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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야당 압승, '포퓰리즘 논쟁' 넘어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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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야당 압승, '포퓰리즘 논쟁' 넘어선 것"

[분석] "멈출 수도 없고, 파괴할 수도 없는 피플파워 확인"

지난 3일 태국 총선에서 농민과 도시 빈민이 지지세력인 야당이 기득권층을 기반으로 한 집권당에 대해 압승을 거두자, 국내 보수 언론들은 '포퓰리즘 정책으로 태국이 회복불가능한 경제파탄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보수 언론들의 이런 전망은 태국의 총선 결과가 국내 기득권층을 위협하는 선거 결과라는 점에서 못마땅한 시각을 드러낸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실 이번 태국의 총선 결과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독재정권이나 기득권층을 뒤흔드는 '피플 파워'의 동남아시아판 사례로도 볼 수 있다. 태국의 사례에서 눈여겨 볼 점은 '포퓰리즘' 논쟁이 아니라, 태국에서 왜 '피플 파워'에 의한 정권 교체가 이뤄졌느냐의 배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태국의 총선 결과가 놀라운 점은 5년전 군부의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62) 친나왓 전 총리를 구심점으로 하는 제1야당 푸어타이당이 전체의석 500석 중 264석(약 53%)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는 점이다. 160석에 그친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의 집권 민주당은 선거결과에 즉각 승복한다고 밝혔다.

탁신에 대한 식지 않는 '피플파워'의 지지도는, 현재 비행기로 6시간 떨어진 두바이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불과 총선 6주전에 자신의 대리인으로 친여동생을 총리 후보로 내세워 당선시켰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 태국 야당의 승리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탁신 전 총리가 4일 망명지인 두바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AP=연합

"태국 역사상 총선 과반수 승리, 모두 탁신세력"

총리 취임이 확실시되는 잉럭 친나왓은 정치경험이 전무한 올해 44세의 여성 기업가이지만, 탁신이 내세운 후보라는 점에 힘입어 태국 최초의 여성 총리 자리를 단숨에 거머쥐게 됐다.

호주국립대의 동남아시아 정치 전문가인 앤드루 워커는 이날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태국 역사상 총선에서 과반수를 넘긴 승리는 이번이 두 번째이며, 첫번째도 지난 2005년 탁신이 재선에서 거둔 승리였다는 점에서, 이번 총선은 태국에서 탁신 세력이 여전히 매우 강력한 선거세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탁신은 지난 2005년 총선에서 사상 최고의 투표율 속에서 500석 중 374석을 확보하는 기록적인 승리를 거둔 바 있다.

태국 출랑롱콘대 티티난 퐁수티락 교수는 "이번 총선 결과는 탁신 세력의 이념과 정책은 멈출 수 없고, 좌초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탁신이 이끄는 당은 두 번이나 해체되고, 유력 정치인들은 두 번이나 정치활동이 금지된 채 이런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태국의 집권당이 총선 결과에 즉각 승복한다고 발표한 것을 보면 태국의 민주적 정치제도가 성숙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태국 정계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기득권층이 순순히 굴복? '플랜B' 갖고 있다"

크리스 베이커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탁신의 반대세력은 '플랜 B'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태국은 정치변동이 심한 사회이며, 기득권 세력, 즉 관료와 왕정, 군부, 중산층 등으로부터 엄청난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초기에는 표면적으로 조용한 듯 보이면서 탁신이 복귀하거나 탁신세력이 헌법 개정에 나서면, 반대 진영이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 저항하고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가 말한 '예전과 같은 방법'이란 왕권을 등에 업은 군부의 쿠데타와 사법부를 이용한 '선거 결과 무력화', 그리고 표적 살해다. 베이커의 경고가 현실화될 경우 태국의 정국은 또다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우려가 크다.

지난 6년간의 혼란도 총선 결과에 대한 기득권층의 반발에서 시작됐다. 지난 2005년 탁신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재선에 성공하자, 태국 왕실의 상징색깔인 노란 셔츠를 입은 PAD(국민민주주의 연대)가 결성돼 탁신 축출을 위한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관료와 군부 출신의 중산층이 주축이 된 세력이다.

사회 혼란이 계속된 2006년 9월 탁신의 외유 중 태국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헌정이 중단됐다. 탁신은 부패혐의로 기소돼 사법부에 의해 2년형을 선고받자 망명을 택했다.

