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발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뜻에 따라 주말 이후로 연기됐지만 정부의 강행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가운데 정부가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쐈기 때문에 PSI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있어 국민을 우롱한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인공위성 발사 후 등장한 주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16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로켓을 쏘니 거기에 발맞춰 PSI에 참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PSI 참여 발표 연기의 이유를 설명했다.
외교통상부가 15일 배포한 'PSI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라는 자료에도 "북한을 겨냥한 압박수단으로 PSI에 가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WMD(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범세계적인 움직임에 동참하려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 같은 논리는 이 대통령이 북한의 로켓 발사 다음날인 지난 6일 3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부터 나왔다. 이 대통령은 당시 "PSI 문제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는 관계없이 WMD 확산 방지, 테러 방지라는 국제적 협력의 틀 차원에서 검토할 일"이라고 말했다.
명백한 말 바꾸기
하지만 로켓 발사 전 고위당국자들의 발언을 되짚어 보면 정부의 말이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비확산 문제가 부각되니 PSI 전면 참여 문제를 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었다.
권종락 외교부 차관도 지난 3일 국회에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시에 PSI에 전면 참여하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냐"는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러한 발언들을 일일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PSI 참여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한국의 독자적 대응이라는 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장거리 로켓은 대량살상무기의 운반수단으로 PSI의 핵심 타깃이기 때문이다.
PSI 전면 참여 발표가 로켓 발사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면 로켓 발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 채택, 북한의 6자회담 불참 및 핵 개발 재개 선언 등으로 흉흉하기 이를 데 없는 한반도 정세에서 왜 굳이 지금 그걸 하려는지 설명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PSI와 로켓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국민 기만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남북관계와 무관하다면서 발표는 왜 미뤘나
PSI가 남북관계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에 불과하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1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PSI는 사실상 알려진 거와는 달리 남북간에 실질적인 그런 영향은 별로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PSI 발표일을 로켓 발사(5일) 직후로 잡았다가 유엔 안보리 대응(14일) 이후로 바꿨고, 또 다시 주말께로 연기한 것은 남북관계의 현안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PSI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PSI의 태동 자체가 북한을 겨냥한 것이었고, 북한이 'PSI는 선전포고'라고 규정했다는 사실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남북관계에 미칠 위험성을 정부가 '친절하게' 확인해 준 것이다.
이는 또한 PSI 발표에 따라 남북관계 각종 현안이 악화될 가능성에 대해 정부가 크게 신경 쓰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북한에게 속내를 읽혀 약점을 잡혔다는 것이다.
따라서 PSI 참여가 실제 발표될 경우 북한은 PSI를 빌미로 군 통신선 차단이나 개성공단 통행 차단, 서해 등에서의 군사적 도발, 남북해운합의서 무효화 등 각종 긴장고조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PSI는 보편적 국제규범'이라고 했기 때문에 PSI에 담근 발을 다시 뺄 수도 없는 한국으로서는 그 같은 파국 상황에서 군사적인 대응을 하는 것 외에 어떠한 상황 관리 능력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청와대-통일부-외교부 혼선은 빙산의 일각?
PSI가 북한의 로켓 발사 혹은 남북관계와 무관하다는 것 말고도 PSI를 둘러싼 정부의 주장에는 오류와 허점이 여럿 지적된다.
또한 PSI 발표 연기를 두고 15~16일 나타난 정부 내 극심한 혼란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발표 때까지, 그리고 그 후로도 남북관계의 살아있는 현안들이 변수로 작용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갈팡질팡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거기에 네오콘이 만든 PSI를 그대로 쓰길 거부하며 '제도화'를 주장하는 오바마 미 행정부의 견제가 들어오고 중국의 불만까지 가세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일 수 있다.
MB 외교가 쌓아 온 각종 모순이 PSI를 계기로 대폭발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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