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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한윤수의 '오랑캐꽃']<12>

영국의 넬슨 제독은 1805년 10월 21일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트라팔가르 바다에서 여지없이 격파함으로써, 영국 본토를 침공하려던 나폴레옹의 야심을 산산조각 냈다. 그러나 넬슨 자신은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는데, 숨을 거두기 전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나님께 감사한다. 우리는 의무를 다했다."

출국이 1주일밖에 안 남은 필리핀 노동자 넬슨은 <자신이 과연 의무를 다했는지> 생각해보았다. 회사에서는 *재고용도 해주지 않고 직장 이동도 시켜주지 않았다. 딸린 식구가 많아서 더 벌어야 하는데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노동자센터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것으로 마지막 의무를 삼았다.

내가 보기에 그는 희망이 없었다. 설령 직장 이동을 시켜준다고 해도 출국기한이 1주일밖에 안 남은 노동자를 고용할 회사가 있을까? 99% 불가능하다. 나는 포기하라고 말하고 돌아섰다. 하지만 여직원 하나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넬슨이 너무나 애처로워 보였기에.

그녀는 나 모르게 회사에 전화했다.
"00 정공이죠? 필리핀 사람 넬슨이라고 아시죠? 혹시 직장 이동은 시켜줄 수 있나요?"

회사측 대답은 냉랭했다.
"안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퇴근 후에 알로에 쥬스를 사가지고 노동자와 함께 택시를 탔다. 야간 작업중이던 사장님은 내 이름을 물었다.

"노동자센터요? 거기 목사 이름이 뭐더라?"
"한 짜 윤 짜 수 짜 됩니다."

사장님은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
"그 목사, 근로자 편만 드는 사람 아냐! 그 목사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싸인 못해줘요."

직원은 알로에를 내밀며 사정했다.
"과거에 혹시 서운한 일을 당하셨을지 몰라도, 솔직히 저희 목사님이 법에 어긋난 일을 한 게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저희 센터는 비영리단체입니다. 사적인 이익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 잘 아시잖아요."

사적인 이익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그 말 한 마디에 사장님의 마음이 적잖이 누그러졌다.

"그럼 공장장하고 한번 얘기해보세요."
공장장 역시 처음엔 그녀를 거들떠보려고 하지도 않았으나 사무실에 서서 10분이고 20분이고 계속 기다리니 마지못해 회의실로 안내하였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3년이나 성실하게 근무한 사람에게 왜 직장 이동을 시켜주지 않는지 따져 물었다.

"우리는 재고용해달라는 줄만 알았어요."
공장장은 약간의 변명을 하며 근무처이동 신고서에 싸인을 해주었다.

출국 전 닷새 동안 넬슨은 발에 불이 나게 뛰어다녔다.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났다. 한 회사에서 기술을 인정받아 고용이 되고 마침내 재입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출국 하루 전날 넬슨은 케이크를 들고 찾아왔다.

"저 내일 필리핀 가요. 한 달 있다가 다시 올 게요."
붉어진 눈빛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그의 마음이 오히려 고맙고 나도 모르는 일을 한 직원이 대견스러웠다.

며칠 후 이야기다. 그 00 정공에서 전화가 왔다. 공장장은 부드럽게 물었다.
"혹시 태국어 통역 좀 해줄 수 있어요?"

그 말 한마디로 우리 센터와의 관계가 회복된 걸 알 수 있었다

* 재고용 : 외국인 노동자는 3년 일한 후 회사와 재고용계약에 성공한 사람만이 한 달 이상 출국했다가 재입국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재고용은 재입국의 필수사항이다. 한 달 이상 출국하게 만든 것은 외국인의 정주화(定住化)를 막겠다는 발상. 그러나 2009년부터는 출국할 필요 없이 5년 동안 계속해서 일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뀔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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