문제는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이 임명한 과도정부가 1년간 집권한 후 2007년 12월 새로운 총선이 실시됐으나, 또다시 친 탁신계 정당이 승리할 정도로 '피플파워'는 이미 탁신에 기울어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AD는 사막 순다라벳 총리가 이끄는 친탁신 정부가 출범하자 2008년 3월부터 또다시 가두투쟁에 나섰다. 또다시 군부 쿠데타를 일으키기에는 부담을 느낀 기득권층은 사법부를 동원했다.

태국 헌법재판소는 2008년 9월 사막 총리가 취임한 뒤에도 자신이 진행하던 TV 요리쇼 사회를 계속해서 맡음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봤다는 이유로 총리직 사퇴를 명령했다.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탁신 전 총리의 매제이자 선임 부총리를 맡고 있던 솜차이 옹사왓이 9월 17일 총리 선출을 위한 국회 내 선거에서 298표를 얻으며 163표를 얻은 민주당 당수 아피싯 웨차치와 의원을 누르고 총리로 취임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PAD는 방콕의 수완나품 국제공항을 점거하는 등 다시 실력행사에 나섰고, 헌법재판소는 12월 또다시 부정선거 혐의를 이유로 솜차이 내각의 해산을 명령했다.

결국 핵심 친탁신세력을 제외한 군소정당을 흡수한 민주당에서 아피싯 당수가 국회 내 투표에서 총리로 선출되어서야 PAD는 시위를 중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2006년 탁신이 쿠데타로 실각한 후 결성된 UDD(반독재 국가민주연합) 세력이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태국 북부와 북동부에 주로 거주하는 농민들이 주축이 되어, PAD의 '옐로셔츠'에 대항한 '레드셔츠'로 불린다. 지난 2009년 4월 태국 파타야에서 개최된 아세안 정상회담이 취소될 정도로 격렬한 시위를 벌인 세력이 바로 '레드셔츠'다.

'레드셔츠'는 2010년 2월 태국 대법원이 탁신 전 총리의 국내 동결자산 약 23억 달러 중 절반이 약간 넘는 14억 달러를 국고로 몰수한다고 판결을 계기로 3월부터 전국적 봉기에 나섰다.

유혈진압, 조기총선 질질끌기로 버틴 집권당

이들은 아피싯 현 내각이 총선을 거치지 않고 사법부의 공모에 의한 정통성 없는 정부로 규정하고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아피싯 내각은 당장 총선을 치르면 패배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모든 협상을 거부하고 강경한 유혈진압에 나섰다.

심지어 특수부대들과 저격수들이 최전방 시위대를 한 명씩 한 명씩 표적살해하는 교묘한 방법도 동원했다. 이로 인해 '레드셔츠'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 최소 91명이 사망하고 1800명 이상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아파싯 총리는 지난해 5월 조기 총선을 약속했지만, 질질 끌다가 어차피 올해말 끝나는 임기를 반년 앞두고 마지못해 지난 3일로 선거일을 정했다. 탁신 지지세력은 그동안 더 결집됐을 뿐이다.

이때문에 일각에서는 "어차피 총선에서 질 것이 뻔했다면, 왜 유혈진압의 비극을 무릎쓰고 조기 총선을 미뤄왔느냐"면서 아피싯 총리와 기득권층이 보여준 현상 유지에 대한 집착을 비판했다.

물론, 태국 최대의 정보통신 재벌로 포퓰리즘 정책으로 서민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는 탁신 전총리에 대해서도 또다른 독재 정권이라는 비판도 있다.

"왕실과 군부 결합한 태국식 권위주의 몰락 신호"

하지만 탁신이 2001년 2월 총선 승리 이후 태국 역사상 최초로 자신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2005년 총선에서도 압승한 이후, 망명 정치로도 또다시 친탁신 세력을 집권하게 만들 정도로 서민들이 그를 변함없이 지지하는 이유를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탁신은 기득권층이 '제2국민'처럼 취급한 농민과 도시빈민들에게 파격적인 의료복지와 생계자금 지원 등에 나선 최초의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태국의 정계를 오랫동안 지켜본 전문가들은 탁신은 기득권층에서는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지만 서민을 위한 정책을 과감하게 시행하면서 태국의 서민들을 태국 사회를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변화시키는 정치세력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그 '돌아올 수 없는 길'이란 태국의 왕실과 군부가 결합한 '태국식 권위주의 정치'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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