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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사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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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사무라이

[한윤수의 '오랑캐꽃']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감독 구로사와 아끼라(黑澤明)의 작품 중에 <7인의 사무라이>라는 영화가 있다. 빈한한 농촌. 수확철만 되면 곡식을 강탈해가는 산적떼. 더 이상 곡식을 빼앗기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농민들은 7인의 사무라이를 고용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보잘 것 없는 보수를 받고 싸울 줄 모르는 농민을 대신해서 산적떼와 싸운다.

나는 우리 센터의 직원들을 보면서 7인의 사무라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보잘 것 없는 보수를 받고 싸울 줄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신해서 싸우니까.

지난 2년 반 동안 우리 센터는 싸울 줄 모르는 사람은 직원으로 쓰지 않았다. 간혹 일만 잘하고 싸울 줄 모르는 직원이 들어왔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은 견디지 못하고 금방 나갔다. 싸울 일이 계속 생겼으니까.

신입사원으로 남자 직원이 들어왔다. 군에서 특공대 부소대장을 지냈다지만 몸이 너무 가냘픈데다가 목소리도 너무 낮고 분명치 않아서 전화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경우까지 생긴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약해서야 어디에 쓰나? 하지만 한 사건으로 내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센터 옥상에는 한국에 노동자를 보내는 14개 나라의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그런데 이 국기들은 1년이면 찢어지거나 엉키고 빛이 바래서 매년 새로 갈아야 한다. 하지만 엄두가 안 난다. 사다리를 걸쳐놓고 옥상 난간에 기대서서 작업해야 하는데, 깃대가 밖으로 45도 각도로 기울어서 몸이 반 이상 허공으로 노출되어야 하기에 아주 위험하다. 나는 일요일날 작업 경험이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오면 그들을 데리고 작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다. 신입사원 혼자 14개국의 깃발을 다 가지고 옥상으로 올라간 것이다. 나는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고 쫓아 올라갔다. 그러나 눈앞에는 이미 아찔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그 좁은 폭의 난간에 버티고 서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헌 깃발을 카터로 잘라 제거하고 새 깃발을 달고 있는 게 아닌가. 바람은 세게 부는데! 너무나 아찔해 오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가 놀랄 새라 숨을 죽이고 물었다.

▲ ⓒ한윤수

"위험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의 대답은 침착했다.
"아뇨. 누가 뒤에서 밀지 않는 한 안전합니다."
나는 눈을 비비고 그를 다시 봤다. 그는 문자 그대로 괄목상대(刮目相對)할 만한 전사(戰士)였다!
하지만 나는 애원하듯 말했다.
"너무 (깃발이) 많으니까 일요일날 외국인들하고 같이 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는 팔목시계를 흘끗 보더니 자신 있게 말했다.
"지금이 3시 반, 다섯 시 반 퇴근 때까지 마치겠습니다."
나는 그가 떨어질까봐 무심결에 그의 바지 허리 멜빵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돌아보며 웃었다.
"괜찮습니다. 목사님 들어가십쇼."
어느 명령이라고 거역하랴.
허리춤을 잡았던 손을 슬그머니 놓고 4층 밑의 지상으로 내려와서 옥상 난간을 올려다보았다.
까마득한 허공을 배경으로 아슬아슬하게 움직이는 그를 보며 사무라이 하나는 확실하게 구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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