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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는 없고 루마니아에는 있었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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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는 없고 루마니아에는 있었던 것들

[북한은 어디로]<上> 대중시위로 붕괴할 것인가?

'포스트 김정일' 후계 체제가 구축되고 있는 북한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 높다. 북한은 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권처럼 붕괴의 길을 걷게 될 것인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을 할 것인가? 아니면 현상 유지나 제3의 길을 갈 것인가?

북한의 미래에 대한 정확한 전망은 곧 한반도의 앞날에 대한 전망이며 어떤 대북정책을 펴야 하는가 하는 답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북한학 박사인 안정식 SBS 기자가 최근 동구의 붕괴,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개방 사례를 연구한 결과를 세 편의 글로 보내 왔다. 사흘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북한에서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이 현실화되고 있다. 예상보다 빨리 이뤄지는 3대 세습 작업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악화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얘기와 함께, 세간에는 이제 김 위원장의 수명이 오래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김정일 위원장의 남은 수명이 이렇게 도마에 오르면서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은 점점 더 관심의 대상이 돼가고 있다. 3대 세습의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사망하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북한이 흘러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야 하고, 이를 통일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치 김 위원장이 사망하기만 하면 북한이 곧 붕괴되리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우리 사회에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다고 해서 북한이라는 체제가 80년대말 동구 사회주의권처럼 붕괴의 길을 걷게 될까? 김 위원장이 북한 사회에서 가지는 절대적 위치를 생각해볼 때 최고지도자의 사망이 북한 사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은 분명하지만, 김 위원장의 사망 이후 북한 체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이에 따라, 필자는 김 위원장 사후의 북한의 미래를 붕괴, 개혁-개방 가능성이라는 차원에서 분석해보고 그에 따른 우리의 대응책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북한은 대중시위로 붕괴할 것인가?

머지 않은 시기에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다고 할 때, 북한이 아래로부터의 체제전환 즉 대중시위에 의해 붕괴될 가능성이 있는가?

논의를 보다 과학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해 동구 사회주의권의 사례를 중심으로 어떤 상황에서 대중시위에 의한 체제붕괴가 발생하는지 알아보자. 유럽과 남미, 구공산권 국가들의 민주화 과정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린쯔(Juan J. Linz)와 스테판(Alfred Stepan)의 연구에 따르면, 대중시위에 의한 체제붕괴는 동결된 탈전체주의나 술탄주의 체제에서 발생한다.

동결된 탈전체주의란 탈전체주의적 변화가 시작되다가 동결된 경우이고 술탄주의란 지도자 개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왕조적인 체제를 이르는데, 이와 같은 체제에서 체제붕괴가 일어나는 것은 체제 자체가 경직돼 있어 내부 불만이 정상적으로 수용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이나 반대세력 내에 온건파가 존재할 여지가 없고 집권세력이 억압적 통치로 일관하면서 개혁에 능동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위기가 닥칠 경우 반대파를 억누르지 못하면 체제 붕괴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동구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는 동독과 체코, 루마니아가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차우셰스쿠의 루마니아는 특히 북한처럼 지도자 개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왕조적인 체제로 일컬어진다. 최고지도부는 차우셰스쿠의 혈족을 중심으로 구성됐고 아들 니쿠는 후계자로 거론됐으며 당 자체가 차우셰스쿠의 개인 권력에 종속되었기 때문에 당 내에 개혁적 온건파가 형성될 여지도 없었다.

결국 루마니아는 자체적인 개혁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위기를 맞아 붕괴되고 말았는데, 지금의 북한도 내부 불만을 수용해 개혁을 실행해나갈 만한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위기가 닥친다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북한의 붕괴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동독과 체코, 루마니아를 붕괴로 이끌었던 위기들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동독과 체코, 루마니아의 공산 정권에 가장 큰 위기를 불러왔던 것은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과 동구권에 대한 소련의 군사적 불개입이라는 외부적 충격이었다.

고르바초프가 사회주의 위성국들에 개혁을 강력히 촉구하면서 변화를 거부하던 공산 정권들은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됐고, 소련이 동구권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며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철회하면서 반체제세력들의 입지는 결정적으로 강화되었다. 그리고 한번 시작된 탈사회주의 바람은 지정학적으로 인접해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가져왔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에는 외부적 충격만이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은 아니다. 결국에는 내부에서 대중들이 지속적인 시위를 통해 항의의 목소리를 표출했기 때문에 체제 붕괴가 가능했다.

그렇다면, 이들 국가에서는 어떻게 체제를 붕괴시킬 정도의 대중시위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동유럽 국가들과 쿠바와의 비교를 통해 쿠바에서 대중시위가 일어나지 않는 원인을 분석한 로페즈(Juan J. Lopez)는 대중시위를 위한 필요조건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개개인들이 자신들이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에 참여하게 되면 실제로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동독과 체코, 루마니아의 주민들이 거리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헝가리, 폴란드에서의 체제전환 소식과 소련의 군사 개입이 없을 것이라는 신호 등으로 인해, 대중시위에 가담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며 자신들의 행동이 정치적 변화를 추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둘째, 상시적으로 주민 대다수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반체제 세력의 독자적인 통신망이 있어야 한다. 반체제 세력이 독자적인 통신망을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정부가 그 통신망을 철저히 차단하는 상황에서는 지속적인 대규모 대중시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중들이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왕조적 전체주의 체제인 루마니아에서조차 지속적인 대중시위가 가능했던 데는 헝가리 텔레비전이나 자유유럽 라디오 방송망과 같은 정보유통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루마니아 주민들은 이러한 통신망을 통해 루마니아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고, 자신들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지를 결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 차우셰스쿠 공산독재의 종식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루마니아 국민들

여기에다 미약한 수준일지라도 체제 내에 반체제 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동독의 경우 평화와 환경, 인권 등을 목표로 하는 단체들이 교회의 보호 아래 형성돼 있었고, 이들이 89년 5월 지방선거 부정을 계기로 정치세력으로 조직화하면서 적극적인 저항운동에 관여했다.

