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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도 알아요?"

[한윤수의 '오랑캐꽃'] <10> 진정서

나는 노동자들을 돕는 목사로서, 임금이나 퇴직금을 받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가 찾아오면 사실관계를 알아보고 가능한한 진정서를 써준다. 왜냐하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회적 약자인데다가 한국말도 잘 모르고 한국 법률도 잘 몰라서 진정서를 어떻게 쓰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서에는 외국인 노동자의 이름과 내 이름이 동시에 올라가 있다. 덕분에 나는 유명해져서 일부 기업주들 사이에선 '질이 안 좋은' 목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진정서를 써준 노동자가 돈을 주겠다는 사업주의 약속만 믿고 성급하게 진정을 취하하는 일이 있다. 도와준 나도 모르게! 왜냐하면 감히 쳐다보기조차 겁나는 높으신 분인 사장님이 따로 불러서 언제까지 주겠다고 다정하게 말하면 순진한 노동자들은 감격하여 진정취하서에 싸인을 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장님이 약속대로 돈을 주면 다행이다. 하지만 약속을 어기고 돈을 안 주면 어떻게 되나? 전혀 방법이 없다. 진정을 취하하면 끝이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서 같은 사건을 가지고는 다시 진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급하게 진정을 취하하고 통곡하는 노동자는 이래서 생긴다.


어떤 사장님이 자기 친동생의 아내이기도 한 태국 여성에게 5년 동안의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 대략 650만원 정도. 이 여성은 회사를 퇴직하고 반 년 이상이나 참았지만 퇴직금을 지급할 기미가 전혀 없자, 자신의 시아주버니이기도 한 사장님을 상대로 진정서를 써달라고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진정서 쓴다는 거 남편도 알아요?"
자칫하면 형제간에 불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체없이 진정서를 써주었다.


회사측에선 당황했다.
"제수씨 돈도 안주는 회사가 행여나 다른 노동자 돈을 주랴?"
만일 이런 소문이 난다면 어찌할 것인가? 회사 측에선 100만원을 줄 테니 진정을 취하하라고 나왔다, 650만원을 100만원으로 깎아달라니! 화가 난 태국인은 말했다.


"내가 비록 단돈 한 푼 못 받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법적으로 할 거요."
회사측은 몸이 달을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이 고발당할 수도 있으니까.


다급한 회사측은 태국 여성에게 곧 500만원을 줄 테니 진정을 취하해달라고 부탁했다. 순진한 태국 여성은 성급하게도 진정을 낸지 겨우 이틀 만에 진정을 취하해 주기로 마음먹고 나에게 전화했다. 나는 당시 베트남에 있었는데 황당한 심정으로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돈을 받고 취하해주는 게 좋아요? 돈을 안 받고 취하해주는 게 좋아요?"


태국 여성은 그제서야 깨닫고 통장에 돈이 들어오기 전에는 취하해줄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열흘 후 회사측에서 500만원을 노동자의 통장에 입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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