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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수의 '오랑캐꽃']<241>

동남아시아 00국.
나라 이름은 밝힐 수 없다.
대사관의 명예가 걸려 있으니까.

총각 A와 처녀 B는 한 마을에 살았다.
둘은 사랑했다.
하지만 맺어지지는 못했다.
B가 한국으로 시집을 갔으니까.

B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남편이 말도 안 통하고,
나이 차가 너무 나는데다가,
생활력까지 없었으니까.

B가 절망하고 있을 무렵
A가 외국인 노동자로 한국에 왔다.
B는 불법체류자가 될 것을 각오하고 집에서 도망쳐 나와 애인한테 갔다.
그리고 애인이 일하는 공장에 취직했다.
둘은 동거에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만사가 뜻대로 될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곧 시련이 왔다.
몇 달 월급이 밀리더니 갑자기 회사가 도산했다.

일부 한국인 직원은 돈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전혀 돈을 받지 못했다.
고향에선 돈 보내라고 아우성인데, 둘은 돈이 없어 쩔쩔맸다.

생활비마저 떨어졌을 때 설상가상으로 더 기막힌 일이 일어났다.
A가 여권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는 구직 중이었는데 여권이 없으니 아무 회사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A는 대사관을 찾아갔다. 여권을 새로 만들어 달라고.
그러나 대사관 직원은 돈을 요구했다.
"최소한 4, 50 만원은 내야 해."
A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먹고 죽으려고 해도 4, 50만원이 없었으니까.

구직기간 3개월이 금세 지나갔다.
결국 A도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이렇게 안 풀릴 수가 있나?
둘 다 불법체류자가 되다니!

달포가 흘러갔다.
두 사람이 나를 찾아온 것은 이미 손 쓸 수 없게 된 후였다.
나는 탄식했다.
"비자가 무지하게 중요한데! 왜 진작에 오지, 이제 왔어요?"
A가 변명했다.
"도와주는 데 있는지 몰랐거든요."

둘 다 끼끗하게 잘 생겼지만, 머리는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멍하니 넋이 나간 듯한 얼굴.
사람이 뭔가에 쫓기면 이렇게 된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돈은 받아주겠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오지의 공장을 떠돌며
불법체류자로 살아가거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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