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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

[한윤수의 '오랑캐꽃']<17>

불법체류자인 태국인 부부 겔과 상환은 노동부에 출석하기로 마음먹었다. 밀린 돈을 받을 수만 있다면 추방당하는 게 뭐 대수랴. 어차피 한국을 떠나려고 작정했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 걱정이 앞섰다.

"혹시 노동부에 가기 전에 잡혀가면 어떡하죠?"
그녀의 걱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회사측에서는 돈은 주지 않으면서 집요하게 부부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었으니까.

"거기 어디야?"
"오산이에요."
"오산 어디?"
"...... "
"말 안 해? 좋아! 너희들 잡힐지도 몰라."

불법체류자가 잡히면 그를 고용한 회사도 처벌 받을 텐데, 그들은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걸까?

겔 부부와 우리 직원은 12시에 오산역에서 만나서 수원 가는 열차를 타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 직원이 도착하기 딱 1분 전에 두 사람이 출입국 단속반에 체포되었다.

겔은 단속차에 실려가면서 우리 직원에게 전화했다.
"나 어떡해요?"

직원은 또 나에게 전화했다.
"목사님 어떡해요? 지금 택시로 따라가고 있긴 하지만요."

혈압이 오르며 목이 콱 메었다. 혹시라도 잡힐까봐 오산에서 수원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노동부 현관에서 내리라고 일렀건만 어쩌다가 잡히냐구?

마침 난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는 중이었는데, 젓가락을 집어던지고 수원출입국 Y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석요구서를 받고 노동부로 가는 사람을 잡아가면 어떡해요?"
"일일이 사정을 봐주며 단속할 수는 없잖습니까."
"잡아가도 1시 반에 노동부 진술 끝나고 잡아가라니까요."
"안됩니다. 일단 단속되면 어쩔 수 없어요."
"소장님 휴대폰 번호 좀 알려주세요."
"그건 가르쳐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언론에 알려야겠네요."
"언론에 알리셔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사실 언론에까지 알릴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좋았던 수원출입국과의 관계가 깨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가슴이 답답했다. 회사에서는 퇴직금을 3분지 1 정도만 주겠다고 했는데, 노동자들이 갇힌 만큼 회사측 의도대로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출입국 Y실장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는 내가 우려하는 바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목사님, 퇴직금 받는 것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노동부 감독관을 저희한테 오라고 해서 절차대로 조사할 거구요. 또 저희 나름대로 체불임금 받는 시스템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크게 걱정할 일은 없지. 난 직원에게 상황이 이미 끝났으니, 택시로 따라가는 일은 그만두고, 겔을 안심시키는 전화만 하라고 지시했다.

상황 끝나고 두 시간쯤 지나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목사님 통화가 안되네요 연락 바랍니다> 수원출입국 H소장이다. 전화를 걸었다.

"소장님, 아까는 연락이 안 되던데요."
"본부에서 행사가 있어서요. 상황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단속하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연말이라 공장에도 단속을 안 나가고 역 근처에서만 단속하는데 공교롭게도 그렇게 되었군요. 목사님,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이해 좀 해주세요."

내가 더 이상 뭐라고 하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다만 나는 궁금한 점 한 가지만을 물었다.

"회사도 처벌받나요?"
"당연히 처벌 받습니다. 불법체류자를 고용했으니."

노동자만 처벌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래야 밀고가 판을 치지 못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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