북한학 박사인 안정식 기자는 SBS에서 한반도 문제를 취재, 보도하고 있으며 북한포커스(www.e-nkfocus.co.kr)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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