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난간에 만국기를 단다. 우리나라에 노동자를 보내는 나라들의 국기이다. 발판을 오르내리며 아찔한 높이에서 작업하니 식은땀이 흐르는데, 중후하게 생긴 중년의 외국인이 올라오더니 도와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국기 다는 일은 쉽게 끝났다.
너무나 고마워서 물었다.
"무슨 일로 왔어요?"
"일자리 구하러요."
"알선장 있어요?"
"예. 여기."
"외국인 등록증 좀 볼까요?"
"예."
그런데 등록증 뒷면을 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한국에 온 지 몇 달 안되었는데 벌써 두 번이나 회사를 옮겼다. 나는 반 농담으로 물었다.
"일 못해요?"
"예."
기가 막혔다. 태연하게 자기 입으로 일 못한다고 고백하다니, 이 사람을 도대체 어디에 쓰나?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럼 일할 데 없어요. 그냥 가세요."
꼭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처럼 점잖게 생긴 그 노동자는 순순히 나갔다. 일 못하는 외국인이 아주 가끔, 쌀에 뉘 섞이듯 있긴 있다.
몽골인 남녀 네 사람의 체불임금을 받아준 적이 있다. 돈을 받아줄 당시 세 사람은 이미 다른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아기라는 여성 하나만 아직도 구직 중이었다.
아기는 블라우스 첫 단추를 슬쩍 풀어놓는 식으로, 옷을 멋지게 입을 줄 아는 미인으로, 겉으로 보기엔 일 잘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블라우스 첫 단추를 풀어놓는 것이 "나는 일은 못하지만 다른 매력이 있소!"라는 뜻이 있다는 걸 내 어찌 알았으랴.
나는 그녀를 마도에 있는 전자제품 조립회사에 취직시키고 공장장에게 특별히 잘 봐달라고 부탁했다. 아기는 이미 3번이나 직장을 옮겨서 거기서 나가면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흘 만에 공장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을 너무 못해요. 퇴사시키고 신고하겠습니다."
나는 몸이 달아서 말했다.
"퇴사시키면 회사도 *옐로카드를 받을 텐데. 하여간 내가 갈 때까지만 기다려요."
마도까지 20키로를 달렸다. 공장장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짜고짜 물었다.
"어느 정도인데 그래요?"
"라인이 설 정도예요. 다른 근로자들도 아우성이고. 더군다나 배우려는 자세가 안 되어 있다니까요."
생산라인이 설 정도라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었다. 회사에 손해를 끼쳐서야 되겠는가? 나는 아기를 불러서 회의실로 데려갔다.
"아기, 내 말 잘 들어.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해. 알았어?"
나는 그녀를 타일러 보내고, 공장장에게 사흘만 더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공장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음날 공장장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목사님, 도저히 안 되겠어요. 제품이 안 나와요. 저도 사장님 앞에서 책임이 있는데."
"방법이 없나요?"
"예."
물론 회사도 엘로카드를 받았겠지만, 그녀는 그날로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블라우스 첫 단추,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
*옐로카드 : 외국인 노동자를 조기에 해고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 고용한 지 1달 이내에 해고하면 옐로카드 한 장을 준다. 엘로카드 석 장이면 그 회사의 외국인 T/O를 한 명 줄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