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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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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떡

[한윤수의 '오랑캐꽃']<30>

추석이나 설 연휴의 발안 시내는 외국인들이 점령한다. 상점들이 대부분 철시하고 한국인들이 고향으로 떠나고 난 그 빈 자리를 여러 공단에 흩어져 있던 외국인들이 몰려와 메우는 것이다.

"볼 만하지요. 한국사람 하나 없으니까."
재작년 추석 며칠 전, 24시 마트를 운영하는 발안 토박이 S씨가 명절 거리 풍경을 묘사할 때만 해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추석 당일 센터에서 내려다보고 그 말을 실감했다. 그것은 서서히 움직이는 검고 붉고 누런 외국인의 물결이었다.

"실컷 상담이나 해야지."
나는 큰 기대를 갖고 사무실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들은 상담을 받으러 센터에 올라오지 않았다. 상담이니 고민이니 다 귀찮으니까 이 시간만큼은 싹 잊어버리고 연휴를 순수히 즐기는 중이었다. 한 잔 술을 걸쳐 불콰해진 얼굴로 도도히 떼를 지어 발안 시내를 휩쓸고 다닐 뿐!

심지어 그들은 내 식사 초대에도 응하지 않았다. 평소에 도움을 주고 친하게 지낸 외국인 몇 사람에게 그날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으나 그들은 갖가지 이유로 사양한 것이다.
"서울 모임에 가야 되요." "안산에 가서 친구 만나야 하거든요."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외국인들은 동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유를 누리는 당당한 노동자라는 것을, 그들이 필요할 때 조금만 도우면 되는 자주적인 존재라는 것을!
그 후 나는 추석이나 설 연휴에는 아무 행사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센터 문을 닫는다.

추석이나 설 연휴에 정작 문제되는 것은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 직원들이다. 명절이 닥칠 때마다 직원들에게 보너스는커녕 떡값도 줄 수 없다는 현실이 괴롭다. 아무리 희생정신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떡값 몇 만원도 못 주는 직장 그만둔다고 할까봐 내심으로는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금년 설에는 나를 살려주는 일이 일어났다. 충북 청원에 사는 친구가 쌀 40Kg을 부쳐온 것이다.
"웬 쌀이냐?"
하고 묻자 그는
"누가 농사지은 쌀 한 가마니를 부쳐 왔는데 나 반 먹구, 너 반 먹으라구."
하고 대답했다.

충청도 멀리서 발안에까지 마음 써주는 게 너무나 고마웠다.
좋고요, 그럼 어떻게 나누나?
상근 직원 세 명에 마침 그날은 실습생도 나와 있고 자원봉사자도 나와 있는데다가 현관의 *조개 아줌마며 1층 *옷가게도 줘야 하니 10등분은 해야 할 터인데, 각자 쌀 4Kg씩 담아가면 볼품도 없고 초라할 것 같아서, 아는 떡집에다 부탁해서 몽땅 가래떡을 만들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떡을 열 사람에게 한 박스씩 담아주니 얼마나 좋은지 마음이 흐뭇했다.

*조개 아줌마 : 현관 앞에서 조개를 까서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 초창기 센터를 지킨 일등 공신이다. 당시는 필자 혼자 일했는데, 노동부에 가느라 필자가 출타 중이면 그녀가 찾아온 외국인들을 가로막고 서서 "있다 와. 지금 아무도 없어."하고 알려주고, 내가 돌아오면 "필리핀 다섯 명 왔다 갔어."하는 식으로 보고를 했다.

*옷가게 : 센터 1층의 옷가게 주인. 얼마나 성실한지 건물주가 신임해서 15년간 한 번도 임대료를 올리지 않았다. 또한 그는 건물주에게 말해서 <센터가 좋은 일 하니까> 월 70만원의 임대료를 50만원으로 깎아주도록 만든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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