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부부가 갓난아기를 안고 왔다.
그들의 소원은 간단했다. 부부가 같이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표정이 절박하다.
사정은 이러했다.
부부는 원래 같은 회사에서 일했다. 하지만 여자가 임신한 걸 알았을 때 회사에선 뒷말이 많았다.
"애 낳고 키우고? 우리 회사에선 감당이 안 돼."
"아마 (위에서) 귀찮아 할 걸!"
"결국 일 못하는 거지 뭐."
그래도 출산까지는 봐주었다. 하지만 젖 먹이랴 기저귀 갈아주랴 엄마가 점점 애 돌보기에 시간을 빼앗기자 사모님이 최후통첩을 발했다.
"차라리 귀국했다가 애 키우고 다시 오는 게 어떨까?"
하지만 다시 온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가? 한 번 가면 못 온다고 봐야 한다. 영구귀국이 될 수밖에 없지.
아내는 귀국을 거부했다.
대신에 남편이 회사에 타협안을 제시했다.
"사모님, 우리 방 얻어서 나갈 게요. 애는 탁아소에 맡기고요. 그러면 되잖아요? 그래도 안 돼요?"
"안 돼."
아내가 할 수 없이 퇴사를 선택했다.
"내가 나가죠 뭐."
아내는 나가고 남편만 남았다. 이것도 못할 짓이다. 육아는 여자 혼자만 하는 게 아니잖은가.
다행히도 여자는 자신을 받아줄 새 회사를 찾았다. 그 회사에서는 남자도 받아줄 테니 같이 오라고 했다. 요즘 노동력이 귀하니까.
남편은 사모님에게 사정했다.
"저도 나가게 해주세요. 애 키우려면 부부가 같이 있어야 하잖아요."
"안 돼."
사모님은 거절했다. 숙련공이 빠지면 라인이 설까봐.
그래서 부부는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남편이 호소했다.
"어떻게든 회사 바꾸게 좀 해주세요." l
내가 말했다.
"사장님이 사인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되죠?"
아주 원시적이지만 한국 남자에게는 특효인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사모님 말고, 사장님한테 박카스 한 박스 사가지고 가서 빌어요."
"안 되면요."
"다음날 비타 500 사가지고 가서 또 빌어요."
"그래도 안 되면요."
"오렌지 주스 사가지고 가서 또 빌어요."
"그래도 안 되면요."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안 되긴 왜 안 돼? 돼! 한국 남자를 뭘로 보고!"
실제론 되었을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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