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재일 교포들이 일본에서 받는 차별 사건을 발표할 때였다. 성명 낭독이 3분의 2쯤 지났을 때, 인권위원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발표를 중지시켰다. 발표자의 영어를 통역사들이 알아듣지 못해 통역이 안 되고 있다는 것. 그 발표자는 내내 한국어와 일본어 억양이 뚜렷한 '콩글리시(Konglish)'와 '재플리시(Japlish)' 중간 정도의 발음을 구사했었다.
엄숙하기만 했던 회의장이 순간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 재일 교포가 성명서를 읽는 동안 영어를 쓰는 회의 참석자의 대다수가 발표를 못 알아듣고 있었던 것이다. 알아듣는 척 하던 그들은 인권위원의 지적에 웃음보가 터졌다. 발표자는 당황했지만, 끝까지 똑같은 발음으로 발표를 마치고 퇴장했다.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몇 가지 이유가 겹쳤었다. 하나는 인권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태도가 생각보다 가벼운 데 대한 당황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러게, 영어 발음 연습 좀 하지' 하는 동포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그의 발표를 완벽하게 알아듣고 있던 나에 대한 민망함도 들었다.
부끄러움. 이것이 한국인 대부분이 영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수학이나 과학을 못했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과는 다르다. 한국 교수가 미국 대학에 방문 교수로 가서 미국인 과외 교사에게 영어 과외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그런 맥락이 아니고선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부끄러워할까? 왜 프랑스어나 중국어는 하지 못해도 당당하면서, 모국어가 아닌 영어는 그토록 부끄러움의 대상인가? 2010년 한국 사회의 구성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영어 유치원부터 취업·승진을 위한 각종 영어 시험까지, 그야말로 영어와 애증의 관계에 놓여있다.
영국에서 태어나 법학자 겸 언어학자로 25년째 아시아에 살고 있는 리처드 파월의 <아시안 잉글리시>(김희경 옮김, 아시아네트워크 펴냄)는 이런 우리에게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영어가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사회에 미친 영향은 물론,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아시아가 영어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정통 영어' vs '통하는 영어'
▲ <아시안 잉글리시 : 영어를 삼킨 아시아, 표준 영어를 흔들다>(김희경 옮김, 아시아네트워크 펴냄). ⓒ푸른숲 |
인도, 싱가포르, 홍콩, 필리핀 등 영어권 국가의 식민 통치 시기를 거친 지역에서는 그 영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영어가 법적 공용어인 국가가 많고, 영국 법제를 물려받은 국가에서는 오늘날에도 법률 제도가 영어로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영어는 아시아 국가의 다양한 문화를 거치면서, 그만큼 변형되고 다채로워졌다. 수많은 영어 방언이 생긴 것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영어(English)'가 아닌 '영어들(Englishes)'을 말한다. 한국인은 대개 '콩글리시(Konglish)'를 '잘못된 영어 사용'을 일컫는 말로 쓰지만, 싱가포르에는 '싱글리시(Singlish)'가, 태국에는 '타이글리시(Thaiglish)'가, 필리핀에는 '타글리시(Taglish)'가 있다. 이는 '잘못된 영어 사용'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영어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억양, 단어, 문법이 다른 '영어 방언' 역시 조금만 익숙해지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다. 앞서 든 예만 해도 그렇다. 통역사들이 콩글리시나 재플리시 억양에 익숙했다면 저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미국인도 자신만의 '영어 방언'을 쓰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사실 본토 영어조차 다른 언어의 영향을 받는다. 거물을 뜻하는 '타이쿤(tycoon)'은 미국 방송에서 자주 듣는 단어인데, 어원은 일본어의 '대군(大君)'이다.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돼 있는 '국제 영어 말뭉치'는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영어 변형들도 망라한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문화 기술의 전파는 더 이상 예전처럼 일방통행이 아니다. 영어는 훨씬 풍요로워졌다. 나라마다 다양한 영어들 덕분에 '세계 영어'를 보는 시각까지 크게 달라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인의 '정통 영어' 콤플렉스는 유난히 심하다. 미국에서 제일 좋고 비싼 영어 학원을 찾고 싶으면 '한국인이 많은 학원'을 찾으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가 비싼 뉴욕에서도 고가로 유명한 한 사설 영어학원에 가면 수강생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미국인(특히 뉴욕인)과 같은 영어, 정통 영어를 해야 제대로 영어를 할 줄 아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리라.
