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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계약

[한윤수의 '오랑캐꽃']<202>

외국인 노동자는 자유로운 몸이 아니다.
회사에 꽁꽁 묶여 있다.
꼼짝 못한다!
아무리 환경이 나쁘고 대우가 나빠도 1년 동안은 그 회사를 떠날 수 없다.
사실일까?
사실이다!
심지어 의료보험이 없는 회사라도, *점심 식사마저 주지 않는 회사라도, 냄새나고 뜨겁고 더럽고 환기가 안 되는 회사라도, 매일 매 순간 산재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회사라도, 그 회사를 떠날 수 없다.
그렇다면 노예지, 이게 무슨 노동자인가? 솔직히 말해서 노예노동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외국인 노동자에겐 직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오죽하면 국제앰네스티에서 "(한국에서 일하는)외국인 노동자가 착취와 인권침해에 취약한 대부분의 이유는 고용주의 허가 없이 직장을 이동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경고했을까.
하기야 *고용허가제란 말부터가 "고용주 위주로 할 테니까 그리 알아!"란 뜻이다. 그러니 어디서 노동자가 나서냐? 더구나 외국인인 주제에!
기막히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서 금년 4월 10일부터는 법이 더 나쁘게 바뀐단다.

지금까지는 고용주와 외국인 노동자가 근로계약을 할 때 계약기간이 1년을 넘지 않도록 엄격히 제한했다. 아무리 외국인 노동자라도 1년에 한 번은 직장을 바꿀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자유를 준 것이다.
그래야 외국인 노동자도 더 나은 직장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대부분 고용주도 여기엔 이의가 없었다. 그래야 더 우수한 노동자를 구할 수 있으니까. 그분들은 자질 좋은 외국인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해 업체의 근무환경과 근무조건을 개선하는 데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안 하고 막무가내로 외국인 노동자를 붙잡아두려는 일부 기업주들에겐 *1년 계약이 눈엣가시였다. 왜냐하면 그런 회사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그러듯 외국인 노동자도 떠나버리니까!
아무리 외국인 노동자라도 배고프고 더럽고 위험한 공장에서 일하기를 좋아하는 바보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 일부 기업주들은 근로자가 스스로 남고 싶어지도록 자신이 노력하지 않는다는 점은 감쪽같이 숨긴 채 1년 계약 방식에 대하여 언뜻 듣기에는 그럴싸한 불평을 늘어놓는다.
"일할 만하면 나간단 말이야! 못 해먹겠어."

한데 이 일부 기업주들의 불만을 듣고 한국 정부의 정책이 바뀐단다.
믿어지는가?
사실이다.
바뀐다.
어떻게?
"앞으론 2년 계약 아니라, 3년 계약도 가능하다. 물론 외국인 근로자와 합의해야겠지만!"
아니, 현실을 알고 하는 얘기인가?
합의?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
합의라는 게 법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알 리 없다.
누구하고 어떻게 따질 수 있는 건지도 알 리 없다.
세세한 조항 안에 똬리를 튼 사슬들은 더욱 모른다.
설사 이런 걸 누가 알려준다 해도 자신의 권익을 지킬 힘이 없다.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는 겁에 질려서, 사장님이 서류 놓고 사인하라면 무조건 예스 하는 게 현실인데 어떻게 진정한 합의가 되나?

다년간의 현장 경험에 의하면 앞으론 이렇게 될 게 뻔하다.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는 뜻도 모르고 서명한 근로계약서 때문에 2년 내지 3년 동안 그 회사를 떠나지 못하고 노예노동에 종사할 것이다.

거듭 강조해야겠다.
이 법이 시행되면
1. 기업주들은 근무환경과 근무조건을 개선하지 않을 것이다.
2. 외국인 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가 될 것을 각오하고 근무지를 이탈하는 일이 잦아질 것이다.
3. 그래서 결국은 기업주들에게도 피해가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다.
4. 유엔 인권위원회와 앰네스티, 국제노동기구, 노동자를 한국에 보낸 아시아 각국, 그리고 전 세계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탄압한다."고.

결국은 국가 브랜드에 멍이 든다!

G20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나라인데
부끄럽지 않겠는가?

*점심식사마저 주지 않는 회사: 이런 회사에서는 대개 쌀을 주고 점심을 해먹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 짧은 점심시간에 해먹을 수는 없기 때문에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다.

*고용허가제: 고용주에게 노동자 도입 권한을 주는 제도. 노동자에게 직장 선택의 권리를 주는 노동허가제와 대비된다. 과거의 악명 높은 산업연수생 제도보다는 상당히 개선된 측면이 있으나, 직장 이동을 제한하므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1년 계약: 1년 계약도 얼마든지 재연장이 가능하다. 따라서 "일할 만하면 나간다."는 일부 사장님들의 불평은 설득력이 없다. 잘 해주면 왜 나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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