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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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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깨비

[한윤수의 '오랑캐꽃']<90>

미국 탐정 드라마의 주인공 몽크는 갖가지 공포증을 갖고 있다. 가관인 것은 그가 우유룰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몽크에 못지않게 태국 사람들 역시 갖가지 공포증을 갖고 있다. 한국인 공포, 관공서 공포, 외국어 공포 등. 하지만 태국인들이 본국에 있는 마누라를 그렇게 무서워하는지는 정말 몰랐었다.

내일 당장 귀국하는 태국 노동자 위짓이 퇴직금을 못 받았단다. 돈을 확실히 받으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므로 그에게 물었다.
"보름 후에 가도 괜찮아요?"
"예. 좋아요."
넉넉잡고 그의 비행기표를 14일 후로 연기했다.

그러나 여행사에서 귀띔해 주었는지 회사 관리이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비행기표를 연기하셨다면서요?"
"예."
"목사님, 노동부에 진정하실 필요 없는데요. 저희 회사는 악덕 기업이 아닙니다. 사실 오늘이 월급날이라 퇴직금도 오늘 주려고 했거든요."
나는 반신반의했지만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요? 그럼 임금과 퇴직금 모두 정산해 주실 거죠?"
"예, 저녁때까지 다 계산해 줄 겁니다. 내일 아침에 위짓한테 통장 찍어보라고 하세요."
"좋습니다. 계좌 이체하시고 퇴직금 정산서를 팩스로 보내주세요."
"그러죠."

나는 느긋했다. 돈이 들어오면 그때 가서 비행기표를 다시 끊어도 되니까.
그러나 한 시간도 안 되어 상황이 변했다. 밖에 나갔던 위짓이 새파래져서 들어오더니 엉뚱한 소리를 한 것이다.
"나, 내일 꼭 가야 해요."
"왜?"
"와이프가 빨리 오래요."
"돈은 받고 가야지."
"돈 필요 없어요. 그냥 갈래요."

여지껏 고생한 거 돈은 받고 가야 한다고 간신히 설득하여 위짓을 기숙사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위짓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해서, 그날만 세 번을 더 왔다. 내일 오후 5시 비행기로 꼭 가게 해달라고!
"알았어. 내일 아침 은행에 가서 통장 찍어가지고 10시까지 와."

위짓은 다음날 아침 조금 늦게 10시 15분에 나타나자마자 울상이 되어 매달렸다.
"지금 당장 비행기표 끊어줘요. 와이프한테 또 전화 왔어요. 돈 필요 없으니 빨리 오라구."
"잠간만 기다려요. 통장 확인해보구."
통장을 살펴보니 돈이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회사에서 퇴직금 계산을 잘못해서 47만원 정도가 모자라게 들어왔다. 47만원은 태국에서 큰 돈이기에 관리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시정을 요구했다.
"퇴직금을 기본급으로 계산했더라구요. 수당 포함해서 공제 전 금액으로 다시 계산해서 정산서를 팩스로 보내주세요."
다시 계산하고 팩스가 오고 가는데 10분 정도가 걸렸다. 그 10분 내내 위짓은 몸을 비비 꼬며 징징 울었다.
"돈 안 받고 그냥 갈래요. 나 은행 가서 송금하고 회사에서 가방 들고 나와야 하는데 시간이 없잖아요."
나는 소리를 질렀다.
"5시 비행기니까 시간 충분해. 조금만 참아."
태국말을 잘하는 자원봉사자 P양도 거들었다.
"30분이면 끝나요. 여기서 11시에 나가도 충분해요."
그래도 위짓은 폴짝폴짝 뛰며 아우성을 쳤다.
"비행기표 달라니까요!"

임마, 그냥 가라구! 소리가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이런 사람일수록 태국 가서 한국 사람이 돈 떼어먹었다고 딴 소리를 하니까.
관리이사가 46만 7천원을 위짓의 통장에 입금하는 동안 나는 여행사에 전화해서 비행기표를 다시 바꿔주었다. 요 시간이 약 15분. 위짓이 나타나서부터 지금까지 총 25분밖에 안 걸렸다.

시계가 10시 40분을 가리킬 때 위짓에게 소리쳤다.
"가!"
위짓이 물끼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디 가요?"
"태국 가라구!"
그제서야 위짓은 고개를 꾸벅했다. 하지만 막상 가지도 못하고 머뭇머뭇했다.
저도 멋적지!

나는 빨리 꺼지라는 뜻으로 손가락만 까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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