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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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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조바심

[한윤수의 '오랑캐꽃']

베트남에서 한국에 오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하여 오는 것. 요건 하늘의 별 따기다. 또 하나는 시험을 보지 않고 뒷돈을 주고 오는 것. 이게 보통 사람들이 흔히 오는 방법이다.

농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여성 흐엉(가명)은 한국에 올 때 뒷돈 3천 달러를 주고 왔다.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 E-9-2가 7천 달러인데 비해, 농장에서만 일하는 비자 E-9-4를 얻기 위하여 3천 달러를 주었다면 상당히 비싸게 준 셈이다. 농장은 공장에 비해 일도 힘들고 돈도 적게 받으니까.

흐엉은 마음이 급하다. 빚을 지고 왔으니까. 그녀의 모든 행동은 이 빚을 빨리 갚아야 한다는 조바심에서 비롯된다고 보면 된다.
흐엉은 화성 양감의 토마토 농장에 배치되었다. 계약서에는 월급이 100만원으로 되어 있었으나 사장님은 90만원밖에 주지 않았다. 사장님이 으레 하는 말.
"계약서가 잘못되었다니까!"
그나마 첫 달 월급은 반만 주었다. 왜 반만 주냐 하면 도망갈까 봐서다. 이걸 '깔아놓기'라고 하는데 월급을 다 주지 않고 일부를 깔아놓으면 이게 아까워서도 못 도망가기 때문이다.

일은 힘들고 돈은 적고 이래저래 흐엉은 불만이 많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7개월쯤 일했을 때, 옆 농장의 사장님이 100만원을 줄 테니 자기 농장으로 오라고 했다. 솔깃해진 그녀는 지금 사장님에게 농장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사장님이 순순히 응할 리 없지. 왜냐하면 흐엉을 데려올 때 쓴 비용이 있으니까. 교육비니 뭐니 해서 한 40만원 정도를 썼다.

그래도 흐엉은 계속 졸랐다. 견디다 못한 사장님은
"그래 알았어. 너 데려올 때 쓴 비용 40만원 주면 보내줄게."
하고 반승낙했다.
흐엉은 수소문 끝에 나를 찾아왔다.
"40만원 안 주고 농장 바꿀 수 있게 해주세요."
"방법이 없는데요. 사장님이 싸인 해주지 않으면."
"이걸로 안될까요?"
왼팔을 내미는데 보니 팔과 손을 다쳤는지 여러 군데 반창고를 부쳤다. 깜짝 놀라 물었다.
"어? 농장에서 일하다 다쳤어요?"
하지만 대답이 엉뚱하다.
"아뇨. 지나가는 자전거에 스쳤어요."
"어허, 산재도 아니네요! 안돼요."
"그럼 못 바꿔요?"
"못 바꾸지. 하지만 1년 되면 자연히 바꿀 수 있는데 왜 좀 기다리지 그래요? 5개월, 정확히 말해서 4개월 20일만 기다리면 되는데."
"안돼요. 지금 당장 바꿔야 돼요. 사장님하고 사이가 안 좋거든요."
나는 솔직히 물었다.
"사장님이 욕해요?"
"아뇨. 잔소리만 해요."
"그럼 좋은 사장님이에요, 농장에선. 욕하는 사장님 많거든."
"그래요?"
"그럼! 그냥 참고 일해요. 5개월만. 그리고 1년 되는 날 정식으로 옮겨요. 그러면 못 받은 돈도 다 받게 해줄 테니까."
그래도 흐엉은 옮기고 싶어 했다. 그만큼 마음이 급하다는 게 얼굴에 씌여 있다. 그녀가 또박또박 말했다.
"40만원 주고라도 지금 옮기게 해주세요."
나는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40만원을 주든지 말든지, 그건 노동자가 사장님하고 알아서 하면 되는 거예요. 대신에 그런 불법거래를 하는 사람은 이제 우리 센터에선 못 도와줘요."
흐엉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같이 왔던 남자친구와 함께 핑하니 나갔으니까. 그러나 10분도 안 되어 돌아왔다.
"목사님, 그냥 토마토 농장에서 1년 채울래요. 대신에 못 받은 돈 꼭 좀 받게 해주세요."
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물론이죠."
그녀는 그 10분 사이에 마음이 차분해진 것 같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게 당당한 길이니까.

퇴근 무렵. 길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여성의 모습이 낯익어 쳐다보니 흐엉이다. 석양에 비친 그녀의 얼굴이 밝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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