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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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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2호

[한윤수의 '오랑캐꽃']<76>

수원이나 안산 같은 큰 도시에서는 통역을 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지인 발안에 위치한 우리 센터에서는 통역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베트남의 명문대학인 호치민대 한국어과를 나오고 한국으로 유학 와서 중앙대 경제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유능한 통역, 요안이 임신으로 퇴직하자, 당장에 베트남 통역을 구하는 문제가 큰 일이 되었다. 처음에는 요안에게 후배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중앙대에 다니는 베트남 후배 여럿에게 권해 보았으나 모두 다 거절당했다. 그녀가 이렇게 전화했으니까.
"발안은 너무 멀어서 싫다는데요."
"그래요? 그럼 남편 학교에 부탁해보셨나요? 거기도 공부 잘하는 베트남 학생 많잖아요."
그녀의 남편은 수원에 위치한 성균관대 자연캠퍼스에서 물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이과(理科) 학생들은 한국말 못해요. 거긴 영어로 수업하거든요."

나는 여러 루트를 통해서 수원에 있는 다른 대학의 학생들을 물색해 보았으나 그것도 수포로 돌아갔다. 아주대에 한국말 잘하는 베트남 여학생이 하나 있긴 하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기관의 통역으로 일하고 있었다.

▲ ⓒ한윤수

이제는 인테리 대학생을 구하리라는 욕심을 버리고 눈높이를 현저히 낮출 필요가 있었다. 학력 수준은 낮아도 한국에 시집온 여성 중에서 고르는 수밖에! 시집 온 지 7, 8년 된 사람 중에는 한국말 잘하는 사람도 간혹 있으니까.

나는 수원에 있는 인맥을 총동원하여 한국말 잘한다는 베트남 여성 두 사람과 접촉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한국말을 그다지 잘하지 못하면서도 근무지가 발안이라는 소리에는 꽁무니를 뺐다.
"우리 애기가 아직 어려서요."

나는 거의 자포자기가 되어 아무나 붙잡고 미친놈처럼 씨부렁거렸다.
"혹시 한국말 잘하는 베트남 사람 없어요?"
내 꼴을 보다 못해 태국인 통역 와라펀이 나섰다.
"오산 우리 동네에 한국말 잘 하는 새댁이 있는데요. 애기가 너무 어려서 아마 못 올 걸요."
"얼마나 어린데요?"
"5개월쯤?"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한 번 얘기해 봐요. 일당 7만원씩 준다고 하고."
"그러죠 뭐."

이렇게 해서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짱띠짱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한심했다. 왜냐하면 홀몸이 아니라 생후 6개월된 갓난아기와 그 아기를 돌봐줄 *오빠와 함께 왔으니까. 도대체 젖도 안 뗀 핏덩어리를 데리고 어떻게 험한 노동자센터 통역일을 하겠다는 것인가? 더구나 그녀는 한국에 온 지 1년여 밖에 안된 초짜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는 한국어에 천부적인 재질이 있다는 게 드러났다. 그녀는 첫날부터 조금 지각했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으니까.
"시외버스 배차 간격이 떠서 좀 늦었어요."

<배차 간격이 떠서>라니! 그녀는 10년 된 베트남 사람도 쓰지 못하는 고급 문장과 어휘를 종횡무진 구사했다. 1년 밖에 안된 초짜가 10년 된 사람보다 낫다니. 내가 베트남 유명 대학의 한국어과 학생을 많이 알지만 그녀보다 한국말 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더구나 그녀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나온 요안보다도 실력이 나으니 말해 무엇하랴.

그뿐이 아니었다. 그녀는 대학 나온 인테리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몸을 던져 일하는 헌신성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그야말로 몸 부쳐 일했다. 또한 얼마나 몸이 날랜지 노동자와 상담자, 서류와 서류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 돌아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도와주었다. 그녀는 물처럼 녹아들어가 마치 존재가 없는 것처럼 움직이는데도 센터는 아연 활기를 띠고 살아 숨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성가(聲價)를 결정적으로 높여준 것은 상담일지 사건이다.

상담일지는 노동자 개인에 관한 모든 정보가 날짜별로 수록된 문서로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초 자료다. 우리 센터는 외국인 노동자 약 3,000명의 상담일지를 국가별, 날짜별로 정리해 갖고 있는데 이것을 보물 1호로 친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아주 중요한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유와디라는 태국인의 상담일지를 찾지 못해 난리가 났다. 직원 둘과 태국인 통역 둘, 모두 네 사람이 동원되어 상담일지를 찾았다. 그러나 일지철에도 서류장에도 책상 위에도 서랍 속에서도 그건 나오지 않았다. 상담일지가 안 나오면 상담이 안 되고, 상담이 안 되면 센터 일이 도무지 진행이 되지 않는데, 거의 반 시간을 찾아도 나오지 않아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내가 인내심이 고갈되어
"컴퓨터에 외국인 등록번호만 입력하면 다 나오는데, 왜 안 나와?"
하고 짜증을 낼 때 짱이 눈을 반짝이며 서류를 내밀었다.
"혹시 이거 아니에요?"
내가 놀래서
"어떻게 찾았어요?"
"2008년 태국 5번째 상담일지철이 맞긴 맞는데요. 다른 사람 화일에 끼어 있었어요."
기막혔다. 노련한 직원도, 태국 통역도 못찾는 태국인의 상담일지를, 아무 관련도 없는 베트남 통역이 찾아내다니!
그 후 나는 짱을 우리 *센터의 보물 2호로 친다.

*오빠 : 짱의 오빠 투엔은 우리 센터 근처의 공장에 근무하는 정규 노동자다.

*센터의 보물 2호 : 안타깝지만 현재 우리 센터는 재정 형편이 어려워 짱을 고용하지 못하고 베트남 말을 조금 하는 직원이 통역을 겸하고 있다. 물론 짱이 없으면 베트남 노동자들이 불편해 하지만 현재로선 어쩔 수 없다. 머지않은 장래에 다시 고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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