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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나갈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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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나갈 방향"

[남재희 칼럼] 뉴라이트의 제기와 개혁적·진보적인 응답

마침 금년이 죽산 조봉암 선생이 법살(法殺)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 7월 31일이 기일이며 묘지는 망우리 산정에 있다. 압제하에서 '도깨비 같은 그림자들'인 경찰의 감시 속 쉬쉬하며 매장한 곳이 지금 생각하면 한강과 강동구를 굽어보는 오히려 명당이라 할 수 있다. 젊은 신경림 씨는 장례 당시의 공포분위기를 묘사하는 실감나는 시를 썼엇다. <그날>(시집 <농무>에 수록)이라는 제목의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젊은 여자가 혼자서 / 상여 뒤를 따르며 운다/ 만장도 요령도 없는 장열/……"

최근 추모 사업을 하는 일로 유족 대표인 죽산의 따님 조호정 여사, 그리고 진보당의 청년 학생조직인 여명회의 조직책임을 맡았던 김용기 고려대 명예교수와 만나 협의를 하면서 지난날의 진보계 인사들을 한번 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진보당계는 물론이고, 몽양(여운형)계는, 우사(김규식)계는 … 하고 생존인물을 살펴 본 것이다. 별로 생존해 있지 않은 것 같다.

▲ 공판정에 앉아 있는 죽산 조봉암 선생.

얼마 전 <조선일보>(1·13)에 뉴라이트운동의 이론적 기둥의 한 사람인 안병직 교수의 인터뷰가 실려 읽어 보았다. 거기서 안 교수는 "진보적 지식인이 한국 사회가 나갈 방향을 명확히 제시 못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어떤 면 수긍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정치 이념으로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다"고 한 것을 읽고는 요즘 같은 진보파에 대한 우파의 매카시즘적 매도의 분위기에서는 그래도 다행스럽게 폭을 가진 태도라고 생각되면서도, 그가 그런 말을 안 해도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새삼 듣게 되는구나 하고 고소를 금치 못했다.

흔히 진보적 지식인, 또는 진보적 세력이라고 할 때 우선 크게 나누어 두 가닥이 있다. 하나는 DJ·MH를 이은 민주당에 의해 대표되는 개혁세력(점진적·온건·수정주의·상대적 등등 여러 수식어가 붙을 수 있다)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에 의해 대표되는 혁신세력(급진적·과격·변혁적·가치관이 상이한 등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을 수 있다).

안 교수가 한국사회가 나갈 방향이란 정책구상을 문제 삼은 것은 아마 특히 후자의 경우라고 여겨진다. 전자의 경우는 DJ·MH시대를 거치면서 잘했든 못했든 간에 정권을 담당하였고 통치를 하였기 때문이다.

안 교수의 말에 일단 수긍한 것은 그 세력들이 집권 청사진을 그리는 데는 소홀한 데가 있고, 청사진까지는 그리지 못할 망정 "우리가 집권했을 경우는…"하고 가상하고 문제를 책임있게 생각해 보는 데도 등한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럴 수밖에 없다고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 세력들은 항의하는 세력이다. 항의하는 세력에게 집권 청사진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주문으로 보일 것이다. 전날에 박정희씨의 공화당 세력이 야당 측에 대해 걸핏하면 대안을 요구하는 역공을 폈었다. 그 때 야당의 윤보선씨는 "NO라고 말하는 것도 대안이다"라는 논리로 받아쳤었다. 그렇다. 때로는 "아니다" "잘못이다"라는 거부나 항의가 대안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은 지금 항의 정당의 차원에 있는 것이다. 엄청나게 힘든 노력과 과정을 거쳐 원내교섭단체 수준에 이르는 것이 당면해서의 목표일 것이다. 만약에 원내교섭단체 정도에 이르면 그때는 집권 청사진을 자연히 제시하게 될 줄 안다. 물론 그 전이라도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뉴라이트운동의 또 하나의 이론적 기둥인 박세일 교수가 있다. 혹시 본인은 선진화 보수이지 뉴라이트는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 박 교수가 또한 큰 덩어리의 지지층을 갖고 있다. 최근에 한 토론회에서 그를 지지하는 한 교수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헌정>1월호)

