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공장장이 쇠파이프를 들고 나타나자 태국인 미차이와 마눈은 컨테이너 기숙사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 공장장은 쇠파이프로 기숙사 유리창을 깨고는 문을 부서져라 두들겼다.
"문 열어. 이 새끼들."
태국인들이 숨을 죽이자, 공장장은 커다란 망치로 도어록을 부수고 들어왔다. 그는 특히 미차이를 미워해서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태국 가! 이 새끼야."
미차이는 가까스로 뿌리치고 친구네 기숙사로 도망쳤다. 공장장은 친구네 기숙사까지 따라왔지만 안에 사람이 많은 걸 보고는 욕만 퍼부을 뿐, 차마 들어오지는 않았다. 미차이는 무에타이로 단련한 몸이지만 매번 굴욕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 미차이(왼쪽)와 미눈 |
다음날 아침 미차이와 마눈은 나를 찾아왔다.
"무서워서 한국 못 있겠어요. 태국 갈래요."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을 설득하려고 들었다.
"사장님한테 얘기해서 회사 바꿔줄 테니 다른 회사로 가요."
그러나 한국을 떠나겠다는 그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한국 싫어요. 태국으로 보내주세요."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사장님은 공장장을 두둔했다.
"술주정은 잘못이지만, 태국 걔네들이 회식에 참석 안해서 그랬을 거에요. 행사에는 협조해야 하는데."
"참석치 않겠다고 사전에 얘기했다면서요. 그리고 술주정이 무서워서 어디 회식 자리에 나가겠어요?"
사장님은 공장장의 횡포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어찌 얘기할 수 있으랴.
어쨌든 이제 문제는 태국인들의 임금과 퇴직금을 어느 시점에서 정리해주느냐에 달려 있었다. 태국인들은 그날부터 일을 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나 사장님은 시간을 질질 끌었다. 내일 내일 또 내일 하며 미룬 것이 벌써 보름이 넘었다. 두 사람은 기다리다 지쳐서 보름새에 늙은 것 같았다.
미차이의 출국이 내일 모레인지라,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사장에게 마지막으로 전화했다.
"태국으로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
"이미 법적인 절차를 밟았으니 그리 아세요."
사장님이 물었다.
"그러면 노동부에 가야 하나요?"
"물론이죠."
"오늘 중이라도 돈 주면 노동부에 안 가도 되죠?"
"그럼요!"
그날 당장 두 사람의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다.
웬 우유?
두 사람은 1리터짜리 우유 4팩, 녹차 2팩, 요구르트 3줄, 콜라 대짜 2병, 종이컵 1줄, 커피 한 봉지, 담배 1갑, 뜬금없이 제사 때는 쓰지만, 우리는 이제 절대로 먹지 않는 유과 한 줄, 깨옥춘 두 덩어리를 사왔다. 술 냄새를 팍팍 풍기며.
그들은 일일이 직원들과 악수하고 떠났다.
"오필승 어쩌구!"란 말을 남긴 채.
내가 물었다.
"<오 필승 코리아>래?"
직원이 대답했다.
"아뇨. <오피스 남버원>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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