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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한윤수의 '오랑캐꽃']<62>

스리랑카 노동자 디네쉬는 갑자기 귀국을 서두르게 되었다. 결혼식 날짜를 잡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밀린 돈을 안 줄까봐 걱정하자, 경리담당자가 안심시켰다.
"디네쉬 몫으로 350만원 정도 준비해놓았으니 걱정 마."

하지만 그는 뭔가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서 센터를 찾아왔다. 출국 바로 이틀 전에! 그의 출현과 동시에 그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 사모님한테서도 청탁 전화가 왔다.
"우리 디네쉬 잘 좀 부탁합니다."
부탁하나 안하나 마찬가지인데! 하면서도 나는 싹싹하게 대답했다.
"예. 알았습니다."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3백만원만 주겠다고 하셨다면서요?"
경리담당자는 황당해 했다.
"참 이상하네요 그런 얘기한 적 없는데요.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350만원 다 준비 해놓았다고 얘기했는데."

▲ ⓒ프레시안

일부 스리랑카 사람들은 객관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아주 주관적인데다가 한번 박힌 생각이 고집불통처럼 바뀌지 않아서 뭇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수가 있다.
나는 당황해서 얼른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그럼 퇴직금 산정 내역서를 보내주세요."
회사 경리담당자와 그날 하루 여러 번 통화하고 팩스도 여러 차례 주고받아서 다음날 오후까지 377만원을 받게 해주었다. 통장에 돈이 들어온 것을 축하하여 우리 직원 모두 디네쉬에게 박수를 쳐주기까지 했다.

다만 그 후 한 가지 작은 문제가 발생한 것을 알았는데, 그것은 경리담당자가 *공제 안할 것을 잘못 공제하는 바람에 49만원 정도를 덜 받은 것이었다. 그녀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미숙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실수로 돈을 다 지급하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했고 또 그래서 양해를 구했다.
"회사 사정도 어렵지만요. 솔직히 이 문제로 다시 한 번 사장님 결재를 받아야 하니까요. 죄송한데요 제 입장도 있으니까, 다음 주 월요일까지 엿새만 기다려주시면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디네쉬의 외화송금전용계좌를 만들어놓을 테니까 거기로 넣어주세요."

나는 싹싹하게 대답하고 디네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나머진 엿새 후에 준다니까 그때 받을래요?"
그러자 디네쉬가 인상을 팍 쓰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다 거짓말이야!"

나는 놀라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여 디네쉬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노동자가 회사를 이 정도로 불신하면서 어떻게 한 지붕 밑에서 근무했단 말인가? 내가 조근조근 말했다.
"나 지금 너무 마음이 아파."
"왜요?"
"디네쉬가 다 거짓말이라고 하니까."
"옛날에 사장님이 내일 내일 하며 돈 안 줬거든요."
"옛날에 돈 못 준 건 미안하지만, 내가 보기엔 사장님 돈 없어서 못 준 거에요. 알아요?"
"알았어요."
"디네쉬 여기 언제 왔어요?"
"어제요."
"돈 언제 받았어요?"
"오늘요."
"그럼 그 회사 좋은 회사에요!"
"예."
"근데 왜 다 거짓말이라구 해요?"
디네쉬는 비로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디네쉬가 다 거짓말이야 하면 우리 마음 아파요. 사장님 나쁜 사람 아니에요. 내가 보기엔 좋은 사람이에요. 돈이 없을 뿐이지."
"예."
"만일 사장님이 돈 안 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예?"
"우리가 안 도와주면 디네쉬 돈 받기 힘들어요. 알아요?"
"예. 죄송합니다."
"좋아요. 알았으면 되었어요"

나는 그를 단단히 야단쳤고 그는 기합이 바짝 들어 눈이 똥그래졌다. 아마도 그는 "다 거짓말이야!"하면 내가 동조해주리라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얘기다. 나도 한국 사람이라는 걸 그는 잠시 잊은 게 아닐까? 정말 기분은 꿀꿀했다. 왜 이런 기분이 있지 않은가. 나는 한국 사람을 욕해도 막상 외국인이 한국 사람을 욕하면 서운한 것을! 더구나 선의를 가지고 있는 사장을 욕하는 건 말이 안되는 게 아닌가.

나는 그에게 외화송금전용계좌를 만들어주고는 그를 다시 안심시켰다.
"내일 갈 거죠?"
"예. 일주일 후 결혼하거든요."
"결혼 축하해요. 그리고 아마도 *결혼식 하기 전에 49만원 외화송금계좌로 보내줄 거예요."
"예. 고맙습니다."
직원들이 떠나는 그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덕담을 던졌다.
"가서 잘 살아요."
"굿 럭!"
"복 많이 받아요."
의심 많던 디네쉬! 결혼해서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공제 안할 것을 잘못 공제 : 경리사원이 없는 영세기업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 월급에서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을 다달이 공제해야 하는데, 귀찮으니까 공제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퇴직금에서 한꺼번에 공제하려니까 계산 착오가 생긴다. 그 회사는 국민연금 49만원을 잘못 공제했다.

*결혼식 하기 전에 49만원 : 실제로는 사장님 결재가 더 늦어져, 결혼식 치르고 7일이 지나서야 회사에서 디네쉬에게 49만원을 송금하고 그 입금증을 우리에게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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