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여성 노파랏은 경기도 파주에서 일했는데 퇴직금 151만원을 받지 못했다. 회사측에서는 공짜로 밥을 먹여주었기 때문에 퇴직금을 안 줘도 된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밥으로 다 주었다!>는 것은 퇴직금을 떼어먹는 고전적인 수법인데, 화성에서는 이런 무지막지한 수법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고양 노동부로 가는 날, 노파랏과 함께 우리 센터에서 상담실장과 자원봉사자 한 분이 일산까지 동행하고, 태국인 통역은 전화통역을 해주려고 집에서 비상 대기했다.
그러나 노파랏은 사장을 보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사장이
"밥을 공짜로 줬으니, 퇴직금 안 받아도 된다고 니가 싸인했잖아."
하자 고개를 끄덕였고
"안 받아도 되지?"
하니까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으니까.
근로감독관 또한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글쎄요. 퇴직금 안 받아도 된다고 여기 싸인했네요."
U실장은 펄쩍 뛰었다.
"퇴직금은 어떤 명목으로든 *상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시잖아요. 분명히 말합니다. 퇴직금을 주세요."
사장은 상계 처리한 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시인했다.
"퇴직금은 줄게요. 그렇지만 우리가 공짜로 준 밥값은 어떻게 받나요?"
U실장은 당당히 말했다.
"그렇게 밥을 준 게 억울하면 민사소송을 하세요."
U실장은 사장이 민사소송을 하지 못하리라는 것과 소송을 해도 패하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느 판사가 <밥값 = 퇴직금>이라고 인정해주랴?
U실장은 발안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노파랏에게 주의를 주었다.
"노파랏 돈 받아주려고 여러 사람이 욕먹고 애쓰는데, 왜 노파랏은 돈을 안 받아도 되는 것처럼 얘기해? 우리 답답해."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며칠 후 노파랏한테서 전화가 왔다.
"파주 사장님이 여기 우리 공장에 와 있어요. 돈 보여주며 나한테 싸인하래요."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절 대 싸 인 하 지 마. 싸인하면 돈 못받아. 그리고 옆에 한국 사람 있으면 바꿔줘요."
노파랏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부장을 바꿔주었다. 나는 간절히 부탁했다.
"부장님, 노파랏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싸인하면 안된다고 전해주세요."
"만약에 싸인하면 돈 못받나요?"
"당연하죠."
"그럼 싸인하면 안되겠네요."
"그렇죠."
그리고선 통화가 끊겼다. 나는 그래도 안심이 안되어 태국인 통역에게 전화했다. 통역은 금방 알아들었다.
"예, 노파랏이 싸인 못하게 할 게요."
그러나 조금 있다 태국인 통역이 다급하게 전화했다.
"목사님, 노파랏이 벌써 싸인했다는데요."
"그래요? 그럼 151만원 받았대요?"
"아뇨. 안 받았대요."
"그럼 왜 싸인했대요?"
"태국 *친구가 싸인해도 된다고 해서 싸인했대요."
허탈했다. 노파랏의 돈 151만원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노파랏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야, 이름 참 좋다! 라고 생각했었다. "팔지 마랏!"이란 이미지가 떠올랐으니까. 노파랏 = 노(NO) 팔아 = 팔지 마라 = 팔지 마랏! 무엇을? 자유를! 영혼을!
하지만 그녀는 자기 이름과는 반대로 윗사람이 무서워서 자기가 일한 대가를 팔아먹은 것이었다. 나아가서는 자유를! 영혼을! 그리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상계(相計) 처리 : 받을 돈과 줄 돈을 까부시는 것. 퇴직금과 식대를 상계 처리하는 것은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는 회사들이 2007년까지 흔히 쓰던 수법이다. 우리 센터는 이 수법을 쓰는 회사들을 상대로 소송해서 모두 승소했다.
*친구가 싸인해도 된다고 해서 : 태국인들은 흔히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 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변명은 첫째가 "몰라요."이고 두 번째가 "친구가 하라고 해서" 세 번째가 "사장님이 무서워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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