체코의 경우에도 비정치적인 인권단체로 출발한 '77헌장'이 정치적 반대조직으로 발전하면서 반체제시위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 누구도 독재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루마니아의 경우 반체제 세력이 존재할 여지는 거의 없었지만, 종교의 그늘 아래 차우셰스쿠를 비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은 존재하고 있었다. 루마니아 대중시위의 도화선이 된 티미쇼아라 사태도 차우셰스쿠 정권을 비난해 온 퇴게스 목사를 강제로 추방시키려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북한은 어떠한가?

북한도 예전에 비해 위기의 정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잇딴 경제정책의 실패로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고장난 상태에 있고, 각지에서 아사 위기가 반복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탈북자들과 대북 정보를 수집하는 민간단체들이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추세적으로 볼 때 북한 주민들의 대정부 반발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최근 대북매체, 민간단체들은 북한 내외부의 소식들을 전하면서 일부 북한 주민들이 체제에 불만을 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안정식

북한 내 정보유통의 경우도 최근 들어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데일리 NK'와 '좋은벗들' 등 많은 민간단체들이 북한내 정보원을 통해 다량의 북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자유북한방송'과 '열린북한방송' 'KBS 사회교육방송' 등은 단파와 중파 라디오 방송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 내외부의 소식들을 전파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외부의 소식을 접하는 북한 주민들이 얼마인지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해당 단체들은 단파나 중파 라디오를 은밀히 청취하는 북한 주민들이 적게는 20만 명에서 많게는 백만 명 이상에 이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정보통신 기기의 발달로 중국 휴대전화를 통해 북한 접경지역의 주민들과 남한내 탈북자들이 통화하는 사례가 상당량에 이르고 있으며, 북한에서 휴대전화 사용이 다시 허용되면서 북한내 정보 유통의 수단이 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북한은 2004년 용천역 폭발사고 이후 금지했던 휴대전화를 2008년 말부터 다시 보급하기 시작했는데, 2010년 3월말 기준으로 가입자 수가 12만 5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이 북한을 붕괴로 이끌 만한 위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회의적이다.

북한의 경우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소련의 변화와 같이 외부적 충격이 나타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지 않다. 북한에게 가장 큰 외부적 충격은 중국의 변화일텐데, 현재로서는 중국이 조만간 위기에 처하거나 북한에 대한 정책을 변화시켜 북한 정권이 위태로울 정도의 압박을 가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북한 주민들의 반발 수위가 예전에 비해 높아졌다고 하지만 아직은 일반적인 상황 같아 보이지는 않으며, 보위부 등 폭압적 통제기구들의 주민통제도 대체로 유효하게 작동중인 것 같다. 주민통제기구들의 근간이 허물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이 조만간 공포감을 이겨내고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최근 인민보안성을 인민보안부로 개편하고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수석부부장을 상장에서 대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보안기관에 힘을 실어주고 사회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대북 방송의 영향력이 커졌다고 하나 이 역시 아직 한계가 명확하다. 우선 북한 내부에서 수집되는 정보가 접경 지역 위주의 단편적 소식에 불과한 경우가 많고, 대북 방송의 청취자 수가 설사 백만 명 선에 이른다 하더라도 북한 주민 전체로 볼 때 아직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관련 정보가 수집되어 북한에 다시 전달되는 데까지 적게는 몇 일에서 많게는 몇 달까지 시차가 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현재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전달받는 데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북한내 일부 지역에서 대중시위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이를 곧바로 인지하고 동조 행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이다.

여기에다 북한에는 동독이나 체코, 루마니아처럼 미약한 수준에서나마 반체제 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을 만한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차우셰스쿠의 루마니아가 어떠한 반대세력도 존재하기 힘든 왕조적 전체주의 체제였다고 하지만, 북한은 루마니아보다 훨씬 더 정치적 자유가 억압된 체제인 것이다.

아사자 발생설이 끊이지 않을 정도의 극심한 경제적 파탄이 북한 체제를 위기로 몰아갈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으나, 경제 위기는 지배엘리트나 대중의 이해관계와 특정한 양태로 결합하여 집합적 행위로 표출되지 않는 한 체제전환의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쉽게 말해, 단순히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만으로는 체제붕괴를 이끌만한 대중시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머지 않은 시기에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다 해도 지금의 북한과 같은 상황에서 대중시위에 의한 체제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 북한학 박사인 안정식 기자는 SBS에서 한반도 문제를 취재, 보도하고 있으며 북한포커스(www.e-nkfocus.co.kr)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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