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한나라당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 개회요구서를 단독 제출했다. 6월 국회회기 중에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미디어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결의의 표시라는 언론의 해석이다. 조·중·동의 통과 독촉에 쫓기고 있는 인상이다. 민주당은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고 사생결단의 각오를 다짐하며 국회 농성에 들어갔다. 한국 민주주의의 생사가 걸린 아마겟돈 전투가 벌어질 태세다.
다 알려진 대로 '미디어 법'의 가장 큰 쟁점은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진출과 신문 시장을 70% 이상 점유하고 있는 조·중·동에 TV 겸영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1년 전부터 '미디어법'이 필요한 이유를 경제적 논리로 귀가 따갑도록 홍보해 왔다. 그런데 국민의 절대 다수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MB의 미디어법에 반대하고 있다.
"거대 미디어 그룹의 겸영 확대 반대가 '세계적 추세'"
왜 그런가?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미디어 다원주의의 대원칙에 위반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방송과 통신 인터넷의 기술 발달로 매체 간의 벽이 무너졌으니 소유에서도 매체 간의 벽을 허물어야 하며 이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한다. 조 중 동의 텔레비전 겸영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 분야의 경쟁이 치열해진 지금 국제 경쟁에서 한국의 방송통신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방송 진출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또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경제가 발전하고 일자리가 2만 여개 창출될 것이라고 경제논리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를 우선하고 언론을 그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미국에서도 부시 정권 때 이 논리를 가동해서 대자본의 방송 장악과 신방 겸영을 허용하려 했으나 국민의 거센 저항에 부딪쳐 수포로 돌아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바마는 미디어의 독점과 거대 미디어 기업의 겸영에 반대한다는 것을 선거운동 때 분명히 했다. 유럽에서도 겸영이 부분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범위를 인색할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겸영이 인정되고 있다는 사실만 갖고 이것을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거대 미디어 그룹의 겸영 확대를 국민이 더 이상 용인하지 않고 강하게 저항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언론 단체나 신문들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나라당 미디어 법에 대한 국민의 반대가 평균 60%를 넘고 있다. 조 중 동의 끈질긴 일방적인 겸영 지지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반대가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미디어 다원주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
왜 그런가? 첫째 한나라당은 국민의 언론자유가 걸려있는 이 중대한 문제를 밀실에서 몇 사람이 만들어 가지고 국민의 의견 수렵 과정도 거치지 않고 다수 의석만 믿고 국회에서 밀어붙이려 했다.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지못해 만든 미디어발전국민위도 국민에게 여론을 수렴하려 했다는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국민의 의견을 묻는 토론은 없었다. 왜 프랑스의 사르코지 정부처럼 석 달 동안 '언론에 관한 국민토론'을 개최하지 못하는가? 왜 국민의 생각을 알아보는 여론조사를 두려워 하는가?
재벌에 방송 진입, 방송 장악의 길을 열어주는 것도 그렇다. 이제 재벌의 경제권력이 정치권력보다 더 강한 권력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언론은 국민을 대신해서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재벌은 언론의 감시 대상이다. 그런데 이 감시 대상에게 어떻게 권력 감시의 막중한 임무를 맡기겠다는 것인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겠다는 것인가? 우리는 <중앙일보>와 삼성과의 관계를 보아왔지 않은가?
언론을 경제논리에만 맡기다 프랑스에서 양대 군수산업 소유주가 프랑스의 좌우를 대표하는 양대 신문을 직접 간접으로 지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여기에 프랑스인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아는가? 머독이 미국의 폭스 TV를 지배하고 <월스트리트 저널>을 지배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타락하고 있는지 아는가?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미국 국민이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게 된 데는 머독의 폭스 방송의 영향이 컸다는 것을 아는가?
조 중 동의 TV 겸영 문제도 그렇다. 이미 신문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 신문기업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텔레비전을 덤으로 얹어준다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강조되는 미디어 다원주의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이다. 프랑스는 2008년 7월 개정된 헌법에서 언론자유 보장 외에 미디어의 다원주의와 독립 조항을 새로 추가했다. 유럽연합은 2000년12월 새로 제정한 "유럽연합 기본권 헌장"에 미디어의 다원주의를 추가했다. 유럽 47 개국이 가입해 있는 유럽평의회는 2004년 이태리의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미디어를 독점하고 있다며 시정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미디어 다원주의는 이처럼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이다. 그러므로 현 상황에서 조 중 동에게 TV 겸영을 허용하는 것은 반민주적이다. 더구나 신뢰도가 인터넷보다 떨어지는 이들 주류 신문이 방송까지 겸영하게 될 때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어떻게 되겠는가?
'정치인-대기업-거대 언론' 유착 의심스럽다
오바마는 선거운동 시절 대기업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을 장악할 때 아주 쉽게 권력화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오바마는 미디어가 언론자유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 논리만으로 미디어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만약 소수의 언론기업이 '국민이 무엇을 보고 들을 것인지'를 통제할 힘을 갖게 된다면 이 (미디어)기업들은 뉴스가 보도되지 못하도록 막거나 뉴스를 과장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이것은 개인이나 기업이 여론을 조종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된다고 그 위험성을 경계했다. 보수주의 시장주의 이념을 공유하는 대기업과 보수 언론이 언론을 지배하면 국민의 사고방식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세뇌가 가능할 수도 있다. 거대 보수 언론이 선거 결과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도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체험한 바다.
미국에서 국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재벌의 소유 제한을 완화하고 겸영을 허용하는 법 개정이 성공하는 예들이 발생한다. 미디어 산업에서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바치고 로비를 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정치자금의 유혹에 넘어가 국민을 위해 행사해야 할 입법권을 소수 언론재벌의 이익을 위해 남용한 결과다. 부패 정치인들 때문에 국민의 이익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발의 과정을 보면 한국에서도 정치인과 대기업, 정치인과 거대 미디어의 유착 내지 뒷거래 의혹을 품게 된다. 경제 권력과 언론권력의 유착에도 의심이 간다. 두 권력이 유착하면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과 조 중 동이 표방하는 보수 신자유주의는 미화되고 여론 다양성은 크게 위축될 위험이 크다. 민주주의가 그만큼 후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기업의 미디어 지배를 반대한다. 우리 뿐 아니라 민주국가에서는 어디서나 대기업의 언론 장악을 반대한다. 세계적으로 대기업의 미디어 지배와 거대 미디어의 겸영을 찬성하는 언론학자가 몇 사람이나 있는지 한번 찾아보라.
(☞관련 기사 : "이명박 정부는 진정한 '글로벌 스탠더드'"?)
※연재 '미디어악법 물렀거라'는 <프레시안>과 언론광장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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