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축구의 최대 라이벌이자 영원한 숙적 한·일 축구의 비교 전쟁은 비단 양국만이 아닌 세계 축구계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월드컵 직전까지 양국이 펼친 평가전 결과만 보면, 한·일 축구의 명암은 뚜렷해보였다. 아프리카 축구 강호 코트디브아르와 남미의 다크호스 베네수엘라, 그리고 숙적 일본을 2-0으로 완파하고 유로 2008 우승국 스페인과 대등한 경기 끝에 1-0으로 석패한 한국은 본선에서의 선전이 예상되었다.
반면 일본은 잉글랜드, 한국 등과의 평가전에서 거듭된 패배 때문에 본선에서 승점 1점이나 챙길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 한국 못지않게 엄청난 선전을 펼쳤고, 결과적으로 한국보다 더 좋은 2승 1패로 16강에 올랐다.
일본 열도는 흥분에 휩싸였고 오카다 감독을 재평가하며, 심지어는 전 일본팀 감독 필립 트뤼시에의 말을 인용해 일본의 평가전이 오카다의 치밀한 연막전술이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월드컵 평가전까지 일본팀은 열정 없고 샌님 같은 오카다 감독의 표정에 빗대어 "우울한 재팬"으로 묘사되었지만, 본선 선전으로 어느새 치밀하고 냉정한 오카다의 후예들로 칭송된다.
당초 4강을 목표로 했던 오카다에게 일본 축구팬들은 "아마도 E 그룹에서의 4강이겠지"라고 비아냥거렸지만, 8강 진출이 좌절된 상황에서 조차 오카다의 신임도는 90%가 넘을 정도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역시 감독의 능력은 결과로 말한다는 말이 진리 같아 보인다.
허정무와 오카다, 그들은 누구인가?
▲ 허정무 감독이 8강 진출이 좌절된 직후 주장 박지성을 위로하고 있다. ⓒ뉴시스 |
축구 선수로서 허정무와 오카다는 사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난다. 허정무는 차범근과 함께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허정무는 1974년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86년 은퇴하기까지 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공격형 미들필더로 활약했다. 1980년에서 3년간 네델란드의 명문 PSV 에인트호벤에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의 차범근과 함께 한국 축구의 첫 국제화 시대를 이끌었다. 에인트호벤 시절 그는 77경기에 15골을 기록했고,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84경기에서 25골을 기록했을 정도로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허정무 감독보다 한 살 아래인 오카다 다케시 감독의 선수 시절은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았다. 1980~85년까지 일본 대표팀의 수비수로 A 매치 25경기에 나와 1골을 기록했고, 클럽에서는 후루카와 전기공업에서 1980년에서 1990년까지 뛰면서 총 189경기에 9골을 기록했다. 1980년대 초중반 일본 대표팀의 수비를 이끌었지만, 가마모토-오쿠데라-미우라-이하라-나카타로 이어지는 일본 축구 영웅의 계보에는 포함되기는 어려운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감독으로서 두 사람은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허정무 감독은 1986년 은퇴 이후에 1989년 국가대표팀 트레이너, 1994년 국가대표 코치, 2000년 올림픽 국가대표 감독, 2004년 국가대표 수석코치를 거쳐 2007년에 국가대표팀을 맡아 엘리트코스를 밟았고, K-리그에서도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 '전남 드레곤즈'의 감독을 역임했다.
오카다 감독 역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부터 국가대표 코치로 일하다 성적부진으로 가모 슈 감독의 퇴진으로 감독직에 올라 본선까지 일본팀을 이끌었고, 2007년에는 오심 감독의 건강 문제로 사임하자 다시 일본 사령탑을 맡았다. J-리그에서는 '콘사돌레 삿포로', '요코하마 마리노스' 감독을 맡았고, 특히 2003~06년까지 맡은 요코하마 감독 시절에 팀을 두 번의 리그 통합 우승을 일구어냈다.
