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공간 유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공간 유감

[한윤수의 '오랑캐꽃']<109>

수원 고용지원센터 중앙 계단으로 올라가서 2층 오른쪽 공간은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장소다.

재작년 내가 고용지원센터에 자주 다닐 때만 해도 이 공간은 통짜였고 벽 쪽으로 상담 창구가 일렬횡대로 늘어서 있었다. 이때는 구직 중인 외국인이건, 외국인을 고용하려는 사장님이건, 누구나 똑같이 번호표를 뽑아들고 자신의 상담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외국인 노동자에겐 이런 배치가 좋았었다. 하지만 사장님들의 불만이 많았다. 너무나 장시간 기다리는 게 첫째 불만이고, 외국인 노동자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둘째 불만이었다.

그래서 작년엔가 통짜 공간에서 3분지 1쯤 되는 로비는 그대로 두고 나머지 공간을 반으로 잘라서 오른쪽에 <사업주를 위한 전담 창구>를 만들었다. 사장님들은 좋아했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어졌고 자존심 상하게 외국인과 섞이지 않아도 되니까. 반면에 하루에 수백명씩 방문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그래잖아도 좁은 공간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며칠 전 오래간만에 고용지원센터에 가보았다. 2층으로 올라가 외국인력팀 공간에 들어서니 상당한 변화가 느껴진다. 우선 우측에 <사업주 전담창구>란 팻말이 눈에 확 들어온다. 비교적 널찍한 공간에 4명의 직원이 배치되어 있고 그 뒤에 팀장이 자리 잡고 있는데 상담하는 모습이 여유롭다. 또한 출입문부터 로비를 통과하고 창구를 지나 팀장이 자리 잡은 저 뒤쪽 벽까지 전 공간이 트여 있어서 시원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나는 그쪽에는 별 볼일이 없기에 그와 반대쪽 코너, 즉 기역자 칸막이로 완전 밀폐되어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외국인 전담창구>로 들어섰다. 전체 공간에서 3분지 1이나 될까? 좁은 공간에 외국인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서 숨이 탁 막힌다.

왜 면적에 비해서 더 답답할까? 잘 살펴보니 이곳에 <상설면접장>까지 들어와 있어서 그중 반 정도의 공간을 점령한 채 베트남인들이 면접을 보고 있다. 수요일은 베트남 면접이 있는 날이라 외국인 전체가 차지할 공간을 베트남인들이 거의 다 차지하고 있다.

옛날에는 큰 상설면접장이 따로 있어서 직원들이 면접장까지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이제 외국인 전담창구 안으로 들어왔으니 직원들은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일종의 행정 편의주의로 보여지는데, 다만 한 가지 단점이라면 그 방안에 사는 사람은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무차별적으로 비좁고 답답한 걸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면접장에 놓여진 몇 줄의 의자가 끝나는 바로 뒤꽁무니에 <전화상담>이란 팻말이 있고 인턴 직원 3명이 앉아 있다. 여기서는 전화로 상담을 받는데, 상담원 말로는 주로 회사 사장님들이 외국인 고용에 관한 문의를 해오면 안내를 해준다고 한다.

그와 직각으로 꺾어진 곳에 <구직 및 알선> 창구가 있다. 여기에도 4명이 배치되어 있다. 여기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옛날부터 해주던 일 즉 구직필증과 알선장을 떼어주고 있다.

그러니까 가만히 살펴보니, 이 방은 문이 있는 북쪽만 빼놓고, 동쪽 남쪽 서쪽 3면이 각각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일종의 부서로 되어 있다. 즉 서쪽 면은 전화상담하는 한국인 인턴들이 차지하고, 남쪽 면은 알선장 떼어주는 정식 직원들이 점령하며, 동쪽 면은 면접을 보는 회사측 인사담당자들이 각각 포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외국인은 3면이 한국인으로 둘러싸여 있는 중앙에 포위되어 있는 꼴이다.

마치 "너희들은 완전히 포위되었다! 열을 셀 때까지 안 나오면 무조건 발포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경찰영화의 한 장면처럼.

하지만 그 중앙도 상설면접장이 거의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노동자들은 앉을 데조차 없는 공간에서 엉거주춤 서있을 뿐이다. 나 역시 엉덩이를 붙일 데가 없어서 두리번거리다가 면접장 맨 끝 의자에 간신히 앉았다. 하지만 처음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몸둘 바를 모르는 것 같다.

정말 유감이다. 아무 항의도 못한다고 외국인노동자들을 이렇게 짐짝처럼 취급해도 되는 것인가?

물론 사업주를 위한 배려를 나는 이해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약간의 공간을 더 할애해주든지, 차라리 밀폐해놓은 칸막이라도 없애서 숨이라도 자유롭게 쉬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