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동행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동행

[한윤수의 '오랑캐꽃']<100>

일요일에는 항상 상담이 많다. 평일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꼼짝 못하던 노동자들이 그야말로 자유인이 되어 몰려나오니까.

일요일 하루에 상담만 보통 40건 이상을 처리하는데 당사자 40 여명만 방문하는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혼자 오면 불안해서 그런지 보통 친구를 최소 한 두 명, 많으면 서넛까지 데리고 온다. 그래서 실제 상담자는 40 여명에 불과하지만 친구까지 포함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명 이상이 온다고 보면 된다.

100 여명이 시간대별로 알맞게 나눠서 온다고 해도 19평밖에 안되는 비좁은 사무실은 늘 복작거리고 사람들이 내뿜는 숨으로 실내온도가 상승하며 노동자들의 땀냄새로 공기가 탁하다. 그래서 에어컨을 항상 켜놓는 동시에 수시로 환기도 시키기 위하여 창문을 여는, 모순된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

좁은 실내에는 노동자만 있는 게 아니다. 나와 *상근 직원 두 사람과 통역 둘과 자원봉사자 서넛은 항상 대기상태이니까 공기를 탁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수에 이들을 보태야 한다.

일요일의 직원들은 사실 정수기 물 마시러 갈 시간도 없어 물병들을 차고 앉아 있다.
작년만 해도 이렇게 바쁘지는 않았는데 올해는 유독 왜 이렇게 바쁜가? 상담을 잘해서? 어림없는 소리다. 상담은 전국 어느 센터나 똑같다고 보면 된다. 똑같은 임금체불에 똑같은 폭행, 산재, 직장이동, 체류문제, 해결하는 방법도 비슷하고 뭐가 다르겠는가?

사실은 상담하고 진정서 쓰는 것까지는 어느 센터나 똑같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진정서를 쓰고 난 후가 다르지! 우리 센터는 노동부에서 출석요구서가 오면 외국인 노동자만 혼자 보내는 게 아니라 한국인 직원이 반드시 동행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외국인들이 발안을 찾는 것이다.

"왜 (다른 센터에선) 진정서만 날리고 모르는 체하는지 모르겠어요. 외국인근로자만 혼자 보내서 도대체 어쩌겠다는 건가요? 한국말도 모르는 외국인들을 우리보고 어떻게 감당하란 말인가요? 답답해 미칠 지경입니다. 화성센터 말고는 다른 센터는 오는 데가 없다니까요."

수원 노동부에서 연륜을 쌓은 팀장이기도 한 K감독관의 하소연이다. 사실은 수원만이 아니다. 수원 인근의 S, B, P, A, I 시 등 다른 도시의 노동부에 가보아도 한국인 직원이 외국인노동자를 동행해서 온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왜 거의라는 말을 쓰냐 하면 혹시라도 왔는데 우리가 견문이 짧아서 못 보았나 해서다. 하여간 좀 더 솔직히 얘기하면, 나와 우리 직원들 눈으로는 동행한 경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처럼 외국인 노동자와 동행하지 않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태국 여성 아농낫이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녀는 처음 서울의 H센터에 자신의 사건을 의뢰했다. 그러나 그 센터에서 진정서를 써주고 혼자 노동부에 가라고 하자, 희망이 없음을 알고 발안으로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우리 센터에서는 다른 센터에서 일단 시작한 사건은 맡지 않기에 그녀를 돌려보냈다.
"H센터로 다시 가세요."
하지만 그녀는 다음 주 일요일 혼잡한 틈을 타서 다시 숨어들어왔다. 처음엔 나도 그녀를 못 알아보았지만 결국 알아보고 다시 돌려세웠다. 이때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호소한 것이다.
"나 H센터로 보내지 마세요. 거긴 통역만 해줘요."
통역만 해준다는 그 말에 난 충격을 받고 그녀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회사와 긴 싸움 끝에 그리고 평택 노동부에 한 번 출석하고 난 후 사장님과의 담판 끝에 겨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내가 욕먹을 것을 각오하고 왜 이런 얘기를 쓰느냐 하면 외국인 노동자를 제대로 도와주려면 그들의 필요에 따라줘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근로감독관앞에 같이 가주기를 바란다면 같이 가주는 것이 진정으로 돕는 것 아닌가?

노동부 아니라 법원 아니라 압류 현장에까지라도 노동자와 동행한다는 것. 바로 이런 이유 하나 때문에 이 궁벽하고 조그만 센터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려온다.

*상근 직원 : 세 명의 직원 중 한 사람이 토요일 상담을 맡는다. 토요일은 외국인도 많이 오지 않고 할랑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토요일 근무를 선호한다. 그러나 지난 토요일엔 베트남인들이 몰려와 혼자서 14건의 상담을 처리해야 했기에 토요일 근무의 이점도 사라졌다. 토요일 상담증가가 일시적 현상이길 바랄 뿐이다.

*근로감독관 앞에 : 근로감독관 앞에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인 한국인 사장님도 나와 있다. 감독관 앞에서 사장님과 대질 심문을 당한다는 것은 노동자들에겐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이때 누가 옆에 보호자로 있어만 줘도 그들에겐 큰 힘이 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