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위치안의 선택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위치안의 선택

[한윤수의 '오랑캐꽃']<19>

상담하러 온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확한 상담을 위해서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부분까지 눈치로 때려잡아야 한다. 이것이 기술이다.

위치안과 리안은 태국인이다. 그들은 본사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다가 그 하청업체가 망하는 바람에 졸지에 본사의 직원이 되었다. 하청업체를 인수한 본사 사장님의 특별 배려였다. 그들로서는 전화위복(轉禍爲福), 오히려 더 잘된 케이스가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한 업체에서 다른 업체로 수평 이동한 것처럼 얘기했다. 상담자가 이 점을 캐치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만일 정확한 사실을 알았더라면
"단돈 몇 푼 때문에 사장님과의 좋은 관계를 망치지 말아요."
라고 권고를 했을 텐데!

그들은 하청업체에서 퇴직금을 받긴 받았다. 하지만 이후 조그만 문제가 생겼다. 작년 9월 태국으로 출국할 때 본사에서 근무한 기간이 1년이 안되어 본사에서는 퇴직금을 받지 못한 것이다. 만일 하청업체와 본사의 근무기간을 합산한다면 퇴직금을 35만원 정도 더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한 달 후 재입국하여 다시 성남에 있는 본사에서 근무했다. 그러다가 멀리 발안까지 찾아왔다. 퇴직금을 더 받아달라고.

사실이지, 현재 근무하는 회사를 상대로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면 자칫 난처한 입장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현명한 노동자라면 으레 퇴직하고 나서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괜찮다며 돈을 더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요게 참 미묘한 문제였지만, 그건 노동자의 선택사항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노동자가 요구하면 들어주는 것이 원칙이라 진정서를 써주었다.

이제 쟁점은 하청업체와 본사가 이어진 것으로 보느냐? 별개의 회사로 보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에 따라 퇴직금 액수가 달라지니까.

성남고용지원센터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고용지원센터 직원은 기록을 검토해보고 말했다.

"두 회사는 정분처리 되었군요."
"정분 처리라니요?"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에 따라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두 회사를 동일한 회사로 보고 퇴직금 35만원씩을 더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사장님이 펄펄 뛰었다.
"좋아. 법이 그렇다면 돈을 더 주지. 하지만 회사를 상대로 진정서를 쓴 놈들은 우리 회사에선 쓸 수 없어. 너희들 돈 줄 테니 당장 나가!"

위치안과 리안은 당황했다. 그 회사는 월급이 상당히 좋았으니까. 솔직히 이보다 나은 회사는 찾기 어려웠다. 아무리 시간외 수당을 포함한다 해도 160만원 가까이 주는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위치안과 리안은 나에게 전화했다.
"목사님, 사장님이 돈 받고 나가래요! 돈 안 받으면 계속 일하구요."
"그래, 어떻게 하고 싶어요?"
"돈 안 받고 일할래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위치안과 리안은 35만원을 포기했다.
그들은 돈 대신 회사를 선택한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