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어느 도시에 G라는 독지가가 운영하는 아주 작은 외국인노동자센터가 있다. 그녀 혼자서 외국인노동자의 체불임금을 받아주고 폭행 사건을 처리하고 비자를 연장해주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런데 근처에 어느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가 생겼다. 그곳에는 목사가 대표로 있고 전도사 등 직원도 많다. 그런데 그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에서 외국인의 체불임금을 대신 좀 받아달라고 G씨에게 의뢰가 왔다. 너무나 기막혀서 G씨가 물었다.
"왜 거기서는 월급 받는 걸 도와주지 않죠?"
전도사가 말했다.
"에이, 교회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나요?"
교회 계통의 그 센터에선 *노동 상담은 일체 하지 않고 문화행사만 한단다.
따라서 도움이 필요한 외국인들은 죄다 이쪽으로만 몰리니 이래저래 죽어나는 것은 G씨다.
경기도 S(가명)시에도 외국인에게 비교적 잘 대해주는 교회가 있다. 그 교회에서는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고 다과회도 열어주며 길 모르는 외국인을 공장까지 데려다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니다.
그 교회에서 한글을 배우는 캄보디아 노동자 던밥(가명)에게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그는 고물상이나 다름없는 플라스틱 폐자재 재활용 공장에서 11개월째 일하고 있다. 노천에다 햇빛 가리개도 없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고 월급도 적으므로 그는 1년 계약 만기가 되는 날 직장을 옮기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러나 사장님은 재계약서에 싸인하지 않으면 캄보디아로 보내버린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결국 캄보디아 동료 하나는 겁에 질려 싸인했다.
싸인 안하면 캄보디아로 쫓겨간다! 두려움에 싸인 던밥은 교회에 가서 아무나 붙들고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전도사님도, 권사님도, 한글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모른 체했다. "교회가 그런 일에 낄 수 없다!"고 하면서. 다만 집사님 하나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자신을 제외한 거의 모든 다른 교인들에게 힐난을 들었을 뿐이다.
"골치 아픈 일에 왜 끼려고 그래요? 자기가 알아서 하게 그냥 내버려 두세요"
집사님도 혼란에 빠졌다. 도와주는 게 옳은지, 내버려두는 게 옳은지? 그러나 밤잠을 설치며 고민해 봐도 도와줘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걸 어쩌겠는가!
집사님은 내 자문을 받으려고 발안 센터로 전화했다. 그러나 센터는 이틀 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 이틀은 우리 센터의 휴가와 겹쳤으니까.
"이틀 동안 무서워 혼났어요. 던밥한테는 계속 전화 오죠. 아무 데도 물어볼 데가 없죠. 교인들은 싸늘하게 쳐다보죠."
집사님은 나를 만나기 전 이틀 동안의 고립감을 그렇게 표현했다.
나는 우선 던밥을 안심시켰다.
"캄보디아 안 가! 사장님 맘대로 안 된다니까. 던밥한테도 권리가 있어요. 1년 계약했으니까 1년 일할 권리!"
그리고 1년 만기가 될 때까지 싸인하지 않고 버티면 직장을 옮길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집사님이 물었다.
"목사님, 제가 주제넘은 짓을 한 건 아닌가요?"
오히려 나는 그를 북돋아 주었다.
"주제넘다니요? *좋은 일 한 거죠!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준 건데!"
교회가 할 일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예수님이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했을까?
*노동 상담 : 노동 상담을 하다 보면 때로는 악덕 기업주와 싸워야 할 일이 생긴다. 교회 계통의 그 센터는 남과 싸우는 일은 일체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럼 약한 사람은 누가 돌보나?
*좋은 일 : 며칠 전 울릉도에서 자신을 <외국인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고만 밝힌 분한테서 전화가 왔다. 네팔인이 선원으로 있는데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어서 직장 이동을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 직원이 자세하게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울릉도 사람은 그 방법을 네팔인에게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그 울릉도 사람이 한 일, 이게 바로 좋은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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