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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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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새끼

[한윤수의 '오랑캐꽃']<139>

플라스틱 김치통을 만드는 공장에 무지하게 미움을 받는 태국인이 있다. 왜 미움을 받느냐 하면 일을 너무나 못해서다. 사장님 말로는 여자보다 일을 못한다니까.
"정말 여자보다 일 못해요?"
하고 물어보니 수라차이(가명)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아니오. 여자들은 가벼운 일 하잖아요."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무거운 형틀을 눌러 큰 김치통을 뽑아내는 일을 주로 한다. 너무나 힘들어서 어제도 사고를 쳤다. 오후 1시에 어깨가 너무 아파서 일을 못하겠다며 기숙사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버린 것이다.
사장님은 화가 나서
"당장 그만 둬. 태국으로 가!"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국에 온 지 석 달밖에 안됐는데 태국 가면 어쩌나? 그는 절망에 사뭇 떨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태국으로 추방되지는 않을 거라는 어떤 예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잘 되라고 부모님이 거금 10만 바트(약 4백만원)를 들여 *불공을 올려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똥끝이 타는지 그가 찾아온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실제 모습을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얼굴도 희고, 몸도 가냘프고, 손가락까지 가늘어서 일도 지지리도 못하게 생겼다. 꼭 지식인처럼 생겼으니까. 하지만 혹시 아는가? 굼벵이도 굼불 재주가 있다는데 뭔가 잘하는 일이 있을지?
"혹시 잘하는 일 있어요?"
하자 그는 반색을 했다.
"저 전자 쪽 일은 잘해요."
"전자 쪽은 어떻게 잘해요?"
"대만에서 5년 동안 전자회사에서 일했어요,"
대만에서 일했다면 믿을 만하다. 대만은 전자가 세니까.

나는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라차이를 해고해 줄 수 있습니까?"
사장님은 즉시 동의했다.
"물론이죠. 오늘 당장 짐 싸가지고 가라고 하세요."

나는 그에게 서류를 주며 사장님의 싸인을 받아가지고 고용지원센터로 가라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 직장이 전자회사라면 절대로 미운 오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불공 : 태국 남자는 성년이 되면 누구나 비구(比丘)가 되어 출가(出家)하는 격식을 밟는다. 물론 통과의례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때 부모가 큰 불공을 드려준다. 웬만큼 잘사는 사람도 5만 바트짜리 불공을 드리는 데 비해 수라차이는 26세 때에 대만에서 벌어온 돈으로, 특별히 10만 바트짜리 불공을 드려서 그만큼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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