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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가는 복지, 헛돈 쓰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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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가는 복지, 헛돈 쓰는 정부

[창비주간논평]<215>

복지예산이 축소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감세정책과 4대강 정비 사업 추진으로 애먼 복지예산만 삭감된다는 비판이다. 기획재정부는 '2010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영계획안 요구 현황'을 발표하면서 정부의 관련 부처가 요구하는 복지부문 예산이 82조 1000억원으로 올해 예산 74조 6000억원보다 10.1% 늘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추경예산을 포함한 올해 복지예산 80조 4000억원 전체를 기준으로 보아 내년 복지예산은 2.1% 늘어난 것에 그쳤고, 물가상승률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감소된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국민연금 급여 등으로 인한 자연증가분까지 생각하면 다른 복지사업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덧붙는다.

그러나 경제위기 대책으로 추경예산까지 세워 늘린 올해 복지예산과 경기회복이 예상되는 내년의 복지예산을 비교하여 복지 축소라고 하는 비판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예산 증가율을 계산하면서 복지지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는 것도 이치에 맞는 논리는 아니다. 웬만한 복지제도가 다 도입된 실정에서 복지지출 증가의 대부분은 이미 있는 제도의 수혜자 증가와 급여 증가 때문에 생기게 마련이다. 내년 예산 요구안에 반영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수가 올해보다 줄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 또한 오해의 결과다. 올해 추경예산을 세울 때 예측한 수급자 수는 163.2만명이었지만, 실제 수급자 수는 157.6만명에 머물렀다. 따라서 내년 예산에 올린 157.8만명의 수급자 수치는 올해 규모에서 줄어든 수준은 아니다.

복지예산 늘었나 줄었나... 문제는 양보다 질

지금까지 이명박정부 복지정책의 문제점은 양보다는 질에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부터 정부의 최대 현안은 경기회복을 위한 재정확대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었고, 덩달아 복지지출도 양적으로 증대되었다. 문제는 정부가 돈을 쓰긴 쓰는데 헛돈 쓰는 예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6월부터 시작된 희망근로사업을 들 수 있다. 정부는 희망근로사업에 1조 7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6개월간 25만개의 일자리를 만든다고 했다.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 저소득층을 돕고 소비진작으로 경기회복을 촉진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다. 경제위기로 실직된 근로자나 사업에 실패한 영세자영업자 등이 주요한 대상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막상 희망근로사업 참여자 선발 결과를 보면 60세 이상의 노인이 11.5만명, 가정주부가 5.5만명을 차지해 애초의 취지를 살리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을 할지 사업계획도 미비하여 과거의 취로사업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말도 종종 나온다.

일찍이 케인즈는 경기불황기에는 항아리에 돈을 담아 땅에 묻은 다음 다시 이것을 파내게 하는 일자리를 만드는 식으로라도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수요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부딪힌 우리도 희망근로든 뭐든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나은 처지였다. 같은 이유로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에도 공공근로사업을 크게 벌인 바 있다.

당시 한국에는 변변한 복지프로그램이라 할 게 없었고 따라서 공공근로를 통한 지원방식은 나름의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고용보험은 900만 근로자를 가입자로 보유하게 되었고, 수년간 정부와 민간의 협력으로 23만명이 종사하는 사회써비스 일자리 사업이 자리잡았다. 따라서 10년 전의 공공근로를 희망근로라고 이름만 바꾼 채 반복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미 다른 식의 정책을 펼칠 복지인프라를 상당히 갖추었기 때문이다.

실직자 생계급여와 재취업 지원이 핵심

경제위기의 핵심이 실업난에 있으니 그 타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실직자에 대해 생계를 지원하고 재취업을 돕는 것이 위기대책의 핵심이다. 그래서 실업급여가 인색하기로 유명한 미국에서조차 실업수당 기간을 늘리고 급여수준을 올리는 데 역점을 두어 경제위기 구제책을 실시하는 중이다. 그간 우리나라도 고용보험을 크게 발전시켰지만, 고용보험 가입자 중에서도 실직자의 30~40%만이 실업수당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실직급여의 자격을 인정하는 사유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고 급여기간 또한 짧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시적으로라도 실직수당의 자격을 완화하여 좀더 많은 실직자에게 혜택을 확대하는 것이 절실하다. 취약근로자와 영세자영업자 등 고용보험에서 제외되어 있는 이들은, 아쉽기로는 고용보험 가입자 저리 가라다. 800만명이나 되는 이들에게 실직시 생계급여를 제공하는 제도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위기대책을 논하는 의미가 없다. 생계급여 지원과 함께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구직활동을 돕는다면 그 혜택이 희망근로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양한 사회적 일자리 사업을 확대하는 것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회써비스 분야는 일자리 창출 잠재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회써비스 고용비중은 13.8%에 불과하여 OECD 평균보다 7.5%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추경예산에서 사회써비스 일자리 사업에 대한 지원은 전체 2.6조원인 일자리 예산의 11%에 그쳤고, 대부분의 재원이 희망근로로 돌아갔다.

재정논리로만 복지사업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그런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렇게 10년을 다져온 복지인프라를 정부가 외면하고 희망근로라는 구시대 유물을 다시 들고 나온 이유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실업급여나 사회적 일자리 등 정규 복지사업을 확장하는 경우에는 경기회복 후에 삭감이 어렵기 때문에 희망근로라는 단기 일자리 사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복지지출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업을 없앨 구상부터 했으니 그렇게 시작된 일이 잘되기는 애초부터 글렀던 것인지 모른다. 정부는 지속가능성이 없는 비효율적 사업을 찾아나섰고, 그 결과 희망근로가 선택된 셈이다.

이렇듯 이명박정부가 헛돈을 쓰게 된 데는 재정논리로만 복지사업을 바라보는 편향된 시각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복지지출을 서민과 저소득층을 다시 일어서게 하는 디딤돌로서가 아니라 정부재정을 까먹는 하마로만 보는 것이다. 이렇게 좁은 시각에서 나라살림을 다루니 그나마 하는 복지사업마저 실정에 맞지 않는 헛발질이 되고 만다. 돈을 쓰겠다는 것도 좋지만 '제대로' 쓰려면 정부의 자기혁신부터 필요하다. 경기가 회복세를 탔다는 말이 언론에 나오기 시작했지만 서민들의 팍팍한 삶에 온기가 돌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부가 때늦게나마 친서민 중도실용노선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들에게 희망을 열어갈 역할을 기대해도 될지,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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