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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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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탈출

[한윤수의 '오랑캐꽃']<132>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장님들은 노동자를 잡아두기 위하여 별별 노력을 다한다. 그만큼 노동자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동자를 협박하는 사장님도 있다.
"지금 당장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 태국으로 보내버릴 거야."
한국에 온 지 1년도 안된 노동자들은 이런 협박에도 벌벌 떨며 계약서에 싸인한다.

왜 협박에 넘어갈까? 고립되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고립될까? 고립되는 이유와 유형은 여러 가지다. 하나하나 보겠다.

1. 시골형
시골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연 지형 즉, 산과 강과 들로 고립되어 있다. 따라서 가만히 갇혀 있으면 한국 물정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이 어느 정도로 무지하냐 하면 직장을 옮길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니까. 고립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일주일 중 하루, 휴일에 도회지로 나가서 같은 나라의 노동자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 대도시에는 같은 나라의 노동자들이 잘 다니는 한글학교나 교회나 절 등이 반드시 있으니까.

2. 방콕형
도시의 공장에 일하는 노동자라도 휴일에 기숙사 방에 콕 박혀 TV나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모른다. 최소한 옆 공장의 노동자들과 어울리기라도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과 어울리면 귀찮은 점도 있지만 유익한 점이 더 많다. 그 유익한 점 중 하나가 자신의 권리에 눈뜨게 되는 것이다.

3. 오로지 신자형
휴일에 교회나 절에만 다니는 신자들이 의외로 어수룩할 수가 있다. 다행히도 교회나 절이 커서 같은 나라의 노동자가 많으면 그는 행운아다. 교회에서도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교회나 절이 작아서 같은 나라의 노동자가 거의 없을 경우에는 세상 물정 모르기 십상이다.

심지어 한글을 가르쳐주는 꽤 큰 교회에 다니는 노동자도 사장님의 으름장에 넘어가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그 교회에는 같은 나라의 노동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요는 교회가 크면 모르지만, 교회가 작으면 교회에만 머물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다.

4. 짝꿍형
아무하고도 안 만나고 오로지 애인하고만 붙어 다니는 타입이다. 휴일에 애인을 만나러 먼 거리를 오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데이트 장소에 가서도 애인과 단 둘이 딱 붙어 있으니까 아무것도 모른다. 무식하기 이를 데 없지! 행여나 애인이 지식이 많은 사람이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방콕형만큼 위험하다.

다만 애인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서는 적극적인 성격이라면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애인 쪽으로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면 제반 물정에 통달해야 하니까.

지금까지 한국에 와서 고립에 빠지는 외국인들의 유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흔히 고립에 잘 빠지는 노동자들은 한국에 소수의 인원만이 나와 있는 네팔, 스리랑카, 캄보디아 출신이 많다. 그리고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되고 내성적인 태국인들도 고립에 잘 빠진다.

그러나 좀처럼 고립에 빠지지 않는 민족도 있다. 필리핀과 베트남이다.
필리핀인들은 각지의 천주교 성당을 중심으로 휴일날 무조건 모여서 미사를 드리고 농구 게임도 하고 정보를 교환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며 깨인 민족이다. 만일 어느 회사의 사장님이 신참 노동자에게 필리핀으로 보내버린다고 협박한다고 치자. 신참이 성당에 가서 얘기하면 선배들은 웃는다.
"필리핀으로 보내버린다구? 뻥이야!"

베트남인들도 잘 뭉친다. 동족이 많이 다니는 교회나 절에서 만나거나, 유익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한글을 배우거나, 지역별로 내기 축구시합을 많이 하기 때문에 고립에 빠지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요는 같은 민족끼리 잘 어울리면 고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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