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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한윤수의 '오랑캐꽃']

눈이 부리부리하고 체구가 제법 큰 태국 노동자가 왔다. *어디서 많이 본 인상인데 생각이 안 난다.
그가 말했다.
"말싸움하다가 한국 사람이 먼저 밀었어요. 그래서 싸웠어요."
일방적으로 맞은 게 아니라 쌍방 폭행이다. 이런 경우는 골치 아프다. 약자라고 유리할 것도 없다. 양쪽 다 벌금이 나올 테니까.
싸운 회사에서는 어차피 일 못할 테고. 내가 태국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직장을 옮겨주는 것밖에 없다. 물론 태국인도 그걸 바라고 온 것이고.

"어디를 다쳤어요?"
그는 머리와 무릎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병원에 데려가서 진단서를 떼니 3주가 나왔다.

사실 관계를 알아보려고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 사람이 먼저 밀었다면서요?"
사장님은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예요? 태국 애가 먼저 때렸어요."
"그래요?"
"걔가 몇 달 전에 관리자를 때린 일도 있다니까요."
"그래요?"
그러면 태국인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란 말인가?
사장님은 계속 말했다.
"이번엔 절대 용서 못합니다. 이미 고용지원센터에 *이탈신고는 했구요. 경찰에도 고소할 겁니다."
너무나 단호해서 얼른 전화를 끊고, 다시 조근조근 태국인에게 물었다.
"누가 먼저 때렸어요? 솔직히 얘기해요."
"사실은 내가 먼저 때렸어요."
"왜 때려?"
"한국 사람이 '너, 편하게 일하는구나.'해서 때렸어요."
"아니, 그런다고 때려? 이 사람 안 되겠구먼."
그는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외국인 센터니까 외국인을 도와줄 줄 알았는데 뜻밖이란 표정이다.
나는 쌀쌀하게 말했다.
"우린 무조건 도와주지 않아. *잘못한 사람은 안 도와줘. 알았어요?"
"알았어요."
그는 체념한 표정이 되었다.
"이 사건 손 뗄 거예요. 알았어요?"
"알았어요. 하지만 월급 하고 퇴직금 못 받은 게 있는데요."
"그건 받아줄 게요."
나는 월급명세서 등 필요서류를 받아놓고 그를 보냈다.
돌아서 가는 등이 쓸쓸해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디서 많이 본 인상 : 나중에 생각해보니 덴마크 영화 '영혼의 집'에서 남자 주인공(제레미 아이언스 扮)의 사생아로 나오는 포악한 군인을 닮았다. 소위 험상궂은 인상이다.

*이탈신고 : 5일 이상 무단결석하면 이탈 신고를 할 수 있다. 그는 무단결석 5일째였다.

*잘못한 사람 안 도와줘 : 우리가 안 도와주면 그는 벌금을 내고 추방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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