"…한국 보수 세력은 한반도 선진화 재단을 이끌고 있는 박세일 교수의 '한반도 선진화 혁명 : 철학과 전략'에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박세일 교수가 제안하는 1인당 소득 3만불(항아리형) 경제를 위한 '경제선진화', 군자와 교양인의 사회를 위한 '사회적 선진화', 다문화 공동사회의 '문화적 선진화'로 가기 위한 전략과 공동체 자유주의에 대한 이념과 철학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그럴듯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왜 쉽게 납득할 수가 없는지. 거기에는 우선 다급한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나 비판이 빠져있고 좋고 좋은 이야기만 골라서 나열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진화'는 어떠한 알맹이의 선진화인가가 문제이지 '선진화' 운운하는 구호가 마법의 지팡이일 수는 없다. '공동체 자유주의'도 말은 그럴듯하고 또 그게 가능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쉽게 접이 붙을 이야기일 것인가.

차라리(<국회보>1월호)에 나온 조순 전 부총리의 글이 와 닿는다.

"경제 발전 초기에 있어서는 성장이 강조되는 것이 보통이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서, 성장과 복지의 구별이 흐려진다. 고용을 증대 시키는 교육, 의료 등의 서비스를 확충하는 정책은 성장정책인 동시에 복지정책이다. 빈곤층, 노인, 장애자 등의 생존을 돌보는 정책은 현대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복지정책이다. 이것이 없다면 성장의 보람이 없다."

"지금까지의 IMF식 패러다임-자유화, 개방화, 민영화, 작은 정부-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성장촉진을 도모한다면, 위기는 반복될 것이다."

" 새로운 패러다임은 GDP의 숫자보다는 인간을 중요시하는 인본주의적인 시각을 주요시 해야한다."

정운찬 교수의 말도 들어볼 만하다.(1월 13일자 여러 신문 보도) <한국일보> 보도에서 몇 구절 인용해보면…


"정부가 추진 중인 녹색 뉴딜 정책에 대해서는 '뉴딜에서 흔히 치수사업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1930년대 미국의 뉴딜도 단순한 사회간접자본(SOC)투자가 아니라 금융규제 사회 안전망 확충 등 경제운용의 패러다임 변화를 동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정부의 녹색 뉴딜은 아직까지 새로운 패러다임이 보이지 않는다'며 '기초연구개발, 사회안전망 투자 등 SOC말고도 시급한 공공 프로젝트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위기의 근본 해결을 위해서는 오랜 경제적 불균형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며 '이런 관점에서 현재 국내에서 진행 중인 각종 규제완화, 특히 '금융위기 직전의 미국식 시장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용한 김에 장하준 교수의 인터뷰(<서울신문>1.15)를 더 소개해보자.

"우리 상황에서의 좌파는 적절한 공공정책을 통해서 최대한 대다수가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진보진영이 노력해야 할 것은 첫째 복지국가 건설, 둘째 생산적 투자와 일자리 증가, 세 번째로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더 큰 변혁을 바라는 분은 '그게 무슨 소리냐, 자본주의를 부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그건 현실적이거나 바람직한 대안이 아닙니다."

이상의 많은 인용들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들의 윤곽은 거의 드러났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른바 '워싱턴 콘센서스'냐 '유럽 사회 모델'이냐는 것이고, 하이에크, 프리드만이냐 네오·케인지언들 그리고 스티글리츠냐 하는 이야기이다. 현실을 '기업주의적 의제(corporate agenda)'로 접근하느냐, '인간중심적 의제(human agenda)'로 접근하느냐의 차이로 보기도 한다.

다시 죽산 50주기 문제로 돌아가 보자. 죽산의 정책노선에 대해 사회민주주의(또는 민주사회주의) 운운의 레텔을 붙여 설명하는 논문이나 책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사회민주주의 운운의 레텔은 진보당 태동 당시 이론을 제공했던 동경제국대학 출신의 정치학자 이동화, 신도성 교수의 작품일 뿐이라는 측근 참모였던 이영근씨의 반론도 있었다. 죽산이 내걸었던 것은 간단했다. '평화통일'과 '수탈 없는 경제'. 그때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그 두 가지가 얼마나 진보적이었나 짐작해 볼 일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는 죽산이 무고하게 법살당한 것으로 판명이 되고 결정이 났지만, 그리고 정부가 사과하고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 했지만, 그 문제의 재심은 아직도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고, 특검검사를 지낸 최병모 변호사가 맡아 노력하고 있다. 부지하세월이 아니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조호정 여사도 이제 노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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