허정무 감독이나 오카다 감독 모두 터프하기보다는 조용한 스타일이고, 볼 점유율을 높이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호하면서 경기를 내적으로 지배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허정무 감독이 진도 출신이라 많은 축구팬들이 영리한 진돗개라는 애칭을 지워주었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당시 인기 캐스터 송재익 씨는 오카다 감독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이 두 애칭 모두 두 감독의 스타일을 대변해주는 것이었다.
허정무 감독이나 오카다 감독 모두 이른바 글로벌 축구 시대 해외파 출신 감독을 선호하는 아시아 축구의 트렌드로 인해 축구팬들로부터 적지 않은 눈총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대표팀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선수들에 대한 비난보다는 국내파 감독의 한계를 운운하며 허 감독을 평가절하하곤 했다.
한국 축구팬들은 허 감독을 비난하면서 항상 히딩크 향수병이 도졌다. 오카다 감독 역시 월드컵 본선 전까지 국내 언론에 도마에 오르면서 일찌감치 해외파 감독으로 교체하지 않은 것에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둥, 본선 첫 경기에서 패하면 오카다는 짐을 싸야한다는 둥 계속해서 시달렸다.
결과적으로 두 감독은 고국 출신 감독으로 월드컵 첫 승과 첫 원정 16강을 이끌어냈고, 지금은 적어도 단기간만일지는 모르지만 국민적 환대를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2007년부터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본선까지 항상 해외파 감독과 비교대상이 되었다가, 정작 본선에서는 칭찬을 받는 과정이 비슷하다.
'공격의 한국'과 '수비의 일본'
▲ 일본팀의 8강 진출이 좌절된 직후 오카다 감독이 일본 선수를 위로하고 있다. ⓒ뉴시스 |
한국이 16강 동안 4게임에서 6득점 8실점한 반면, 일본은 4득점 2실점을 한 결과를 놓고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은 매 경기 득점에 성공했지만, 일본은 2경기에만 득점에 성공했다. 통계적으로 보면 한국은 공격적, 일본은 수비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전에서 한국은 4승 4무에 12득점에 4실점, 일본은 4승 3무 1패에 11득점에 6실점이었다. 한국 대표팀이 처음부터 불안했고 일본의 수비력은 처음부터 좋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허정무 코리아는 이기기 위한 공격 전술을, 오카다 재팬은 이기기 위한 수비전술을 택한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한국팀은 수비 불안이 한계였고, 일본팀은 공격 부실이 한계였던 셈이다.
이러한 상반된 결과가 선수들의 기본 자질이나, 대회기간 감독의 전략적인 선택에 따른 것일 수 있겠지만, 필자는 비슷한 결과에 상이한 특성을 보면서 한국 축구와 일본 축구의 근원적인 기질을 발견한다.
허정무 코리아가 저돌적이고 터프한 플레이를 즐기는 한국 축구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면, 오카다 재팬은 안정되고 조직적인 플레이를 즐기는 일본 축구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만일 한국팀에 조직적인 일본 미드필더(MF)들이 보완되고, 일본팀에 파괴적인 한국의 포워드(FW)들이 보완되었으면 16강 경기결과는 어떠했을까?
한국 축구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공격수들을 많이 배출한 반면, 일본 축구는 패스플레이에 능한 미드필더들을 많이 배출한 특성을 갖고 있다. 이것이 아시아 축구의 동일성의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는 양국의 오랜 축구 전통이다.
그렇다면 상호보완은 가능할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양국의 축구의 기질과 플레이어의 평가 기준들이 다르게 때문이다. 허정무 코리아와 오카다 재팬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어떻게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만일 기질을 다스릴 수 있는 인위적인 시스템이 가능하다면 양국 모두 2014 브라질 월드컵에는 양쪽의 기질을 보완하는 시스템 보완에 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수비를, 일본은 공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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