그러나 책의 저자는 과연 원어민과 표준 영어를 누가 정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완벽한 영어가 아니라 통하는 영어면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운 나 역시 미국인 발음이 가장 알아듣기 쉽지만, 그것은 단지 익숙하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한다거나 못 한다는 기준은 목적에 맞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정복하려는 영어는가 우뚝 서 있는 산이 아니라, 연장처럼 필요에 따라 쓰이고 바뀌는 소통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영어는 '칼'이다
한국에서 영어 숭배가 친미나 사대주의로 비판받은 적도 있지만, 이제 영어는 그 이상의 것이 됐다. 영어 교육은 가정의 재력을 가늠하는 계층의 척도가 됐고, 영어 능력은 취직의 잣대가 됐다. 영어 유치원, 조기 유학, 해외 연수, 국제중학교, 외국어고등학교 등 '돈 없으면 영어 못 배우는 세상'이 됐고, '영어 못하면 출세 힘든 세상'이 됐다. 영어를 못하면 부끄럽다고 느끼는 이유 중에는 일정 정도 이런 요인도 있으리라. 흥미로운 것은 영어에 대한 이런 복잡다단한 심경을 많은 아시아인들이 느낀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부자 학교와 가난한 학교의 격차는 아시아에서 유달리 커 보인다. 그 격차는 영어에 대한 접근성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인도에서는 매년 1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대부분 영어로 가르치는 학교로 유학을 떠나지만, 인도인의 85%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 파키스탄에서는 우르두어로 가르치는 학교와 영어로 가르치는 학교 중 어디에 입학하는지가 학생의 운명을 결정해버린다. 말레이시아의 논란은 여러모로 한국의 영어 몰입 교육 당시와 비슷하다.
"2002년 총리였던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는 교사들에게 1년의 준비 기간을 주고 모든 교육과정에서 수학과 과학을 영어로 가르치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과학뿐 아니라 영어 수준도 더 높일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신식민주의로의 귀환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모국어 교육을 옹호하는 학계도 거세게 반대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스리랑카인은 영어를 '칼'이라는 뜻인 '카다(kadda)'라고 부른다. 직업과 영향력을 얻는데 영어가 그만큼 강력한 무기라는 말이다.
영어가 '영어들'이 된다고 한들…
책은 이처럼 영어를 둘러싼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현실을 재미있게 소개한다. 그러나 다 읽으면서 의문이 생겼다. 영어가 '영어들'이 된들,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이 시대의 절대 명제는 그대로지 않은가?
사람들은 아주 실용적인 이유로 영어를 선택한다. 지구화 시대에서 언론, 인터넷, 출판, 무역, 국제기구 등 모두 영어를 통해 소통하는 상황에서 영어는 이미 승자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영어의 현재 지위를 중국어가 대신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도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는가?
"여러 면에서 영어 차별주의 논란은 경제 세계화 논란과 유사하다. 이는 우연일까 아니면 의도된 것일까? 사람들에게 선택권이 있을까? 영어 사용을 장려하는 다국적 기업만큼이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영어 사용이 이득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에 저자는 침묵한다. 다만 그는 언어학자 데이비드 그래돌의 분석을 인용해 "2010년까지 아시아 인구 3분의 1이 매일 영어를 사용하게 되고 또 지구 어디에선가 2주마다 언어가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고 담담히 밝힐 뿐이다. 영어는 그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킬러 언어'이자 '언어의 블랙홀'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영어가 '영어들'이 된들, 여전히 영어가 우위인 세상에서 백인-미국인, 혹은 백인-영국인이 우월한 대접을 받고, 영어를 잘하면 출세의 기회가 높아지는 전 세계적 신계급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저자의 간디가 독립 투쟁을 하며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그들을 노예로 만드는 길"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결국 간디의 투쟁은 그의 뛰어난 영어 덕분에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나? 우리가 이미 영어 콤플렉스의 '영원한 포로'가 되었다고 하면 너무 비관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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