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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 갔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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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 갔다 와"

[한윤수의 '오랑캐꽃'] <9> 명쾌ㆍ상쾌ㆍ통쾌한 감독관

"베트남 한 달만 갔다 와. 다시 들어오게 해줄 테니까."
베트남 노동자 동은 이 말만 믿고 안심하고 출국했다. 퇴직금도 안 받고! 그러나 한 달 후 다시 한국으로 오려고 하니 어찌된 영문인지 올 수가 없었다. 하노이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은 냉정했다.


"비자 끝나서 못 가!"
동은 재입국을 포기하고 회사에 전화했다. 퇴직금이라도 부쳐달라고. 하지만 회사에서는 똑 잡아뗐다.


"무슨 퇴직금? 다 주었잖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동은 퇴직금을 받아달라고 한국에 있는 베트남 친구들에게 전화했다. 그 친구들은 나를 찾아왔다. 이걸 어떻게 받아주나? 나 역시 답답했다. 한국에 있는 사람 퇴직금도 받아주기 힘든데 외국에 있는 사람 돈을 어떻게 받아주나?


다행히 필자의 아내가 마침 하노이에 가있었기에 동을 만나줄 것을 부탁했다. 동에게서 위임장과 통장과 여권을 받아서 부쳐달라고. 아내는 열흘 후 서류들을 보내왔다.


진정서를 쓰는데 외국인 등록증도 없고 급여명세서도 없으니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대충 쓸 수밖에 없었다. 사장 이름도 모르고 회사 이름도 몰랐다. 회사 이름을 3개인가 4개 갖고 있는 회사인지라 눈치로 때려잡아 빈 칸을 채웠다. 퇴직금 액수도 한 달에 120만원 정도 받았다니까 2년에 240만원!


이런 어리버리한 진정서가 접수만 되어도 성공이었다. 다행히도 열흘쯤 후 노동부에서 출석요구서를 보내왔다. 1차 성공!


마침 회사에서도 전화를 걸어왔다.
"목사님, 우린 퇴직금 다 줬습니다."
"그래요? 얼마를 줬단 말입니까?"
"140만원."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나는 시치미를 떼고 짐짓 물었다.
"그럼 퇴직금을 주었다는 증거를 갖고 있겠네요? 그걸 갖고 오세요."


이젠 근로감독관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사흘 후. 노동부 수원지청. 회사를 대표하여 사장 사모님이 나왔고 베트남 노동자 동을 대리하여 내가 출석했다. 감독관이 물었다.


"퇴직금을 주었습니까?"
사장 사모님이 대답했다.
"주었지요. 어떻게 퇴직금을 안 주고 보내는 회사가 있겠어요!"
감독관이 웃었다.
"안 주는 회사 많습니다. 여기 온 사람들 대부분 퇴직금 때문에 온 거예요."


"저희 회사는 주었습니다."
"그럼 주었다는 증거를 보여주세요 입증 책임은 회사에 있습니다."
"영수증은 있는데.... 싸인은 안 한 거."


감독관이 또 웃었다.
"주었는데 영수중이 없다? 그런 말을 누가 믿겠어요?"
"........."
"만일 주었다 하더라도 영수증이 없으면 다시 줘야 합니다. 하물며 안 주었다면 당연히 주어야 하지요. 자 여기다 싸인하세요."


사모님은 체념한 듯 싸인했지만 한 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의신청하면 어떻게 되나요?"


감독관이 픽 웃었다.
"이의신청하지 마시길 바래요. 전과자 되는 게 좋으시다면 몰라도."


누가 봐도 틀림없는 깨끗한 일처리였다. 나는 한 마디 거들 필요도 없었다. 수원에도 이런 감독관이 있다니. 명쾌 상쾌 통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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